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원

붓다와 입자물리학 - 깨달음은 물리학적 진리를 관통하는가?

Photographer Bhang 2020. 12. 21. 13:28

물리학 용어 #팔정도 (#八正道, #Eightfold_Way)

미국의 머리 겔만 Murray Gell-Mann 과 이스라엘의 유발 네에만이 도입하였다.

 

강입자를 팔중항과 십중항 등으로 나열하는 방법으로 여덟 개 입자의 여덟 가지 가능한 변화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한 뒤 불교 용어인 팔정도(八正道, Eightfold Way)를 차용해 분류했다.

  • 중간자와 스핀 ½의 중입자는 팔중항으로 나타내어지고, 스핀 1½의 중입자는 십중항으로 나타내어진다. 중입자 십중항 가운데 하나 (오메가 중입자)는 팔정도가 발표될 당시에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는 1964년에 발견되었다. 이 공로로 겔만은 196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위키백과).

머리 겔만과 유발 네에만이 '팔정도'라는 표현을 그들 연구에 사용한 것은 1961년으로 알려져있다.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 강연 중 겔만 Murray Gell-Mann 은 이 용어의 사용은 재미삼아 붙인 것이라 설명했다. 재미를 추구했던 것이다.

 

 

물리학자들이 종교나 명상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재미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뉴에이지나 명상가들, 신비주의자들이 이러한 내용들에서 자신들이 선호하는 부분만을 가져다 붙인다. 여전히 <반야심경>이 입자물리학적 관점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고, 특히나 이 유식사상의 내용들은 입자물리학 연구 내용과 굉장히 비슷한 심상(imagery)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은 재미있으나 실상은 관계 없다.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저명한 물리학자 리차드 파인먼 Richard P. Feynman 도 자신의 이론과 관련하여 즐거운 상상과 이미지들을 많이 사용했다.

 

 

유식 Yogācāra 과 입자물리학

2018년 여름, 나는 이화여대에서 국제 프로그램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전세계 저명한 입자물리학자들이 서울에서 학회를 갖고 있었는데, 시카고 대학 김영기 교수의 강연이 프로그램 하나로 이화여대 LG 컨벤션에서 진행되었다. 김영기 교수는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에서 양성자,반양성자 가속기인 테바트론을 이용한 양성자, 반양성자 충돌실험 그룹인 CDF(Collider Detector at Fermilab)의 공동대표를 맡은 바 있으며, W 보존과 top-쿼크 입자의 질량을 정밀 측정함으로써 아직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질량의 근원을 밝힐 수 있는 열쇠로 현대 물리학에 이론적으로 도입된 힉스 입자의 질량을 예측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시기에 나는 '유식 Yogācāra'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었다. 움직이는 깃발을 보며 깃발이 움직이는 것인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인가 혹은 움직이는 것은 나의 마음인가와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본디 이 '유식 有識'이라는 말은 '요가를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온 말에 대한 번역어이며 관련된 용어들을 보면 Vijñānavāda (의식에 관한 설), Vijñaptivāda (인식과 개념에 대한 설) 등의 용어들로 설명된다.

 

유식은 업과 윤회에서부터 눈으로 보는 직접적인 감각까지 작용하는 인식 작용에 대한 매우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구조적 접근을 보여준다. 이는 유식의 인식에 대한 접근이 매우 구체적인 수행과정에서 발견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수많은 설명의 방법들이 그러하듯이 설명의 방법에서 개념화가 발생하고, 이것은 잘못된 전달을 하기 쉽다.

 

유식의 세분화된 접근은 입자물리학이 세상을 설명하는 방법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2018년의 경험은 이러한 연결에서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먼 옛날 언어와 집중 그리고 명상을 통해 우주의 구조를 넘어다 본 듯한 경험을 엿보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적어두자면, 논리적으로 올바른 유추는 가능하겠지만 그것이 곧 현상, 관찰, 논증과 일치하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다양한 자료들을 취합하고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며 중력과 가속력의 일치를 확인했다. 그렇게 질량에 의해 공간이 휘어질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학과 영국인 에딩턴에 의해 증명된 관측 사실을 통해 그 타당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이후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듯이, 그는 점차 자신의 통찰과 맞지 않는 이후 물리학의 발전 방향을 거부했으나 훗날의 성취들은 아인슈타인의 생각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근현대의 위대한 지성들도 한계를 보여준다. 수 백, 수 천 년 전의 사상들이 세상에 대한 세밀한 주의를 통해 깊은 통찰과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다는 점에는 틀림 없으나, 그것이 곧 현대적 관측기술을 통해 이해된 구체적 사실과 일치한다는 것은 아니다. 개념적 유사성의 우연 몇 가지를 소위 '정신작용'만으로 정밀측정과 관측이 도달하는 구체적인 사실의 이해 영역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전적으로 자전적 기억 autobiographical memory 능력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대뇌기능의 오작동이다. 이것은 때로는 신화적 기술 mythological description 혹은 집단을 통해 성립해 나가는 정교한 신화적 이야기들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대뇌기능에 의한 '본능적' 정신작용은 신비적 결론에 심취해 우리가 명확히 보아야 할 것들을 볼 수 없도록 만들기도 한다.

 

 

유식, 반야심경, 아비다르마의 정교한 개념은 붓다의 오리지널이 아니다

불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연기(緣起)를 설하는 가장 오리지널에 가까운 문장들은 분사의 처격(處格, LOC)을 사용한 표현이다. 오해의 발단들은 문장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잘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인 듯 하다.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12연기를 계층적으로 이해해 오해를 만들었고, 여전히 설명을 위한 방편들을 사실로 받아들여 오해를 만들고 있다. 2,500년이나 지난 지금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문장들에 대한 세부적이고, 문법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처격의 사용은 인과적 산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 반응을 강조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자주 강조하는 부분 - 경전 전승의 역사

붓다의 언어는 '마가다어'로 추청한다. 마가다 지배 지역은 '태양'으로 상징되는 왕국신화를 전승하는 지역이다. 오늘날 파키스탄, 인도의 북서부 지역은 '달'로 상징되는 왕국신화를 전승한다. 리그베다 이후 갈라져 한쪽은 '라마야나' 전승을 다른 한쪽은 '마하바라타' 전승을 이어간다. 이는 인도 아리안들의 이주와 정착 시기 등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숫타니파타 속에서도 '태양의 후예'와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붓다의 태생 등을 조합해보면 그의 언어가 마가다어였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언어는 시간이 지나면서 분화하는데, 산스크리트어를 비롯하여 인도-아리안들의 언어는 정착 후 매우 다양하게 갈라진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인도에서는 아리안 이주 이전의 언어들을 포함해 매우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추정되는 것은 1600개의 언어가 여전히 존재한다.

 

마가다어로 말해진 내용들은 후에 팔리어로 전승된다. 닛까야의 분량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양은 엄청나게 방대하다. 팔리어로 이루어진 경전이 산스크리트어로 다시 번역, 전승되는 시점은 쿠샨 왕조 때의 일이다. 이는 2세기 전반 경이며 이미 '대승불교'가 세상에 등장했고, 용수(Nāgārjuna)의 <중론>이 등장했다. 대승불교의 다양한 사상적 변화들이 남인도 지역 출신들에 의해 이루어진 점도 언어적 배경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미 붓다의 입멸 후 제자들이 <논장>을 성립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그가 가르치지 않았던 수많은 내용들이 더해진다. 이해가 어려운 부분들을 설명하기 위해 개념화와 세분화에 의해 개념이 증대되고, 본래 의도하지 않았던 것들이 등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상 붓다의 오리지널이라 할 수 있는 경과 율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신비주의적으로 접근하기 즐겨하는 <반야심경> 같은 방식은 찾아 보기 어렵다.

 

인도의 굴절어가 비굴절언어인 중국어의 표의 문자로 번역되면서 어떠한 내용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것은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이해의 과정까지 보존하기는 어려웠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문법적으로 세부적인 부분을 정교하게 활용해 전달해야 하는 것들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부분에서 이미 메시지는 중국으로 넘어가기 전, 산스크리트어가 되기까지 2번이나 변했다.

 

 

결론

소위 대중들이 닛까야를 읽으면서 반야심경 같은 느낌을 받기는 어렵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경이라 볼 수 있는 <숫타니파타>의 아름다운 표현들이 우주의 입자물리학적 접근을 심상할 수 있도록 만들 가능성은 정말 희박하다. 달라이 라마도 반야심경을 외우는 것도 좋지만 그것의 이론적 토대가 되는 중관학파의 이론에 대한 공부도 수반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붓다는 영원의 문제들에 대한 갖가지 견해들은,

세계의 근원과 존속 같은 주제들에 대한 논쟁은

왜 일어나는가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무지에서 발생한다고 대답했다.

 

매트릭스 The Matrix 적 상상과 붓다의 가르침은 사실 완전히 뿌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실과 실체, 깨어남이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가 아닌 다른 층위에 있다는 상상은

전형적인 선형적 인과관이며 불교의 가르침과는 관계가 없다.

 

또한 입자물리학과 불교의 유사성에 관한 이해와 공부를 통해 '앎'을 향해 나가아는 것은 하나의 방편(方便)이지 그것 자체가 온전한 동일성을 통해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해준다고 믿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