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교수의 프레임을 통해 보는 헬레니즘 전파사
여기서 존경하는 도올 김용옥 교수님의 프레임은 그가 에드워드 사피어(Edward Sapir, 김용옥 교수는 ‘사피르’로 표기)를 인용하는 부분과 관계가 있다. 그의 저서 <논어 한글 역주>의 초반에는 ‘인류문명전관’이라는 도입부 내용이 등장한다. 깊이있고 재미있는 통찰의 내용이라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해드린다.
"언어는 사유에 선행한다"는 것 그리고 언어의 구조가 문명 형성사의 중요한 기틀 역할을 한다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프레임'이다. 그리고 <논어 한글 역주> 초반에 실린 '인류문명전관'의 내용 중 조금 더 세부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 하나 눈에 보이기에, 그리고 그것이 지금 내가 작품 구상과 고민을 위한 배경지식으로 공부하고 있는 부분과 관계가 있기에 여기 주제 넘게 글을 적어보았다.
기원전 1,600년경 이미 셈족 왕들은 고대근동 지역에서 거의 사라졌다. 부상하는 히타이트와 같은 제국에 의해 고바빌로니아가 멸망했고, 히타이트를 제압하고 부상한 앗시리아가 있다면, 이후 신바빌로니아의 등장은 다시 아시리아에 대한 반발에 의해 이루어 진 것이다. 여기서 메데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페르시아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란계 사람들이다. 즉, 이주해 온 아리안들이며 인도-유럽어 화자들이다.
바빌로니아 문화는 상당기간 많은 국가 지배자들에게 수용된 것으로 보여지지만, 이주해 온 인도-유럽어 화자들은 꽤나 오래 전부터 고대근동 지역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그들의 문화 또한 다양한 형태로 수용되었다. 시리아의 미타니와 같은 왕국에서 인도-아리안들의 경전 ‘베다’의 신들이 등장한다. 리그베다 제식의 원형이 되는 문화는 이미 우랄산맥 남부 신타시타 문화에서 발견된다. 고문명 세계의 ‘변화’ 즉, 문화의 수용과 재해석은 기나긴 세월에 걸쳐서 다양하게 일어난다. 이슬람의 문제는 이것이 매우 최근의 일이며, 그만큼 급진적인 측면이 있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인류 고문명들의 독자적인 아이덴티티가 상실되고, 고문명의 모든 가치를 담지하는 소중한 언어들이 사라져버렸다는 것"(논어한글역주, 김용옥)은 매우 세심하게 살펴야 할 문장이다. 인류 고문명들의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란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이며, 현실적으로 어떠한 문명도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성립할 수는 없다. 고고학은 기술과 함께 큰 폭으로 발전했다. 덕분에 인류에게 '국가'라는 정치제도가 발생하기 이전의 상황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우리가 너무나 오랜 세월 '국가'라는 정치제도 속에서 살아왔기에 알게 모르게 모든 인류사의 전반에 걸쳐 '국가제도'를 전제로 하는 관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김용옥 교수가 '문자'를 기준으로 역사와 선사를 나누는 것을 무지라 지적하듯이, 문명사 또한 국가라는 정치제도와 거리를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국가 중심의 기술 description 은 편의성을 위한 것이지 그것이 적절하기 때문은 아니다.
이슬람에 의한 언어 획일화는 분명 일어난 일이라 생각된다. 나는 북아프리카와 중동 일부 지역을 여행하면서 아랍어가 얼마나 넓게 통용되지는지를 경험했다. 또한 19세기, 20세기를 지나며 식민지배를 받은 영향으로 항공노선과 언어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지역들은 물론, 국제공항에서 조차 영어표기를 하지 않는 옛 프랑스 식민지역들은 여전히 내가 알아야 하는 것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를 잘 보여주었다.
헬레니즘 전파사는 결국 같은 어족간 문화 교류사다
우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문제를 말할 때 이들이 그리스와 매우 다른 문명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어느 정도는 맞지만 또 틀리기도 하다.
아카드 제국 시대부터 '바빌로니아'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고바빌로니아는 저 유명한 '함무라비 Hammurabi' 대왕으로 유명한 국가였다. 오늘날까지도 이 바빌로니아 문화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많은 고대 제국들에 영향을 주어 그 존재감을 과시했음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를테면, 아케메네스 제국 페르시아 문화의 경우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 마즈다'의 신관을 확립해 나갈 때 그들이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그러한데, 앗시리아 문화 예술의 영향을 받은 것이 시각적으로 표현되는(아후라 마즈다의 날개) 측면에서 등장한다면, 바빌로니아의 문화는 주신 마르둑(Marduk)을 상징하는 '개념'들을 아후라 마즈다에 적용한 것으로 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바빌로니아인들은 레반트 지역의 많은 지역들과도 다양한 유형의 무역을 하였고, 메소포타미아 전반에 걸친 패권을 장악한 부흥기를 누리기도 하지만 이들은 히타이트에 의해 쓰러진다. 그 사이 앗시리아가 등장하고, 이 시기가 되면 이미 '셈족'의 왕들은 사라진다.
신바빌로니아는 메데인들과의 협력으로 앗시리아를 제압하면서 일어난 국가다. 신바빌로니아는 키루스 2세에게 제압되고, 이후는 저 유명한 페르시아인들의 제국이 부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페르시아 시대가 되면 '아후라 마즈다'의 절대신 개념이 등장하고, 이는 앞서 설명했듯이 바빌로니아 문화를 수용해 적극적으로 반영해 재해석하는 것이다.
여기에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다. 메데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이다. 이들은 이란계 사람들이다. 바로 '인도-유럽어' 화자들인 것이다. 이들의 조상은 러시아 남부, 우랄산맥 끝, 흑해-카스피해 초원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흔적은 러시아 - 카자흐스탄 접경지대 아르카임 신타시타 문화유적에서 <리그베다> 제식과 유사한 제식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점, 카자흐스탄 - 우즈베키스탄 - 키르기스스탄 - 타지키스탄 - 투르크메니스탄 - 아프가니스탄 -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탄'이라는 땅을 의미하는 공통 어원에서 근원하는 지역명, '시리아'에서 인도-아리안들의 <베다>에 등장하는 신들의 원형이 발견된다는 점, H > S 음운변화, '아수라'의 지위 변화 등 무수히 많이 발견된다.
아주 거칠게 양분하자면, 헬레니즘은 서진했던 인도유럽조어 화자들의 문화이며, 페르시아 문화는 동남진을 했던 인도유럽조어 화자들의 문화다. 언어구조가 문명형성과 그 특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헬레니즘에 아케메네스 제국 지역 즉, 고대 근동으로 불리우던 지역 대부분에서 수용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즉, 동일한 언어구조가 수용과 재해석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인도-유럽어 주부/술부 구조가 가져온 사고방식
“언어는 사유에 선행한다”는 표현을 통해 김용옥 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프레임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그리스어 즉, 헬레니즘의 언어 특유의 사유가 서방세계에 깊게 뿌리내리고 그것이 어떻게 강력한 힘을 갖추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는지에 관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준다. 주부와 술부를 극명하게 나누는 인도-유럽어의 구조적 특징이 연역적 추론, 논리학 그리고 수학의 발달과 같은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것이 김용옥 교수의 의견이다. 에드워드 사피어의 이론, 사피어-워프 가설 등과 같은 이론들은 언어학계에서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김용옥 교수의 경우처럼 사고의 근간에 대한 고민을 할 때 활용하기에 매우 편리하고 설득력 있는 이론들인 것 또한 사실이다.
김용옥 교수가 <논어 한글 역주>에 초반에 적고 있듯이 연역적 추론, 논리적 가설에 대한 부분들은 경험적 검증을 통해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편 소위 희랍인들 즉, 그리스인들이‘경험적 검증’이라는 절차를 존중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단서들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재미있게도 이러한 것들이 하필이면 이후 유럽의 주류가 되는 기독교 문화에 영향을 주어 소위 무지의 '암흑시대'를 가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에 넘기는 이들의 주장과 태도, 당시의 기록들을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는 변하는 세계를 비본질적 세계로, 변하지 않는 세계를 본질적으로 꽤나 양분해서 바라보았던 희랍 철학의 '문제'가 경험되는 세계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데 '부스터' 역할을 해버린 셈이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본류의 사고방식을 잊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집착적으로 몰입하고 또한 권력자들은 그것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기도 했다.
갈릴레오보다 다소 앞선 시대에 실험적 검증은 이슬람 전파 이후 아랍계 과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연역적 추론과 고등수학을 통한 다양한 이론 발전은 다소 부진했으나 경험적 검증이라는 측면에서는 다양한 데이터를 쌓은 동아시아의 기술력은 유럽보다 훨씬 발전했다. 반면, 유럽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와 관계된 가설들이 갈릴레오에 의해 논파될 때 갈릴레오의 입장은 단순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실험적 검증 즉, 경험적 검증을 하지 않았다고 보았던 것이다: galileo.phys.virginia.edu/classes/109N/tns61.htm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아인슈타인은 어쩌면 마지막 근대인으로 불리울 만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헬레니즘의 전파는 동일한 어족 문화에서 일어난 일
다시 김용옥 교수의 <논어 한글 역주>의 서문으로 돌아가보자. 이 서문에서는 이슬람과 고대 문명의 상실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관점을 준다. 이슬람으로 인해서 고대 다양한 문화들이 희석된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아케메네스 제국이나 알렉산드리아, 로마에 이르는 다양한 지배 구조는 아케메네스의 키루스 2세, 다리우스 1세 등의 정책을 상당 부분 모방하여 지역의 고유문화를 억압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슬람 또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이들에 한해 ‘혜택’을 주었다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이슬람에 의한 문명의 획일화는 분명 일어난 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슬람은 기원 후 7세기 경부터 퍼져나갔다. “이슬람의 유포가 <코란>이라는 경전을 강요하고, 그 아이코노크라스틱 iconoclastic 한 절대성, 비형상성, 추상성으로 인하여 <코란>의 언어인 아랍어가 모든 무슬림의 삶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버림으로써, 인류 고문명들의 독자적인 아이덴티티가 상실되고, 고문명의 모든 가치를 담지하는 소중한 언어들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김용옥)은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틀렸다고 보아야 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이를테면 ‘통일신라’ 시대와 ‘조선’시대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21세기에 살면서 우리의 관점으로 천 년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고구려의 기상을, 신라와 백제의 유려함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 통일신라와 조선은 언어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켈트어에서 현대 미국영어가 발생에는 약 천 년의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처럼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언어와 생각 그리고 사람의 신체구조까지도 엄청나게 변한다. 고조선으로부터 전해지는 유구한 전통을 잇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현실적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와 자부심이라는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측면이 훨씬 강한 것이다. 즉, 통일신라 시대 사람과 조선 시대 사람을 같은 시점에 놓고 서로를 보면 말도 통하지 않고, 서로 이념도 다르며, 복식이며 문화도 전부 다른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같은 시대에 존재했다면 분명 전쟁을 했을 것이다.
이 말은, 오늘날의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대표적인 언어들의 조상들이 작은 범위의 지역에서 살고 있을 때의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고, 아케메네스 제국이나 알렉산드로스 제국 혹은 로마 제국의 시대가 되면 이미 4천 년 이라는 세월이 흐른 시점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즉,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는 같은 어족의 언어를 사용한다. 서로 사템어군이나 켄툼어군이냐가 다를 뿐이다. 여기에서 다시 존경하는 김용옥 교수님의 견해를 가져와서 그 프레임을 대입해보면 헬레니즘이 페르시아 즉, 아케메네스 제국 지역에서 수용되고 연구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같은 어족에 의해 세워진 문명이라는 점에서 가능했다는 것이며, 오히려 ‘이슬람’과 고문명 손실의 상관관계 주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전쟁과 지배의 범위 이후 로마의 정복과 지배의 범위는 기본적으로 아케메네스 제국의 기틀 위에서 이루어진다. 한쪽은 그레꼬-로만 문화에 의한 것이라면 한쪽은 ‘페르시아’의 문화인 것이다. 페르시아인들은 현재 이란(Iran) 지역에 자리를 잡고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원래 전차를 쓰는 유목민들이었으며, ‘이란’이라는 지명은 어원적으로 ‘아리안들의 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오늘날의 파키스탄, 인도 지역으로 들어가 독자적인 문명을 건설했다.
이들은 러시아 남부, 우랄 산맥 남쪽 현재 기준으로 보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접경 지역에서 살던 인도-유럽 조어 화자들의 자손으로, 중앙아시아를 거쳐 오늘날의 시리아, 이란 그리고 인도 등에 자리를 잡는다. 이들의 경로는 다양한데 대표적으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파키스탄 등의 지역이 있다. 이들 지역의 이름에서 공통된 ‘탄’은 이들 사템어군 계통의 인도-유럽어에서 ‘땅’을 의미하는 말에서 온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아케메네스 제국 지역이 훗날 알렉산드로스 제국에서 밀려오는
헬레니즘을 수용하고 연구할 수 있는 요인 중 한 가지는 동일한 언어적 뿌리다.
고문명 세계와의 단절은 이슬람에 의해 일어난 것이 상당히 최근이고 과격하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다리우스 1세 때가 되면 아베스타에 근거한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 마즈다를 절대신으로 삼는 상황이 되어 있다. 바빌로니아의 주신 마르둑의 상징성을 모두 아후라 마즈다로 대체해버리는 과정이 존재하지만, 이미 ‘주신(主神)’의 개념은 ‘절대신’으로 완전히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아케메네스 제국의 문화가 구약성경에도 영향을 주어 ‘왕의 왕, 주의 주’와 같은 수식어는 물론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러한 수식은 부정할 수 없이 페르시아 제국 문화의 영향이다.
아우구스티누스(성 어거스틴)과 페르시아 이슬람 시인 타브리지 문장의 유사성
"If you want to experience eternal illumination, put the past and the future out of your mind and remain within the present moment.” - Shams Tabrizi (Persian poet)
어족이 같다는 사실은 저변이 되는 사고방식에 유사점이 발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란계 이슬람 성직지나 시인들이 그리스도교 교부철학과 비슷한 말을 종종 남겼다는 사실은 별스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기독교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성 어거스틴)와 페르시아의 이슬람 시인 타브리지의 문장 속에서 그들이 말하는 '영원'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비슷한지를 보면 이는 거의 누가 누구를 베꼈다고 말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일 정도다. “언어는 사유에 선행한다”(논어한글역주, 김용옥)는 말에서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언어의 구조가 사유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즉, 헬레니즘이란 카스피해를 기준으로 서진을 했던 사람들을 통해 형성되고 자리잡은 문화라면, 페르시아 문화란 카스피해를 중심으로 동남진을 해서 오늘날의 이란 지역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문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어족의 화자들이 세웠던 각기 다른 문명이지만, 정복전쟁이라는 형태의 문화교류(?)를 통해 영향을 주고 받게 되는 근간에는 같은 어족 화자들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문화교류의 영향이 남아 중동의 학자들은 수학과 같은 학문을 고도화시켰고, 천여 년이 흐른 뒤에는 역으로 유럽에서 이들의 학문을 통해 배워야 하는 상황으로 뒤바뀐다.
그렇다면 인도는 어떻게 헬레니즘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을까?
이 부분은 제프리 새뮤얼(Geoffrey Samuel)과 같은 학자들의 저술에 자세히 등장하며 이 부분은 다른 글에 어느 정도 정리해 두었다: https://bhangyoungmoon.tistory.com/16
고문명과의 단절은 이슬람에 앞서 인도-유럽어 화자들에 의해 먼저 일어났다.
그에 앞서 고려해야 할 것은 고문명의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란 매우 추상적인 상상이다.
애초에 모든 문명은 교류와 수용으로 보는 것이 더욱 합리적인 관점이다.
독자성에 대한 환상은 우월감으로, 우월감은 차별과 혐오를 낳는다.
인류라는 종(種)이 다른 포유류들과 공유하는 생각의 특징과
더 발달한 개념화가 낳은 일종의 유전병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늘날의 ‘인도’의 종교의 경전인 <베다>의 원형은 시리아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고고학계의 정설이다. 고대 근동 문화는 다채로운 문화적 융합의 결과이며, 고문명 세계의 문화나 관점은 역으로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문헌들의 성립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발견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 이전, 아케메네스 제국 이전의 사고방식은 쐐기문자 토판 연구를 통해 아주 어렵게 어렵게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수메르인들의 ‘메’와 플라톤의 이데아가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 있게 되었고, 어떠한 관점을 통해 이것들을 이해해 나가야 할 것인지 조금씩 그 수수께끼를 풀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