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르주나(용수)의 중론과 야구르트 - "우유는 응당 야구르트이어야 하리라"
2021년 연말 초청작으로 전시될 사진작품 시리즈로 마무리 작업 중인 연작이 있다.
일단의 협의 중이지만 큰 문제가 없다면 국내외에서 전시를 진행할 듯하다. 큰 어려움이 없길 희망해본다.
사진연작 <순야타 suññatā 空> https://www.bhangyoungmoon.com/sunnata
이번 작품의 제목이 아예 '공(空)'의 원어인 순야타(suññatā)로 되어 있기에 공 사상의 가장 중요한 레퍼런스인 나가르주나의 <중론>의 문장을 여러 곳에 발췌하여 콘텐츠를 구성하고 있다. 사진작가의 일은 당연히 사진을 하는 일이다. 사진을 한다고 하면, 사진을 찍고, 프린트 하고, 전시하고, 공유하고 하는 일 등이 될 것이다. 작품 소개와 전시 공간 구성을 위해 나가르주나(용수, 龍樹)의 문장 한역본을 여러 곳 발췌하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불광출판사'에서 출간된 가츠라 쇼류, 고시마 기요타카의 산스크리트어판의 번역이다. 그러다보니 책 안에 한역 번역이 없다. 다양히 동국대학을 비롯해 몇몇 DB들이 매우 훌륭한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번역을 검색을 통해 알아보던 중 등장한 '야구르트'를 보고 몇 분을 정신없이 웃다가 이 포스트를 적는다.
若是法卽異,
乳應卽是酪,
離乳有何法,
而能作於酪?
<중론> 13장에 등장하는 게송이다.
동국대학교 DB에 있는 번역에 보면 "우유와 타락은 여러 가지의 다름이 있기 때문에 우유가 곧 타락인 것은 아니다"라고 정리하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중론>은 산스크리트어에서 바로 번역한 번역본이다. 여기에서는 '酪'으로 번역된 단어를 '발효유'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타락(酪)은 墮落이 아니고 우유 발효 식품(酪)을 가리킨다.
요즘 이해하기 쉽게 바꾸면, "우유에서 치즈가 나오지만, 우유가 치즈는 아니다"라는 식으로 알려주는 비유다. 인도는 '라씨'를 비롯해 다양한 유제품이 존재한다.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비유가 사용되었을 것이다. 지구상 대부분의 문화에서 '소'는 식용이 아니라 제식용이다. 인도가 소를 잡지 않는 역사적 맥락은 거기에 하나 더 나아가지만, 근본적으로 이유는 비슷하다.
#야구르트 #야쿠르트 #요거트
중론 원문이 온라인에 상당히 돌아다닌다.
13-7) 若是法卽異 乳應卽是酪 離乳有何法 而能作於酪
만일 같은 존재가 변하는 것이라면 우유는 응당 야구르트이어야 하리라.
또 우유를 떠나서 그 어떤 존재가 있어서 능히 야구르트로 되겠느냐?
나는 궁금해서 이 문장을 구글 번역에 돌려봤다.
>> "방법이 다르면 우유가 버터여야 하는데"
야구르트라는 쌈빡한 번역은 누가 처음 한 것이며,
웹 web 에는 지금 서로 퍼가면서 제대로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죄다 이 부분이 '응당 야구르트이어야 하리라'로 되어 있다.
읽지 않고 포스팅 한 것일까?
재편집 포스트의 상당수가 원문을 제대로 읽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카피해 붙여넣다보니 "嬰"(갓난아이 영, 어린아이 영) 같은 글자는 아예 표기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처음 출처를 알 수 없지만 블로그 등에 올라오는 포스트 대부분에 해당 글자가 누락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콘텐츠를 다양하게 공유하는 것은 의미있는 재생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 오기(誤記)나 잘못된 설명 등이 그대로 돌아다니기 시작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문제다. 가짜뉴스나 뜬소문이 돌아다니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 자신에게 오래전부터 그러한 나름의 '서사를 쓰는' 경향은 엄연히 존재했다. 이것이 실상은 인류 문명의 한축을 이루는 점을 무시할 수 없고, 실존적으로나 인식론적으로도 우리는 어느 정도 이상 '오류'를 가지고 '오류에서 비롯된 재해석의 역사'를 쓸 수 밖에 없게 된다.
사진의 의미란 바로 이러한 역사기술(歷史記述, historiography)의 방식을 완전히 바꾼 것이 크다. 사진영상의 등장으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실기술(事實記述, a fact without substantiating the viewpoint)의 세상으로 들어왔다. 또한 대부분의 매체가 디지털화되면서 한편으로 융통성 없는 시스템 속으로 더 들어온 점도 있지만, 반대로 정확성, 달리 말하면 일관성이 요구되는 데이터 입력의 시대를 살고 있기도 한 셈이다. 디지털 기록물에서 문장은 적는 그대로 적힌다.
이것은 디지털 시대의 기록자는
단순히 가지고 있는 자료를 단순히 보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차 확인하고 필요하면 항상 개정해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