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창조적) 작업(직업)은 인간의 영역?
아마 이제는 창의력에 기계의 지능, AI가 범접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을 것이다. 창의력이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믿는 경우는 대개 창의력에 대한 '신화적 서사'를 여전히 신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러한 창의력에 대한 신화적 서사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 의식구조에 대해 오해해왔듯이 창의력에 대해서도 대단히 큰 오해했다는 점을 더 부각시키게 될 뿐이다.
예술에 있어서도 '창작'이란 데이터베이스에서 패턴을 도출해내는 작업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인간 사고의 모든 '결론들'을 만들어내는 원리이기도 하다. 영국 워릭 경영대학원 행동과학 교수 닉 채터 Nick Chater 는 인간의 의식 자체가 지각을 통한 누적을 바탕으로 매순간 창안되는 허구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는 분석도구와 실험장비들의 발달로 최근 상당히 누적되고 있는 연구들이 보여주는 공통된 내용이기도 하다.
지정된 경로에서의 연산을 기계가 더 잘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신경세포수를 단순히 산술적으로 늘어놓고 생각해보면 지능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요인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아직까지 인지 혹은 인지적으로 보이는 행위를 만들어내는데 있어서 생물과 연산 능력을 가진 기계의 가장 큰 차이는 '병렬처리'에 있지 않나 싶은 것이다.
오늘날의 AI 구현에 있어서 핵심적이라 할 수 있는 하드웨어의 여건은 수많은 GPU들을 하나의 하드웨어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즉, 처리속도가 빠른 몇 개의 중앙처리장치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연산을 병렬처리하는 것으로 이것을 구현하는 것인데, 사실 이렇게 보면 기계의 지능은 점점 인간의 지능과 그 구현의 방법이 유사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의(창작)이란 선례에서 새로운 패턴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행동과학자 닉 채터를 다시 한 번 인용해보면, "뇌는 원리가 아닌 선례에 의해 작동한다. 매번 새로운 생각의 순환은 과거 관련된 생각들의 자투리를 재작업하고 변형해서 우리가 현재 주목하는 정보를 이해한다. 그리고 각 생각의 순환의 결과는 그 자체로 미래의 생각을 위한 원재료가 된다. 따라서 물리적, 사회적 세계에 대한 지식의 기반을 이루는 원리를 발견하려는 초기 인공지능은 실패했고, 언어의 문법적 원리를 밝혀내려는 언어학도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인간 자신도 실상은 어떠한 의식 기반, 특정점으로 특정될 수 있는 어떠한 의식의 씨앗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일궈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데이터들을 수집하고 조합해 우리 자신의 자아를 형성하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이와 유사하게, 21세기에 들어서서 AI 기술 발전이 매우 빨라지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 바탕에는 지식의 기반을 이루는 원리를 발견하는 노력이 아니라 수많은 데이터들을 기계에게 학습시키고 그것을 병렬처리 하는 방향을 선택함으로써 이것이 가능해지고 있다는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 자신에서 조차 그렇다. 의식과 인격동일성 그 자체는 하나의 종자로부터 뻗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여건들의 상호작용이 일으키는 일종의 파도 같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