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은 태극기, 성조기 그리고 이스라엘 국기를 흔드는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일반적인 동맹을 넘어서는 "인지적 동맹(cognitive alliance)"으로 정의된다.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군사 조약을 체결한 동맹관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유대와 전폭적인 안보 지원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관계를 보여준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가장 중요한 중동 동맹국으로 인식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지원 규모는 현대 이스라엘 건국 이후 이후 약 1350억 달러로 미국의 다른 군사 동맹국들보다 훨씬 큰 규모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미국은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트루먼 대통령의 지지로 시작된 이 관계는 이후 냉전기 동안 미국은 이스라엘을 중동의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하게 되는 것이다. 1973년 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미국과의 관계를 심화시키기 위해 공공외교와 전략적 정보 자산 공유를 강화했다. 냉전 후에도 테러와의 전쟁 및 전략적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강조되며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이스라엘이 미국과의 관계를 구축하며 발굴한 외교 자산과 전략은 한국 외교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특히 공공외교, 국가 정체성을 활용한 접근 방식은 정말 유용한 전략이다.
미-이스라엘 동맹은 다음과 같은 층위들로 분석할 수 있다:
- 1층위: 사람(People) - 미국 내 유대인 로비 및 정치적 영향력.
- 2층위: 효용(Utility) - 이스라엘의 전략적 가치를 활용한 정보 제공 및 협력.
- 3층위: 가치(Value) - 민주주의와 같은 공통된 가치를 기반으로 한 연대.
- 4층위: 정체성(Identity) - 유대교와 기독교의 종교적 연대 및 역사적 공감.
이 내용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특수 관계: 인지적 동맹의 배경>(2018, 인남식 @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을 참고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인지적 동맹(cognitive alliance)"으로 이해된다. 이는 두 나라가 공식적인 군사 조약 없이도 강력한 유대와 안보 지원을 유지하는 독특한 관계를 형성했다. 이것은 역사적 배경과 전략적 이해관계, 그리고 종교적·문화적 연대를 통해 형성되었으며, 이는 미국 내 유대인 로비와 복음주의자들의 지지, 그리고 이스라엘의 공공외교 전략 등을 통해 강화되었다.
이스라엘은 미국 내 복음주의자들을 대상으로 종교적 연대를 중심으로 한 민간외교 전략을 펼쳐왔다. 이를 통해 성서적 서사를 활용하여 정체성을 강화하고, 복음주의 네트워크와의 협력을 통해 미국 내 지지 기반을 확장하였으며, 이러한 전략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쳐,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등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1980년대 이후 미국 복음주의의 영향을 받아 개신교 내에서 성경 무오설과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는 근본주의가 더욱 강화되었으며, 이는 미국 복음주자들의 반공주의와 보수적 정치 성향과 결합하여 현재의 사회적·정치적 현상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그 결이 유사하다.
일부 집회나 시위에서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흔드는 모습은 이러한 역사적·종교적·정치적 연대를 표현하는 시도로, 이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모습이 되었다. 한편 그 이면에는 지역적 기반, 자기정체성과 같은 집단의 자아확립에 실패한 미성숙한 사고방식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1) 자국영토와 재산피해 없이 2차 대전에서 승리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꼰대'가 된 세대의 양육으로 자라난 미국의 베이비 부머들과 (2) 갑작스런 식민지배로부터의 해방, 본토에서의 긴 전쟁과 국제정세에 휩쓸리며 생존에 성공한 세대의 양육을 받은 한국의 베이비 부머들을 중심으로 한다는 기묘한 유사성이 깔려 있다.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가족관'이 한 사람의 정치적 성향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공공외교와 정보 자산 활용
냉전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동유럽과 러시아 유대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소련과 아랍 국가들의 전략 활동에 관한 정보를 미국에 제공했다. 특히 모사드와 같은 정보 기관은 미국 CIA와 긴밀히 협력하며,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지원했고 이스라엘은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정보 자산을 미국과 공유하며 전략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소련 붕괴 이후, 중동 내에서 이스라엘의 전략적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어왔다. 이에 대응해 이스라엘은 공공외교를 강화하고, 미국과의 협력 방식을 다변화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재를 수용하며, 중동 내 평화 프로세스를 촉진하는 전략을 택한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전환되며, 이스라엘은 아랍-이슬람권에 대한 테러 관련 정보와 대테러 작전 노하우를 제공하며 다시 전략적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미국 내 복음주의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스라엘의 민간외교 전략 분석
이스라엘은 미국 내 복음주의자들을 대상으로 종교적 연대를 중심으로 한 민간외교 전략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공고히 해왔다. 이러한 전략은 종교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심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는 전통적인 외교와 차별화된 접근 방식으로 평가된다.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종교적으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바라보며, 성서적 서사를 통해 이스라엘과 강한 연대 의식을 형성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복음주의자들은 성서적 종말론(eschatology)과 메시아 도래와 같은 신학적 해석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흐름으로 나타나는데, 1970년대 이후, 미국 내 복음주의 세력이 보수 정당, 특히 공화당에서 주요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자, 이스라엘은 복음주의자들을 대상으로 한 민간외교를 본격화하고 전략적으로 시도한다.
(1) 성서적 서사를 활용한 정체성 강화: 정체성을 공유하다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정체성과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정체성을 제시하여 유대인과 복음주의 기독교인 모두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한다. 그러한 ‘정체성 공유’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땅의 신성함을 강조하며, 예루살렘의 종교적 중요성을 부각한다. 여기에 더해 미국에는 상당히 많은 세대주의적 성경해석이나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복음주의자들이 포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종말론적 세계관’을 제시하여 재림과 종말론적 서사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 계획의 핵심으로 설정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적 접근은 미국의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협력해 성경적 메시지를 기반으로 이스라엘 지지를 종교적 의무로 인식시키는 캠페인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이스라엘 지지를 일종의 종교적 의무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러한 접근은 1981년, 이스라엘 정부의 성지순례진흥과(The Pilgrimage Promotion Division)를 설립해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초청하고, 이스라엘 방문을 통해 유대-기독교 정체성을 강화한 사례를 통해 복음주의 지도자들에게 현대 이스라엘을 "성서적 약속의 성취"로 프레임화한 서사를 제시해 온 이들의 접근 방식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제리 폴웰(Jerry Falwell),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과 같은 복음주의 지도자들과의 연계를 통해 성지순례 경험을 확대하고, 그들의 영향력 있는 메시지를 미국 내 전파한 것은 한국에서는 1989년에 설립된 한기총과 같은 단체들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2) 복음주의 네트워크와의 협력: 이스라엘 지지, 종교적 의무가 되다
또한 미국 유대 위원회(American Jewish Committee)와 복음주의 네트워크 간 협력은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유대계 랍비 마크 탄넨바움이 협력해 유대-기독교 연대를 종교적, 정치적 기반으로 확산시킨 사례가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공유하며 궁극적으로 하나인 국가"라는 인식을 전파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공공, 민간외교 전략들은 성서적 메시지와 종말론적 서사를 결합한 접근 방식은 이성적 설득을 넘어 감성적, 신앙적 연대를 강화했다. 이러한 연대는 미국 공화당 내 복음주의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적극 활용해 이스라엘에 대한 지속적 지지 확보를 하는 동력이 되었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 및 대사관 이전과 같은 정책을 이끌어내기에 이른다. 복음주의 네트워크와의 협력은 이스라엘 지지 기반을 미국의 대중 차원으로 확산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진보적 기독교와 세속주의 유대인들은 복음주의와의 지나친 연대에 반대하며, 이는 이스라엘 사회 내부의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종교적 이데올로기와 도그마를 정치적 목적에 활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존재하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경우 1980년대 이러한 미국 개신교의 영향을 상당히 크게 받았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형성된 성경 무오설과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는 개신교 근본주의(Fundamentalism)는 1980년대 한국 교회의 신학적 기초를 강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와 종말론적 관점이 한국 교회의 설교와 교육에서 두드러지는데, 이는 가톨릭의 성경해석이 1943년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 성령의 영감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개방적인 태도로 전환되는 것과 대비된다.
미국의 복음주의(Evangelicalism)는 복음 전도와 개인 구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신학이다. 한국 교회의 대규모 전도 활동과 성장을 이끈 동력으로 평가되기도 하며, 빌리 그레이엄과 같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전도 집회는 한국 교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복음주의에서 강조된 세대주의 신학(특히 종말론)은 한국 교회에 수용되고, 1980년대 한국 교회의 설교와 종말론적 부흥 운동에 반영되었다. 이러한 영향에서 비롯된 성서적 종말론에 대한 강조는 대규모 부흥 집회와 설교에서 자주 나타난다. 목회자 중심의 리더십,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 효율적 조직 운영을 바탕으로 하는 대형교회 문화와 현대적인 찬양과 경배(Contemporary Worship) 도입으로 한국 교회의 예배 스타일을 변화시킨 것도 기본적 미국교회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우리가 현재 접하고 있는 반공주의와 보수적 정치 성향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미국 복음주의의 영향력은 1980년대 한국 개신교에도 영향을 미쳤고, 현재 미국의 정치 지형을 이해하는데에도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공산주의와 무신론에 대항하는 신앙적 태도가 한국 교회 설교와 사회 참여에서 두드러졌고, 한국 교회가 군사 정권과 협력하거나, 반공 이념에 기반한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한국 기독교(개신교)의 뿌리깊은 탈북민 정서 – 서북청년회와 한기총의 역사적 맥락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하나둘씩 붓길이 스쳐지나가는 동안에 나는 매우 중대한 사실을 하나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날 내가 싸인을 해준 아주머니는 열명이었는데 이들 모두가 불교신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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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난민' 정서는 대한민국 개신교회의 한 축을 형성할 정도로 강하다. 서북 지역 출신 개신교인들은 공산 정권의 박해를 피해 남한으로 이주하며 공동체적 연대를 형성했고, 잘 알려진 '서북청년회'는 이러한 연대의 중심이 되었다. 때문에 반공주의와 전투적 성향을 갖는 것이 그 특징인데, 이것이 남한 정권 초기 주요 반공 단체로 자리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에도 서북청년회는 남한 사회에서 개신교적 이념과 정치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드러냈으며, 이후 한국 개신교 내에서 정치적 활동의 전통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해방과 한국전쟁 직후 북한난민 정서를 가지고 있던 한국 교회 구성원들의 정체성으로 인해 이러한 성향이 꽤나 극단적으로 커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미국 복음주의 일부에서 발전된 번영 신학(Prosperity Gospel)은 한국 교회에도 영향을 미쳐, 신앙을 통해 물질적 축복을 얻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경우가 많았다는 일반적인 해석과 더불어 지역적 기반이 미약한 ‘난민정서’에서 비롯된 물질적 축복에 대한 집착이 번영 신학 프레임과 맞아 들어간 대형교회들의 재산분쟁 문제에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복음주의자 대상 민간외교 전략은 종교적 정체성과 심리적 공감 형성을 통해 미국 내 대중적 지지 기반을 공고히 했다. 이는 단순한 정부 간 외교를 넘어, 대중을 대상으로 한 심리적 연대를 중심으로 하는 공공외교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공공외교 전략을 모색할 수 있는 중요한 참고 사례인 것이기도 하지만, 현재 국내 정치지형적 상황과 결부지어 생각해본다면 이 땅에 일종의 ‘미국 복음주의자가 되고 싶은 북한난민' 정서를 키우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인지적 동맹 구축의 강력한 전략에 의해 일종의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인지적 동맹 구축 전략은 심리적 공감대와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한다는 점에서 매우 강력하다. 광장에서 삼국의 깃발을 흔들고 있는 개신교인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통해 북한 난민 정서와 미국에 대한 무제한적 신뢰 그리고 그러한 미국이 갖는 종교적 정체성인 현대복음주의와 그 성장 토양을 제공한 이스라엘의 공공외교전략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