시간 여행

구약성경과 조로아스터교(아베스타)

Photographer Bhang 2021. 4. 14. 11:51

아메케네스 제국(Achaemenid Empire)은 최초의 페르시아 제국으로 불린다. 키루스 대제에 의해 세워진 이 나라를 세운 사람들은 스스로를 "파사 Parsa"라고 불렀다. 그리스인들이 아케메네스를 불렀던 '페르시아'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왔다고 보고 있다.

 

이들 '페르시안'들은 원래 유목민이었다. 기원전 천 년 경에 오늘날의 이란 지역에 자리를 잡고 세력을 키워나간다. 원래 아케메네스 제국의 기본적인 기틀은 메데인들, 아시리아인들에 의해 세워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나, 본격적인 제국의 형태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페르시안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고대근동 선 정착민들인 셈어족의 언어 사용자들이 아닌 인도-유럽어의 사용자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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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o-European Migrations. Source David Anthony (2007), The Horse, The Wheel and Language

Author: Joshua Jonathan / Wikipedia

 

 

이들 유목민 이주자들은 인류에게 ‘국가’라는 개념이 정착되기 전부터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이 일상이었던 그룹이다. 당시 지구상 최고의 전차, 투창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소규모 인원으로도 선주민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전차기술은 다양하게 발전하며, 이들이 오늘날의 이란 지역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매우 정교화된 형태로 발전했을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이륜전차'의 위력은 훗날 인도의 ‘차크라’와 같은 신화를 만들기도 한다. '신타시타' 문화에서 발견되는 언어는 오늘날 산스크리트어의 조상언어로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바퀴를 부르던 말에서 이 '차크라'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차크라는 신타시타 문화에서 기원하는 고속 주행 이륜전차의 바퀴를 가리키는 말이다.

 

조로아스터교의 성전인 <아베스타>는 북아프리카의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아카드, 바빌론의 문화가 아닌 이들 이주자들의 문화다. 메소포타미아, 아케메네스 제국 문화가 구약성경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바빌론 유수, 고레스(키루스 2세)의 언급이 나오는 구약성경 중반과 연대기를 끼워 맞춰 <아베스타>의 개념들이 구약성경의 원류인 것처럼 여기는 주장은 전문가들의 우려처럼, “고대 근동에 관해 문맹”이라는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학자들이 <창세기>를 논할 때 관계되는 문서로 자주 언급하는 것은 바빌로니아의 <에누마 엘리쉬>다. 그리고 <에누마 엘리쉬>는 인도-아리안들 즉, 이란으로 이주해 온 유목민들이 정착하여 제국을 세울 때 그들의 신앙에 큰 영향을 준다. 다신교와 제식 중심의 유목민 문화는 정착 국가를 위한 이념으로 변해가며, ‘아후라 마즈다’라는 절대신 관념으로 정리되는 것이다. 인도로 이주한 이들도 정착기가 되면 싸움꾼 ‘인드라’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브라만, 비쉬누, 시바로 정리된 힌두교화가 일어난다. 다소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이란계 유목민 이주자들에 그 뿌리를 둔 신 아후라 마즈다는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와의 문화교류에서 완성된다.

이는 고대 제국의 번영이라는 목적과 국가 이념을 위해 변화한 결과다.

 

 

에누마 엘리쉬와 아베스타 그리고 구약성경

<아베스타>는 사실 <베다>와의 관계라는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브라만 사제들이 아케메네스 제국의 부흥을 엄청나게 경계했다는 점은 그들이 ‘아후라’라는 호칭을 얼마나 깎아내리는지를 확인해보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인도-이란 조어에서의 발음 변화 이야기는 자주 설명했기에 결론만 적는다. 기원전 850년 경에 일어난 이 발음 변화는 오늘날 ‘힌두’라는 말을 만든 현상이며, 아후라를 ‘아수라’로 발음하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https://bhangyoungmoon.tistory.com/entry/아수라阿修羅-Asura-구약성경-속-에스라-느헤미야-그리고-인도와-한반도가-연결되는-이야기 

 

아수라(阿修羅, Asura) - 구약성경, 에스라, 느헤미야, 불경(니까야), 인도, 한반도를 연결하는 희미

기원전 850년경, 유목민들이 세운 나라가 제국의 형태를 갖출 때 스스로를 부른 이름이 ‘파사’라는 이름이다(바사). 구약성경의 중간 지점을 보면 바로 이 ‘아리안’들의 역사

bhangyoungmoon.tistory.com

 

고대 아카드인들은 수메르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러한 영향은 바빌로아니아 문화에서도 나타난다. 또한 당대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리가 오늘날 물리, 화학적으로 이해하는 물질세계는 매우 다르게 보였던 것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은 리처드 도킨슨 같은 진화생물학자는 물론, 그리스도교 신학자들도 고대인들이 우리와 같은 ‘초자연’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자주 잊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그들에게 하늘, 태양, 달은 신이었고, 이것은 사물과 분리되는 어떤 개념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생생한 현실 인식 속에 신들은 현실이었고, 살아 숨쉬는 임재하는 존재들이었다. 따라서 ‘신’들의 창조를 이해할 때는 물질적 구축의 문제를 생각하기 보다는 ‘기능과 질서’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고대 문헌들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또한 ‘신’의 유형은 고대국가 정치제도의 거울과도 같다. 이것은 양측을 상호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치제도와 이념의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이 왜 유독 독자적 일신교를 지키려했는지, 창세기 1장은 왜 그렇게 쓰여졌는지 정말 쉽게 이해된다. ‘제국의 신성’을 피조물로 격하시키는 창세기 1장은 고대 이스라엘의 이념이며, 독립 선언문이기도 하다. 

 

아후라 마즈다 Ahura Mazdā이미지를 떠올려보면 한 남성과 날개가 떠오를 것이다. 날개 달린 태양 원반은 아시리아 예술이다. 페르시안 유목민들의 신 ’아후라 마즈다’가 절대신의 위치에 올라갈 때는 아시리아 문화 수용이라는 과정이 존재한다. 또한 당시 설형문자(楔形文字, cuneiform) 문서 발굴을 통해 ‘아후라 마즈다’의 신성을 위하여 바빌로니아의 개념들을 참조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바빌로니아 주신인 ‘마르둑’의 속성을 ‘아후라 마즈다’에 거의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아후라 마즈다의 신성은 조로아스터의 창작이 아니며, 이는 수용과 재해석의 결과라는 점이다.

 

핀란드 대학의 아소카 파폴라 교수는 “아시리아의 종교는 BC 20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에 원시-인도-아리아인의 종교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BMAC 지역에서 발굴되는 인장들에 채택된 시리아, 이집트의 장식들을 통해 이데올로기적 영향의 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베다’의 원형은 인도가 아닌 ‘시리아’에서 만들어졌다.

미탄니 - 히타이트 같은 국가들의 조약에서 베다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이는 인도 아대륙에 인도-아리안들이 정착하기 훨씬 이전의 일이다. 문화는 어떤 지역에서 발현되어 발전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주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리그베다의 제식은 러시아 서남부의 아르카임 유적지 등에서 그 원형이 발견되는 것처럼 말이다.

 

즉, 바빌로니아의 <에누마 엘리쉬>와 그들의 주신 ‘마르둑’의 수용이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 마즈다’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당시 일대의 다양한 영향을 받은 문헌이다. 이스라엘은 매우 후발주자인 국가였고, 소국이었다. 구약성경 속에는 수메르, 아카드, 바빌로니아의 영향은 물론 북으로는 우가릿, 서쪽으로는 이집트이 영향 또한 존재한다. 페니키안 알파벳으로 널리 알려진 ‘알파벳'의 역사에서 히브리어 문자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첫 번째 글자인 ‘알레프’는 황소의 상형에 근거한다. 이는 이집트에서 시작된 것이다.

 

문화와 문명에 있어서 '독자성'과 '순수성'은 일종의 망상이다.

"레벤슨 J.D. Levenson 은 문화적 순수성이야 말로 망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 J.D. 레벤슨에 대한 존 H. 월튼의 인용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