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AI 시대 예술하기 - part #7: 지식의 한계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지식.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한 측면이다. 이 열망은 철학, 과학,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났으며, 예술 분야에서 조차 객관적인 기준과 확고한 해석을 추구하는 경향을 만들기도 했다. 지식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철학적 탐구로 이어진다. "관찰의 이론 적재성," 확실성의 개념과 그 한계, 기초를 전제로 하는 지식(토대주의), 그리고 정합주의적 인식론의 관점에서 예술이 지식의 한계를 어떻게 드러내고 새로운 인식론적 가능성을 어떻게 열어가는가?
관찰의 이론 적재성: 예술적 시각을 형성하는 틀
토머스 쿤(Thomas Kuhn)과 노르우드 핸슨(N.R. Hanson)은 인간이 보는 세계가 이미 우리의 믿음과 기대, 선행 이론에 의해 필터링되고 형성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객관성이란, 이미 주관성에 깊이 침투된 채 구성된 것임을 암시한다. 이들에 의해 제시된 "관찰의 이론 적재성(theory-ladenness of observation)" 개념은 우리의 관찰은 객관적인 정보 수집이 아니라, 기존의 믿음, 기대, 그리고 이론적 틀에 의해 심오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즉, 서로 다른 사고의 배경을 가진 관찰자는 동일한 대상을 보더라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형태 심리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중적인 그림들은 이러한 이론 적재성의 대표적인 예시로서,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선행하는 지식과 경험에 의해 얼마나 깊이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핸슨은 "이론과 해석은 처음부터 보는 행위 속에 존재한다"고 강조하며, 관찰 행위 자체가 이미 ‘이론적인 틀 안에서 이루어짐’을 시사한다. 즉,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의 생각을 반영하는 행위다. 수용되는 모든 정보는 단 한순간도 순수하게 객관적일 수 없다.
예술 감상에 있어 이러한 이론 적재성은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의 과거 경험, 예술사적 지식, 문화적 배경 등이 일종의 '이론'으로 작용하여 작품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해석을 결정짓는다. 이러한 일종의 ‘한계상황’은 예술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존재하기 어려우며, 감상자의 주관적인 해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AI 예술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러한 이론 적재성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AI가 예술 작품을 생성하는 과정은 방대한 데이터 세트에 대한 학습과 알고리즘에 기반한다. 이 데이터 세트와 알고리즘 자체가 특정한 '이론'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AI가 생성하는 결과물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AI 예술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학습 데이터에 내재된 편향과 패턴을 반영하는, 일종의 '이론적재적’ 산물(a theory-laden artifact)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AI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인간 역시 자신의 예술적 지식과 경험이라는 이론적 틀을 통해 작품을 해석하게 되므로, AI 예술의 의미는 창작 주체인 AI와 감상 주체인 인간 사이의 복합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확실성의 환상: 예술에서의 기초적 지식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인간은 오랫동안 확실하고 흔들리지 않는 지식의 토대를 갈망해왔으며, 철학에서는 이러한 열망이 토대주의(foundationalism)라는 인식론적 관점으로 나타났다. 토대주의는 모든 지식이 의심할 수 없는 기초적인 믿음이나 원리로부터 연역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술 분야에서도 이러한 확실성에 대한 열망은 존재하여, 특정한 기술이나 양식을 '기초'로 간주하고 이를 숙련하는 것을 예술 창작의 필수 조건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전통적인 예술 아카데미에서는 해부학, 원근법, 색채 이론과 같은 기본적인 기술들을 예술 교육의 핵심으로 강조하며, 이러한 기술 숙련을 통해 '좋은' 예술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강조했다.
그런데, 철학적 토대주의는 그 한계에 대한 비판에 직면해왔다. 어떻게 의심할 수 없는 기초적인 믿음을 확립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기초로부터 어떻게 모든 지식을 확실하게 연역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이 제기되어 왔다. 예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특정한 기초 기술이나 양식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것에 대한 비판이 등장했다. 20세기 이후 등장한 개념 미술, 포스트모더니즘, 반예술 등의 흐름은 전통적인 예술의 기초와 규범을 거부하거나 해체하며 예술의 개념을 확장시켜왔다. 이러한 예술 운동들은 예술의 가치가 반드시 전통적인 기술 숙련이나 재현 능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념, 아이디어, 사회적 메시지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결정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합주의와 AI 패러다임: 연결과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예술
정합주의(coherentism)는 지식이 반드시 절대적인 기초 위에 세워질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믿음들의 체계 내에서 서로 지지하고 연결되는 정합적인 관계 속에서 그 의미와 정당성을 획득한다고 주장한다. 즉, 하나의 믿음이 정당화되는 것은 그 믿음이 다른 믿음들과 논리적으로 일관되고 설명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통일된 체계를 형성할 때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합주의적 관점은 인공지능이 정보를 처리하고 학습하는 방식과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 AI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하여 데이터 간의 통계적, 확률적 관계를 파악하고, 이러한 관계의 밀도와 연결성을 바탕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한다. AI가 예술 작품을 생성하는 과정 역시 이와 유사하게 이해할 수 있다. AI는 방대한 예술 작품 데이터 세트를 학습하여 다양한 스타일, 기법, 주제 간의 관계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을 생성한다. AI가 생성한 예술 작품의 스타일과 형태는 특정한 기초 원리나 규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학습한 데이터 전체와의 정합성, 즉 얼마나 학습된 패턴과 유사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는지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다.
플루서의 ‘장치’ 개념은 그의 후기 미디어 이론의 핵심 주제로서, 후기 역사 시대의 특징을 이루는 프로그램화된 기능을 나타낸다. 플루서에게 장치는 미리 결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하는 시스템이며, 그 안에서 개인은 장치의 내재적 논리에 의해 활성화되는 ‘행위자(player)’ 또는 ‘기능 담당자(functionary)’로 기능하게 된다. 장치(기술)는 인간과 세계 사이를 매개하지만, 장치 자체가 인식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제시하기도 한다. 미디어를 포함한 장치는 세계를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인식하는 대로 세계를 제시하여 우리의 시각을 형성한다. 사진가(인간)는 장치(카메라)의 외부 설정을 조작하여 제어하지만, 내부 프로그램의 불가해성에 의해 동시에 제어되는 ‘기능 담당자’ 또는 ‘행위자’로 간주되는 것이다. 기술 이미지는 장치에 의해 생산되며, 세계의 직접적인 재현이라기보다는 텍스트나 개념의 추상화인데, 기술 이미지는 텍스트에서 추상화되어 전통적인 이미지와 세계 자체를 넘어선 세 번째 수준의 추상화를 나타내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갑작스럽게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를 꺼내는 까닭은, 예술작품 생성을 위한 AI 시스템은 플루서의 틀 내에서 현대적인 형태의 ‘장치’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프로그램된 기능을 갖춘 지능형 기계, 확률을 바탕으로 동작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플루서는 컴퓨터를 포함한 모든 장치를 계산 기계이자 일종의 ‘인공 지능’으로 간주한다고 볼 수 있는데, AI는 플루서의 장치와 마찬가지로 알고리즘과 계산 논리에 기반하여 작동하기 때문이다. AI 이미지 생성은 텍스트 프롬프트를 분석하고 학습된 패턴을 기반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알고리즘에 의존한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AI의 이러한 작동 방식은 예술 감상에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전통적인 예술 감상 방식이 작품의 기초적인 요소나 작가의 의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면, AI 시대의 예술 감상은 작품을 거대한 데이터 네트워크 속에서 이해하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정합주의적 접근 방식을 취할 수 있다. AI가 생성한 예술 작품은 종종 예측 불가능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이는 기존의 예술적 지식 체계와의 정합성을 통해 그 의미를 파악하고 이해해야 함을 시사한다. AI 시대의 예술은 우리에게 확실한 기초를 찾는 대신, 다양한 요소와 관점들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체계 속에서 예술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도전한다. 소위 "AI예술"이라고 해도, 그것을 생성하고 읽어내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다. AI간의 상호활동으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기계들의 사회생활 그 자체는 우리가 어떠한 수혜 혹은 관찰자가 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의미있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AI 예술: 인식론적 논쟁의 거울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관찰의 이론 적재성," 확실성, 토대주의, 그리고 정합주의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AI 시대의 예술이 이러한 인식론적 논쟁들을 어떻게 반영하고 심화시키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이론 적재성: AI를 설계하고 학습 데이터를 큐레이션하는 인간의 이론적 틀과, 작품을 감상하는 인간의 예술적 지식과 경험이라는 이론적 틀 모두를 반영한다. AI가 학습한 데이터에 내재된 편향과 관점은 AI가 생성하는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기계가 생성한 '관찰'(예술 작품)조차 중립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 확실성: 생성물의 종종 예측 불가능하고 새로운 본질은 예술 평가에 있어 확실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에 도전하기도 한다. 때로는 불쾌감 혹은 짜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AI에 의해 생성된 생성물은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쉽게 분류하거나 단정적인 해석을 내릴 수 없는 경우가 있고, 이는 우리에게 사실 확인이라는 별도의 프로세스를, 때로는 모호성과 다원적인 관점을 수용하도록 요구한다.
- 토대주의: AI에 의해 생성되는 결과물들은 전통적인 예술적 기술 숙련이라는 토대주의적 관점을 약화시킨다. 과거 사진기술이 등장했을 때에도 회화에 던지는 강렬한 충격이 있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AI는 오랜 수련 없이도 시각적으로 매력적이고 기술적으로 능숙한 작품을 "생성"할 수 있으며, 이는 매우 급진적으로 예술적 '기술'의 의미를 재정의하도록 만든다. 또한, AI 예술의 '원작성'에 대한 논쟁은 예술적 가치의 기초로 여겨졌던 인간의 의도와 경험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게 되는 것이다.
- 정합주의: AI가 방대한 예술 데이터 네트워크를 학습하고 통계적 관계를 기반으로 새로운 작품을 생성하는 방식은 정합주의적 창작 과정을 보여준다. 작품의 형태와 스타일은 특정한 기초 원리에 의존하기보다는 학습된 데이터 전체와의 정합성을 통해 '정당화'된다.
결과의 도출과 경험되는 것들, 이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정합성"의 확보를 통해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은 구조적인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적인 사고다. 생물학이 발전하며 그 범주화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지식혁명, 어쩌면 "위기"라고 할만한 AI 일반화 시대의 사고방식 또한 우리가 현재까지 적절하다고 보았던 '구조'에 변화를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래의 예술: 다중 세계관과 새로운 인식론적 가능성
AI 기술은 앞으로 더욱 발전하여 다중 세계관을 동시에 다루거나 상충하는 개념들을 병치하는 방식으로 예술 작품을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AI가 기존의 단일한 이론적 틀을 넘어 다층적이고 유연한 의미 세계를 구성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AI는 동일한 대상을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보여주거나, 서로 모순되는 스타일과 기법을 융합하여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가져올 수도 있다. 이것은 지식, 인식, 미학과 관련하여 지금까지의 범주화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고의 구조, 방법론을 요구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우리 생각들의 토대가 되는 수많은 인식론들을 처음부터 재조명해야 할 상황이 도래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AI의 능력은 감상자/사용자에게 더욱 풍부하고 다면적인 경험을 제공하며,
기존의 해석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관점을 유도할 것이다.
혹은 확실성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의존적 감상자들을 강압할 수도 있다.
이처럼 AI 시대의 예술은 확실한 기초를 찾는 대신, 다성적이고 중층적인 구조 속에서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AI가 만들어내는 예술 작품들, 생성물들은 기존의 예술적 관습과 지식 체계에 질문을 던진다. AI 예술은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창의성의 개념을 확장시키고, 예술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풍부하게 할 것임은 틀림없다. 지금까지의 문제제기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러한 측면들을 복합적으로 조명하기 보다는 다소 일그러진 전제를 통해 현상황을 보려 한다는 오류를 상당부분 내포한다는 점에서 그 폐해가 크다고 본다.
지식의 한계와 새로운 인식론적 지평
AI 시대의 예술은 확실한 지식에 대한 인간의 오랜 갈망과 그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관찰의 이론 적재성(theory-ladenness of observation)"은 우리의 인식이 주관적인 틀 안에서 이루어짐을 상기시키며, AI 예술은 이러한 주관성이 창작 과정과 감상 모두에 깊숙이 관여함을 드러낸다. 확실한 기초를 추구했던 토대주의(foundationalism)적 관점은 AI 예술의 등장으로 그 한계를 명확히 하며, 대신 믿음 간의 정합성과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 정합주의적 관점이 AI 예술을 이해하는 데 더욱 유효함을 시사한다.
미래의 AI는 다중 세계관과 상충하는 개념들을 병치하는 급진적인 실험을 통해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것이다. 이는 우리가 기존의 단일하고 확실한 지식 체계에서 벗어나, 다층적이고 유연한 의미 세계를 탐색하도록 이끌 것이다.
AI 시대에 예술하기는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로부터 펼쳐지는 새로운 인식론적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여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