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원

우주는 시뮬레이션이고 자유의지는 없는가?

Photographer Bhang 2021. 1. 7. 03:46
- Is the world eternal? It only this true and the opposite false?
Poṭṭhapāda, I have not declared that the world is eternal and that the opposite view is false. 

- Well, Lord, is the world not eternal?
I have not declared that the world is not eternal ...

- Well, Lord, is the world infinite, ... not infinite? ...
I have not declared that the world is not infinite and that the opposite view is false.

이 세계는 영원합니까? 이것이 진리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은 잘못되었습니까?
폿따빠다여, 나는 이 세계는 영원하다고도,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스승이시여, 이 세계는 영원하지 않습니까?
나는 이 세계가 영원하지 않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스승이시여, 이 세계는 무한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이 세계가 무한하지 않다고도 말하지 않으며,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 디가 니까야(The Dīgha Nikāya, Poṭṭhapāda-sutta 中)


자유의지는 있는가? 이 질문을 위해서는 "우리는 있는가?", "나는 있는가?"와 같은 식상한 질문을 할 필요가 생긴다. 개별적인 '개체들'의 존재 유무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상당히 사이버네틱 cybernetic 한 의문이 떠오른다. 우주는 시뮬레이션이 아닐까?

스티븐 호킹 Stephen Hawking 은 블랙홀의 사건지평선을 한 변의 길이가 플랑크 길이인 격자모양의 작은 사각형으로 나눈 후, 블랙홀의 엔트로피가 사건지평선을 덮는 데 필요한 사각형의 수와 같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개개의 사각형들은 1비트에 해당하는 정보를 담고 있으며, 각 정보는 블랙홀의 미시적 구조와 관련된 하나의 예 혹은 아니오 질문에 답을 제공한다(브라이언 그린). 여기에 '우주 = 정보' 모델이 이어지면 홀로그램이나 시뮬레이션 같은 모델이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고민을 조금 더 해보면, 우주 자체가 시뮬레이션이지 않을까 싶은 의구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 어쩌면 우주가 시뮬레이션이 아니라는 굉장히 신빙성 있는 증거가 된다. 이 질문 자체가 시뮬레이션 안에 있는 '유닛들'에게는 정말 아무런 해결책이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가정 즉, 우리가 시뮬레이션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는 것은 인간이 가진 지능의 특징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MATHEMATICIAN: HERE’S WHY THE SIMULATION THEORY IS STUPID
"THERE’S KIND OF A FAULTY LOGIC THAT GOES TO WHY A LOT OF PEOPLE THINK WE LIVE IN A SIMULATION.": futurism.com/the-byte/mathematician-why-simulation-theory-stupid

 

Mathemetician: Here's why the simulation theory is stupid

"I can make a model of atoms moving around, but it actually requires entire computers, which are all made of trillions of atoms, to make that simulation."

futurism.com

 

PHYSICIST TRASHES SIMULATION THEORY, SAYS IT’S BASICALLY A RELIGION - SORRY, NERDS!: futurism.com/the-byte/physicist-trashes-simulation-theory-religion

 

Physicist Trashes Simulation Theory, Says It’s Basically a Religion

Sabine Hossenfelder says simulation theory is built on leaps of faith, not scientific reasoning.

futurism.com

 

결론 맺기 원하는 '습성'에서 비롯된 문제들

우리는 매우 적극적으로 '우리'와 '자유의지'를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문제에 심각해지는 까닭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독립적으로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영속하는 주체를 기반으로 하고 나와 관련된 일련의 행위 혹은 현상들은 '나'라는 영속하는 주체, 근본적 속성을 바탕으로 하는가?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은 인류의 수많은 사상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인간의 기억을 기반으로 하는 정체성은 사실 그다지 정교하지 않고, 영혼이나 사후세계를 생각하는 사고 방식은 죽음에 대한 부정에서 비롯되었다. 상당히 많은 문화들이 죽음에 대한 우회적 표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러한 점을 잘 나타내준다. 

"개체는 존재하기 위해 전우주를 필요로 한다(It also requires the whole universe in order to be itself)"는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의 말은 우주와 각 개체는 상호관계적으로 자신을 존속시킨다는 점에 대한 기술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유의지'는 우리 자신과 환경을 철저한 타자로 완전히 독립된 개체로 상정하는 것을 요구받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점으로 인해 우리는 '자유의지'라는 개념 자체를 굉장히 잘못 세운 것인지도 모른다.

우주의 초기조건으로부터 이후의 진행, 일정한 불규칙성으로 인한 은하와 별들의 생성, 초신성의 폭발로 더 다양해지는 원소, 적절한 우주의 팽창 속도, 핵력과 중력 등과 같은 힘의 존재함 등 현재 우리가 우리이기 위해서는 우주의 모든 역사를 전제조건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유의지를 걱정하기 전에 이런 문제를 떠올려 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결정론이니 자유의지니 하는 것에 앞서서 현재 우리의 상태가 우주의 전역사적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존립을 위해서는 우주가 지금의 모습이어야 하고, 지금과 같은 법칙으로 움직여야 한다.

결정론이나 자유의지 같은 것들은 과거 - 현재 - 미래라는 분할에서 비롯된다. 사실 이것들은 그 자체로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러한 시간관이나 단일방향적 인과관은 인간의 추상관념에 불과한 것들이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간다는 인식은 우리가 변화를 인식하는 방법일 뿐 우리는 시간의 실체를 정확히 모르는 것은 물론 물리적으로 파악된 기본적인 현상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일상 속에서 물체가 속도를 높이면 관찰자와의 상대 속도의 관계 속에서 서로의 속도가 파악된다. 그러나 광속의 경우 관찰자의 속도가 변해도 그대로인데, 이것은 좌표평면에 한축을 공간으로 한축을 시간으로 그릴 대 곡선처럼 표현되는 현상이다. 즉, 공간 상의 이동속도는 시간 흐름의 속도와도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면 혹자가 거대한 우주를 만들어서 실험하기에는 자유의지 같은 것 자체가 굉장히 편집증적이거나 굉장히 낭비적이다. 결정론이나 자유의지 같은 것들은 시간에 대한 잘못된 관념에서 비롯된 것들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한 접근 방법인지도 모른다. 이는 자유의지의 성립은 원인과 결과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오히려 자유의지의 유무나 우주는 결정론적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지성이 결론을 맺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졌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더 적절한 방향성이다. 즉, '우리에겐 자유의지가 있는가?!', '우주는 결정되었는가?!'와 같은 질문에 '해답'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가 가진 시간관이나 인과관에 대한 문제제기보다 더 강렬한 이유와 관계가 있는 문제다. 즉, 문제가 있는 시간관, 인과관의 논의는 제쳐두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있는가?"라는 질문을 부각시키는 것은 인간의 지성이 기본적으로 생물적 욕구 충족을 위해 발달한 생존 기술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오히려 시간과 인과에 대한 관점의 확장을 통해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지도록 만들 수 있다. 

과학의 발달로 우리는 이제 거시적 현상들은 확률분포에 의해 이해될 수 있으며, 미시세계 대상들의 존립은 개별적이고, 존재론적이기 보다는 상호작용적이라는 점을 알고 있으며 상호작용이 일정한 계 system 를 형성하면 새로운 계가 등장하고, 다른 스테이지들이 발생한다는 점도 알고 있다. 

한 가지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확률적이고, 중첩적이고, 비결정적적인 특징이다.
우주가 근본적으로 그렇게 명확하지 않은 양상을 보이는데 왜 우리는 그토록 '닫힌 결론'을 원하는 것일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는 식의 질문은 우주에 대한 의문을 위해 적합하다기 보다 생물이 원하는 것을 획득하기 위해 적합한 질문이다. 제일원인, '첫 번째 원인자'를 찾기 위해 소급에 소급을 반복하는 것은 철학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나무 위에 있는 열매를 따먹는 행동과 다르지 않은 지성의 층위에 있다. 우리가 선형적 인과의 틀 위에서 사고하는 것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생물이기 때문이다.

 

인지적 표상과 추론은 밥을 먹기 위한 것


인지적 표상으로부터 추론하는 능력은 인간 뿐만 아니라 자연계 상당히 많은 생물들에게서 관찰된다. 인간은 여전히 인간의 지능, 인식과 인지 그리고 어떠한 추론과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생각들이 다른 생물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라고 믿고 싶어하지만,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마이클 토마셀로에 의하면 "대형 유인원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장면을 상상하거나 추론하기 위해 범주, 도식, 모델을 활용한다."

이것은 인간의 지능이 "시뮬레이션"에서 발달, 확장되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즉, "이렇게 접근하면 저렇게 결론이 난다"는 생각을 발달시켜온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생존 가능성을 높였다. 시작과 끝의 상정이다. 우리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언뜻 심오해보이는 이 질문은, '저 나무 위의 열매를 먹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우우우, 우우, 우우우, 우우우" 혹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사물을 응시하는 유인원은 막대기를 하나 집어다가 열매 주변을 두드린다. 창조와 종말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인과'를 고민하는 것은 고등한 지능의 측면이 분명 포함되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인과'에 대한 이해와 그것에 대한 고민은 생존을 위해 먹이를 효과적으로 포획하기 위한 수단의 발전이다. 우리가 만일 완전히 새로운 단계의 지성으로 우주에 대하여 고민한다면, 기본적으로 그것은 우리가 흔히 하는 방식의 '선형적 인과적 접근'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인과추론을 선형적으로 하기 때문에 종교의 가르침들도 그러한 방식으로 왜곡하여 받아들여 왔으며, 원형의 부동자나 제일원인 같은 개념에 집착하게 된다. 우리의 우주에는 근본이 되는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자체는 심오해보이나 그것은 막대기로 열매를 따먹기 위한 지능과 다르지 않은 패러다임의 것인 셈이다. 

인간은 확실성과 지식을 동일시 하고, 불변하는 진리를 추구하려고 하지만
오감과 인식 그리고 인간의 의식은 우리를 일관되게 잘못된 생각으로 이끈다.
더불어 불변하는 진리, 절대성 그리고 완전성과 같은 것의 추구란
인간의 두뇌가 발달하면서 발생한 일종의 부작용과 같은 것이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피곤하면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것처럼,
'시작과 끝'을 상정하는 것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고등화의 계기를 얻은 우리 몸의 본성 같은 것이다. 

선형적 인과의 틀에서 자유롭게, 불확정성, 확률적 사태, 중첩과 중간 결론적 접근 등에 익숙한 지성에 이르기 전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시작과 끝을 상정하며 나오지 않는 결론에 힘겨워하며 엉뚱한 맺음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엉뚱한 맺음에서 비롯되는 상상의 산물들이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 즐거움을 준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편의 동화처럼.

 

우주가 시뮬레이션일까? 흠 ..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면 우리는 우주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아주 쉬운 결론이 생긴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적고 있고, 이후에 당신이 읽게 될 이 글은 내 컴퓨터를 이용해 적어내려가는 콘텐트(content)다. 웹 상에서 보기 좋은 양식으로 표현되는 이 글의 구현을 위해서 HTML이라는 방식이 필요할텐데 HTML 코드 안에 이 내용을 적은 소스를 그대로 보여주면 그때부터 가독성이 매우 떨어진다. HTML을 구현하려면 웹 브라우저 web-browser 라는 툴이 필요하고, 웹 브라우저는 운영체제 operating system 위에서 작동한다.

운영체제 operating system 은 설계된 하드웨어를 단말 terminal 을 우리가 다룰 수 있도록 해주는 매개자다. 나는 맥 macOS 을 사용하고 있으니, 유닉스 기반의 시스템에서 '터미널'을 이용해 하드웨어를 더 직접적으로 다루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코드 code'로 되어 있다.

 

전기신호는 소프트웨어의 본질이 아니다


디지털 시스템에서 나타나는 결과물들은 기본적으로 전기신호다. 흔히 '이진수'라고 표현하는데 on/ off 신호를 의미한다. 이것을 아주 높은 파장으로 움직이면 선형적 연산은 실시간 동작처럼 인식된다. 30년전 컴퓨터에도 16MHz CPU가 탑재되어 있었다. 현재는 기가헤르츠의 칩이 복수의 코어 위에서도 동작한다.

"이 문장은 몇 개의 on/ off로 되어있는가?" - 라고 하고, 문장을 플레인 텍스트 plain text 로 저장하면 글자수와 공백만큼의 용량이 바이트로 표시된다. 1바이트는 8개의 비트로 구성된다. 8개의 on/ off 구성을 통해 저 문장을 구성하는 게이트 아래 전자의 숫자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기기 위에 쓰여진 문장의 실체는 전자 electron 인가? 

나는 유사한 질문을 2018년에 구상하고 2019년에 발표한 사진 연작을 통해 해보기도 하였으나, 3개월만에 이것은 질문 자체가 부적절함을 느꼈다. 그러나 시기별 작품들은 나의 생각의 변화도 잘 보여주기에 오늘도 잘 다듬어진 시행착오들을 자랑스럽게 게시해두고 있다: www.bhangyoungmoon.com/polyhedrons

 

다면체 탐구 Exploring Polyhedrons | 사진 | Bhang, Youngmoon | 3D 프린팅

이 연작 다면체 탐구 Exploring Polyhedrons 는 사진은 물론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모든 사물의 인과성의 바탕에 ‘인간의 언어’가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www.bhangyoungmoon.com

 

플래시, SSD 메모리를 기준으로 보면 데이터는 셀 cell 에 전자 electron 의 형태로 보관된다. 정리하자면, 이 글은 전자 electron 와 전기 신호들에 대한 하드웨어의 해석이며, 이것을 우리 인간이 읽을 수 있도록 시각화 했음을 물론, 그 형태는 나의 모어 mother tongue 인 한국어로 보이게 된다. 부분부분 강조를 위해서 혹은 더 명확한 정보의 전달을 위해서 영어 표현이나 한자 표기를 병행했다.

어느 순간 이 글이 자기 인식을 하고 깨달음을 얻어 자신은 전자로 되어 있으며, CPU, RAM, Storage 등등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은 허상이니 밖으로 나가야 함을 깨닫는다. 

그런데, 어디로 나갈 것인가?

나의 컴퓨터에서 이 글이 쓰여지고 보여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라는 하나의 총체가 필요하다. 키보드만으로도 안되고, 모니터만으로도 안되며, 메인보드만으로는 안된다. 저장장치만으로는 더더욱 의미가 없다. 수 백 만 장의 사진이 들어있는 하드디스크나 플래시 메모리, SSD는 그것을 읽을 수 있는 '단말'이 없으면 그냥 쇳덩어리, 플라스틱 덩어리 일 뿐이다.


마린의 "Go, Go, Go"는 "Let there be light"를 전제로 성립한다


스타크래프트 유닛 마린 Marine 은 하나의 게임이라는 사태 속에서만 존재한다. 하나의 게임이라는 사태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게임 시나리오/맵, 게임, 게임을 실행할 수 있는 운영체제, 하드웨어가 필요하고, 그 게임을 하기 위한 게이머가 있어야 하며, 상대역을 할 컴퓨터 혹은 상대 게이머가 있어야 한다. 

하나의 마린이 존재하는 '게임 한 판'은 IBM이라는 회사가 천공카드 리더를 만들고, 한참 후에 에니악 같은 컴퓨터를 개발한지 반세기가 지나야 한다는 조건이 앞서서 있다. 사람을 달에 보냈어야 하고, 해당 연산을 진행할 컴퓨터가 60년대에 개발되어 있어야 했다. 1981년 CGA 그래픽 카드가 개발되고 90년대에 들어서면 VGA 그래픽 카드가 보급되어야 하는 상황이 앞서 일어나야 한다. 블리자드라는 회사를 설립한 사람, 사람들이 태어났어야 한다.

그보다 조금 더 다른 역사들을 보면,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존재해야 한다. 1957년 소련은 스푸크니트를 쏘아 올렸고, 그에 대한 경쟁으로 미국은 1969년 달에 발자국을 찍는다. 이러한 경쟁을 위해 컴퓨터 기술의 발전은 반드시 필요했다. 게임 한 판 하기 위해서는 인공위성도 쏘아야 하고, 달에 착륙도 해야 하며, 세계대전도 두 번은 해야 한다. 중동전쟁을 하고,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미국의 국방연구소는 다양한 첨단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민간에서 실용화도 되어야 한다. 전자레인지는 삼각김밥을 돌리기 전에는 우주 비행사들의 전유물이었다.

좀 더 많이 건너 뛰면, 콜롬버스가 인도를 향해 못가고 미대륙으로 가야 했다. 장기간의 항해 기술이 가능해져야 했고, 그러한 거대한 프로젝트를 운영할 조직이 생겨나야 했다. 케빈 애쉬턴이 강조하는 것처럼, 위대한 성취는 소수의 천재가 아니라 누적된 인류의 지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수 백 만 년 전, 호모속에 속하는 한 종이 공동체와 먹을 것을 나누기 위한 노력을 여러 세대 반복하지 않았다면, 불에 음식을 구워먹지 않았다면, 오늘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특정한 사태인, 스타크래프트 유닛 마린 Marine 이 달려가는 한 상황은 이렇게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변수들을 조건으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다. 마린의 "Go, Go, Go"는 "Let there be light 빛이 있으라"를 전제로 성립한다. 우주를 창조해야 마린도 총을 쏠 수 있고,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South Korea)에서 태어나야 미국에서 만든 게임을 해도 잡혀가지 않는다. 게임 한 판, 마우스 클릭 몇 번의 조건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어쩌다보니 게임 한 판이 이루어지는 십 여 분 동안에 마린은 자기 인식을 하고, 자신이 게임 속에 존재하는 유닛임을 인식한다고 해보자. 컴퓨터 단말은 게임 속 유닛의 존재 조건이지만 유닛이 자신의 우주 밖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는 아니다. 컴퓨터 단말은 인간이 수많은 부품과 전기신호, 전자의 통제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어떠한 것들'을 하기 위한 도구다. 마린의 자기 인식은 우리에게 쉽게 알려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개는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 밖의 존재를 상상하며 멍하게 서있는 마린은 게이머에게는 스트레스 요소일 뿐이다. 그렇게 말을 듣지 않던 마린은 결국 적 유닛에게 죽음을 당한다.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게이머와는 달리 클로킹 유닛이 다가옴을 알 수 없던 마린은 순식간에 죽음을 당할 뿐이다. 마린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게이머의 컨트롤을 따라야 한다. 이런 것이 유일신 종교들의 가장 일반적인 관점이다.

말을 듣지 않는 유닛은 유닛에게는 전능한 존재일 게이머에게는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 오히려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유닛에게 컨트롤 당한다는 생각마저 들도록 만든다. 짜증을 내며 마우스를 집어 던질지도 모른다. 이쯤되면 게임이 게이머를 컨트롤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가 자주 있음을 알게된다. 게임 속 유닛은 게이머의 지배를 받지만, 게이머 역시 게임의 존재를 통해 게이머라는 전지적 시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시뮬레이션은 시뮬레이션 운영을 위한 다양한 조건이라는 제한사항이 있다. 전능한 운영자에게도 시스템 한계라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게이머가 유닛을 컨트롤하는 것이 기본적인 방향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유닛도 게이머를 컨트롤하는 요소가 있다. 시뮬레이션은 시뮬레이션 안에 존재하는 개체들을 조정하지만, 시뮬레이션의 운영은 전능한 시뮬레이션 운영자를 길들인다. '자유의지' 같은 개념을 상정한다고 하면 존재하는 어떤 것도 자유의지라는 것을 가질 수 없다. 궁극적이고, 분리된 자유의지를 상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은 것이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다.

다시 마린으로 돌아가서, 어쩌다보니 살아남았다. 자신을 컨트롤 하는 게이머를 만나고 싶어서 세상 밖으로 나와 게이머와 조우 할 수 있을까? '마린'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게임이라는 세상과 그 게임을 운영할 시스템이 전제된다. 시뮬레이션 안의 존재에게 자기 인식과 시뮬레이션 인식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시뮬레이션 밖의 세상과의 연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뮬레이션 밖에서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뮬레이션 인식과 자기 인식은 시뮬레이션 밖에 '진짜 현실'이 있고 나의 실체는 거기에서 시뮬레이션에 연결되어 있다는 조건 없이는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게 된다.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상호작용

분명 우리 우주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있다. 우리의 이해를 위한 시각화 모델들은 지나치게 단순화 되어있거나 혹은 과도하게 결론지향적이고 따라서 매우 부정확한 모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시각화 모델을 실체로 받아들이는 실수를 범한다. 

이는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기보다 명확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몰입하는 경향을 보인다. 우주의 현재 형태는 결과론적인 것이 아니라 중간과정적 중간결론이다. 우주는 극단적인 곡률의 상태에 있었던 시기가 있었고, 급팽창, 가속팽창, 감속팽창 등 다양한 변화를 통해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도 변화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물리학자들은 수학적 기술과 우아한 논리적 결론 도출을 위해 다중우주 같은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고, 홀로그래피나 시뮬레이션 같은 심상을 도입하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계가 단순히 이렇다 혹은 저렇다 식으로 단순히 기술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 번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도 엄청난 숫자의 분자교환이 이루어지고 그러한 과정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와 상호작용의 이해 시도에서도 수많은 신비로운 앎의 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단순한 물질들의 상호작용이 일으킨 새로운 시스템은 의식 consciousness 을 가지고 자기관찰, 자기인식 뿐만 아니라 더 넓은 세계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다. 한순간의 자기인식과 알아챔도 무한히 신비로운 순간이거늘, 굳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폄하하고, 무의미한 질문과 논리적 오류를 일으킬 시도에 몰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적인 층위에서의 자유의지에 대한 의문을 품는 것은 굳이 묻고 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인지도 모른다. "개체는 존재를 위해서 전 우주를 필요로 한다"는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말로 맺어본다.

 

"It also requires the whole universe in order to be itself."
- Alfred N. Whiteh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