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야타(suññatā 空) 작업기와 중국 윈난성 시상반나 국제 사진페스티벌 전시까지
현재, 그러니까 2021년 12월 12일부터 30일까지 중국 윈난성에 위치한 시솽반나 Xishuangbanna 에서 열리는 시솽반나 국제 사진페스티벌 Xishuangbanna Foto Festival 에서 저의 사진 작품 <순야타(suññatā 空)>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코로나 방역으로 까다로워진 중국 정부의 출입국 정책으로 인해 중국에 직접 갈 수 없지만, 현지 소식을 전해들으며 자기 전시를 가지 못하는 작가의 '한풀이'를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블로그를 운영하게 된 까닭도 사실 이 작품의 구상을 하며 얻게되는 이해를 어디에 묵혀두고 있기는 아까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인도유럽어 문명과 한반도의 연결에 바탕을 둔 순야타 작업기
2017년 10월과 11월, 저는 한-수단 수교 40주년 그리고 한-아제르바이잔 수교 25주년 기념 행사와 관련해 무대 구성과 사진 촬영을 위해 북수단 카르툼과 아제르바이잔 바쿠 그리고 마살르를 방문하는 여정 중에 있었습니다. 당시 (주) 문화공작소 세움의 이사로 재직 중이었고, 회사의 작품이 두 나라의 수교 기념 행사를 위한 작품으로 선정되었기에 한국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혹은 가지 못하는) 지역들을 돌아볼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후에도 한 차례 더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2017년은 한-아제르 수교 25주년을, 2018년은 아제르바이잔이 현대 국가 건국을 한지 100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의 아제르바이잔 일정에서의 인상은 이후 제가 몇 년 동안 작품을 구상하고, 구체적으로 시각화 구현을 해나가는데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고부스탄 암각화
2017년 11월 아제르바이잔 마살르에서 수도인 바쿠로 이동 중이었습니다. 당시 시간 여유가 상당히 있었고, 그런 이유로 우리를 태운 차량은 잠시 고부스탄 암각화 유적지를 둘러보기로 하고 그곳에 당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국립공원이나 유적지를 좋아하기에 즐겁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왠 키가 큰 현지인이 낯선 억양의 영어로 말을 걸어 왔습니다. “단체로 온 것 같은데 왜 가이드 신청은 하지 않았느냐”고 말이죠. 사실 대사관 만찬 일정에 맞추어 이동하는 중이었고, 유적지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못했기에 애초에 가이드 요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이드와 저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싱겁게 웃고 유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암각화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는데 바닷속에 잠겨 있었던 무른 바위에 2만년 전부터 사람들이 새긴 암각화가 남아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는 점 또한 그의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었죠.
그날 그렇게 바라본 고부스탄 암각화 유적을 사진에 제대로 담지못하고 아쉽지만 다시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로 향하는 차에 올라야 했습니다.
마리야 김부타스 쿠르간 가설을 접하다
리투아니아 출신의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Marija Gimbutas)가 초원 목축민들의 쿠르간 문화를 인도-유럽어족사의 주요한 쟁점으로 삼았던 근거는 스레드니스톡(Sredni Stog) 문화에 있었다고 봅니다. ‘쿠르간 가설’은 이후에 많은 논쟁을 낳았지만 유적지 발굴이 진척되고 이를 바탕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면서, 또한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유전자 연구가 더해지는 동안 지금은 학계의 주류 이론이 되었습니다.
쿠르간 가설을 뒷받침하는 발굴은 점점 더 많아지는 추세죠. 사실 고부스탄 유적은 이런 스레드니스톡 문화와 같은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문화가 발생한 지역과는 2000km 가까이 떨어져 있습니다. 오늘날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접경 지역의 강줄기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문화들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살다보면 초원이나 평지의 경험을 하기가 어렵죠. 특히 수도권에서의 생활은 울퉁불퉁(?)한 지형과 많은 건물들로 인해서 먼 거리를 보는 경험을 거의 하지 못합니다. 대개는 산에 올라 먼 경치를 바라보는 것이 보통인데, 초원, 그러니까 평지에서 바라보는 먼 거리의 풍경은 굉장히 느낌이 다릅니다. 사실 고부스탄에서 제가 느꼈던 느낌과 감정 그리고 거기에서 일어났던 상상은 인도-유럽어를 만든 문화들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아니라 초원지대를 바라보며 느꼈던 낯설고 기묘한 기분 때문이었을 겁니다.
남부로는 이란, 중간에는 아제르바이잔, 북쪽으로는 러시아로 이어지는 카스피해 주변에는 오래된 문화들의 흔적들이 간간히 남아 있습니다. 제가 고부스탄 암각화 유적에서 만났던 가이드와 대화를 하며 알게 된 것들은, 이 암각화들에는 제식에 관한 기록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제게 이 가운데 제식을 주도하는 샤먼 shaman 을 구분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알려주곤 했는데, 그만큼 인류의 오랜 기억 속에 제사의식은 중요한 것이었고, 그것은 또한 먼 옛날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는 아주 주요한 방법 중 하나였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어떤 문화들은 그러한 제사의식을 다른 문화들보다 훨씬 더 강조한 경우들이 간혹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카스피해-흑해 사이에 펼쳐진 초원지대에서 동쪽으로 조금 더 이동해 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후 이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고문화를 ‘신타시타(신타슈타)’라고 부르는데, 이들 문화의 흔적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접경지대에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스레드니스톡 문화는 마리야 김부타스의 초원 가설의 기반이 되었던 문화였고, 신타시타 문화는 현재 우리가 <리그베다>라고 알고 있는 문헌의 근간이 되는 문화라는 점이 고고학 연구를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베다 문학의 구체적인 고유명사들, 특히 신들의 이름이 발견되는 곳은 약 천 년 후의 시리아 지역입니다. 그리고 몇 백 년이 더 지나면 이들은 인더스 문명과 융합하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문화'의 큰 줄기를 형성하게 됩니다.
시상반나 국제사진 페스티벌 Xishuangbanna Foto Festival 에 출품
현재 중국 윈난성 시상반나에서 열리고 있는 시상반나 국제 사진 페스티벌에서 저의 사진 연작 <순야타 suññatā 空>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4400년 스레드니스톡 문화를 중심으로 인도-유럽어족 문화들이 초원에서 퍼져나가던 이야기로 시작해, 약 천 년 후 신타시타 문화 그리고 신타시타 문화의 구성원들 중 상당수가 남부로 이주하며 남긴 흔적들, 오늘날 시리아 지역에 위치했던 고 왕국 미탄니와 그들의 이주로 아케메네스 제국의 페르시아 문화가 형성되고, 인도 북부에는 전차를 모는 인도-아리안 전사들이 정착하며 ‘차크라’의 신화적 서사가 시작되는 이야기들은 언뜻 그저 머나먼 서사시를 쓰는 것 같지만, 실상 한반도 문화의 주류가 ‘불교’였음을 생각해 볼 때, 그리고 삼국시대 봉분의 양식이 ‘크루간’의 양식과 유사한 측면이 있음을 볼 때,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다른 문화들과 달리 인도-유럽어 문화들은 국가 중심적이지 않으면서도 그 어떤 어족의 문화들보다 아주 구체적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의 생각들을 이루는 것들의 밑바탕에 있는 것들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 저의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약 4년의 작업을 거쳐 이제 그 작업들은 중국 남부에 위치한 도시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중국 남부, 인도의 남부 그리고 미얀마 등의 아시아 지역에서는 또한 불교의 오래된 전승들이 남아 전해지고 있습니다.
문화는 단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문화적 순수성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제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왜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가?
제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 루돌프 불트만 Rudolf Karl Bultmann 의 관점처럼, “신화의 껍질을 탈각시켜서” 정말 보아야 할 것들을 보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것 말이죠. 신화적 서사는 먼 옛날의 남 이야기 같지만, 사실 오늘날의 현대인들도 신화적 서사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정당화를 위해 극단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세상을 보는 방법에 무언가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에 ‘과도한 무게’를 두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사실상 토대 foundation 가 부실한 생각에 지나친 헌신을 하는 것은 단순히 평평한 지구론자들 Flat-Earthers 뿐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실상 지구상 대부분의 인간들이 취하는 태도입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주된 신앙, 믿음의 대상들의 “껍질을 벗기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세상을 그리고 그를 통해 자신을 어떻게 비춰봐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의 작품활동은 그러한 것들을 표현하며, 그러한 것들을 반영해 이야기를 풀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이렇게 마무리 지어야 하나요?
세상에 평화가 깃들기를 …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