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원

한국 기독교(개신교)의 뿌리깊은 탈북민 정서 – 서북청년회와 한기총의 역사적 맥락

Photographer Bhang 2024. 12. 20. 12:07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하나둘씩 붓길이 스쳐지나가는 동안에 나는 매우 중대한 사실을 하나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날 내가 싸인을 해준 아주머니는 열명이었는데 이들 모두가 불교신자라는 우연치않은 사실의 발견이었다. 난초를 치기도 하고 한시를 써주기도 하고 대련을 써주기도 하는 중에 뭔 덕담을 해주면 좋겠냐고 묻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알게된 사실이었다. 물론 이들이 어느 종교집단에 소속되어있는 사람들도 아니요, 사전에 친분이 있던 사람들도 아니다. 우연히 모인 사람들이건만 그러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고난 받고 있는 대중들에게 기독교가 널리 유포되어 있다는 나의 피상적 인상을 깨치기에 충분한 하나의 획기적인 사회적 사실이었다.

"이상할 것 없어요. 대개 말이죠. 시장같은데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 중엔 교회가는 사람이 많아요.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대강 장사했잖아요. 그 사람들은 대개 예수쟁이들이 많죠. 그런데 이런데서 밥짓고 그러니까 고용되어 사는 사람들 중엔 절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그러니까 장사꾼하구 인테리들 중엔 기독교인들이 많구요, 그냥 소리없이 순응해서 사는 직업인들이나 아주머니들은 절에 더 많이 가요. 그러니까 야소교도들 중엔 전투형이 많고 불교도들 중엔 순응형이 많다고 말할 수 있죠. 그러니까 기독교는 재력이 많고 설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예수쟁인 조금만 모여도 왁짝지끌하죠. 그래서 우리나라엔 기독교도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 만 숫적으로 보면 오히려 보이지 않는 조용한 군중속에 불교가 더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어요."

그날 동행을 했던 나의 한 제자의 말이다. 상당히 일가견이 있다는, 우리사회의 한 종교현상을 간파한 탁견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설두, 혜능과 셰익스피어> 中 -- 도올 김용옥 (저)

 

두 정서의 교차점

한국 개신교는 단순히 종교적 신앙체계를 넘어 역사적, 정치적 정체성을 담고 있다. 특히 북한 지역에 뿌리를 둔 개신교의 형성과 이후 서북청년회를 통한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은 오늘날 탈북민 정서와 한국 개신교의 연결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맥락을 제공한다.

한국 개신교의 초기 확산은 평양과 같은 북한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은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중대한 사건으로, 이 시기의 개신교는 단순히 종교적 의미를 넘어 억압 속에서 희망을 찾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의지를 담아냈다.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며 당시 개신교 중심지로 성장했고, 김익두 목사와 같은 인물들은 부흥 운동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해방 후 북한 지역의 기독교는 북한 김씨 정권의 탄압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많은 신자들은 남한으로 이주하며 남한 개신교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남한 개신교의 정체성은 북한 출신 신자들의 강한 반공주의와 억압 속에서의 생존 정신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특성은 오늘날 탈북민들이 남한 개신교 공동체에서 느끼는 정서적 유대감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한국 개신교와 탈북민 정서 사이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전도의 문제를 넘어, 역사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형성된 정서적 교감에서 기인한다. 김용옥 교수의 저서에서 언급된 “기독교는 전투형”이라는 분석은 서북청년회와 같은 개신교 기반 조직의 강렬한 활동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역사적 특성은 현대 개신교의 정치·사회적 정체성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개신교는 북한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탈북민 정서와 공명하는 여러 측면을 가지고 있다.

 

서북청년회

서북청년회는 해방 직후 북한 지역 출신 개신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단체로, 강한 반공주의와 개신교 정체성을 바탕으로 활동했다. 서북청년회는 단순히 기독교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활동을 전개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평안도와 황해도 등 서북 지역 출신의 기독교인들은 남한으로 이주하여 서북청년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공산주의에 반대하며 강한 반공주의 성향을 보였고, 남한 사회에서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현재 탈북민들이 남한 사회에서 겪는 정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719303.html

 

‘서북청년’에 뿌리 둔 한국 개신교의 주류

한국전쟁과 기독교 윤정란 지음/한울·3만4000원 한국 현대사에서 어떤 이들에겐 ‘악몽’처럼 등장하는 이름. 흔히 서북청년, 서북청년단으로도 불리는 서북청년회(서청)는 해방 뒤 1946년 말 서

www.hani.co.kr

 

서북 지역 출신 개신교인들은 공산 정권의 박해를 피해 남한으로 이주하며 공동체적 연대를 형성한다. 서북청년회는 이러한 연대의 중심이 되었고, 이는 탈북민들이 현재 남한 사회에서 느끼는 정서적 소속감과 유사한 면을 보여준다. 때문에 반공주의와 전투적 성향을 갖는 것이 그 특징인데, 이것이 남한 정권 초기 주요 반공 단체로 자리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북한 체제에서 탈출해온 탈북민들의 반공 정서에 비춰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후에도 서북청년회는 남한 사회에서 개신교적 이념과 정치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드러냈으며, 이후 한국 개신교 내에서 정치적 활동의 전통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은 오늘날 일부 개신교 신자들의 극단적인 정치성향을 이해하는데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준다.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

서북청년회의 정신적 유산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한기총은 1989년 창립 이후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보수적 연합체로, 반공주의와 북한 선교에 특별히 강한 의지를 가지고 활동해온 단체이다. 이들은 북한 선교와 반공 의제를 내세워, 탈북민들을 복음화와 선교의 중요한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는 서북청년회의 반공적, 개신교 중심적 정서가 현대적으로 계승된 모습이다.

그러나 한기총이 가지고 있던 수많은 문제들은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성금모금 과정에서 드러난다. 2010년 1월, 아이티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자, 한기총은 한국 교회와 성도들을 대상으로 긴급 구호 성금을 모금했다. 모금된 성금 중 약 2억여 원이 아이티 구호 목적이 아닌 직원 퇴직금 중간 정산, 사무실 리모델링 등 운영 경비로 사용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아이티 구호 성금이 본래 취지와 다르게 한기총 내부 운영비로 전용되었다는 점은 한기총이 재정 운영에 있어 투명성과 책임성을 결여했다는 지적과 수많은 의혹들로 이어진다. 당시 일부 교계 인사들은 한기총의 재정 비리를 고발하며, 검찰에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개신교의 신뢰도와 윤리의식에 대한 불신을 확신으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 사회적 지위, 자산에 대한 집착은 새로운 지역에서 뿌리를 내려야하는 이주민의 정서와 결부된다는 분석도 가능해진다. 왜 오늘까지도 수많은 교회들, 특히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재산분쟁’이 끊이지 않는가? 나는 바로 이 ‘정서적 문제’를 통해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https://www.pckworld.com/article.php?aid=5192289594

 

한기총 재정비리,결국 사회법에 고소

    ▲ 지난 15일 열린 한기총 임원회를 원천봉쇄한 한기총. 이날 한기총은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기자들만 선별해 출입시키는 등 정상적인 연합기관의 상식에서는 벗어난 행동을 일삼았다. 사

pckworld.com

 

탈북민 정서: 대한민국 기독교(개신교)가 갖는 정체성의 한 축

해방 이후 북한 지역의 기독교는 급격히 쇠퇴하였고, 많은 신자들이 남한으로 피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남한 개신교는 북한 출신 신자들의 영향으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현재 탈북민들이 남한 교회에서 느끼는 정서적 공감대 형성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탈북민 정서 그 자체가 우리나라 개신교의 정체성을 잘 설명해준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0205100048113307

 

 

해방전 북한교회 희귀자료 첫공개 | 한국일보

 

www.hankookilbo.com

 

이것은 서북청년회와 한기총의 역사적 특성과 밀접히 연관된다. 현재도 탈북민들은 북한 체제에서 억압받은 경험으로 인해 강한 반공주의와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한다. 이는 서북청년회와 한기총이 전통적으로 강조해 온 개신교적 정체성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개신교 교회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공동체를 찾을 수 있다. 이는 초기 서북청년회가 남한 사회에서 서북 출신 개신교인들에게 제공했던 연대와 유사하다. 한국 개신교의 한 축이 탈북정서라는 점을 통해 접근하면 연대를 넘어서 정치 행동으로 이어지는 모습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것은 단순히 정치적 양극화의 상당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성서>로부터 사회적 성공과 축복의 약속을 담보해준다는 취지의 메시지들을 유난히 강조하는 메시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드러난다. 지역 정체성을 갖지 못한 이주민의 컴플렉스는 성공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그러한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수단들을 신앙으로 포장해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이러한 문화들은 한반도의 뿌리깊은 샤머니즘과 결합하여 기도문화는 물론 성서의 구절들을 발췌해 부적처럼 사용하는 문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벗어나기 힘든 비판들

서북청년회와 한기총 모두 개신교의 정치적 활동을 강화하며, 종교적 순수성을 해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탈북민들이 지나치게 정치적 목적의 도구로 활용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에도 일부 개신교인들의 정치적 과잉 개입은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서북청년회와 한기총은 한국 개신교가 북한 지역과 탈북민 정서에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이들 단체는 강력한 반공주의와 공동체적 연대를 바탕으로 남한 개신교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김용옥 교수의 “기독교는 전투형”이라는 통찰은 서북청년회와 한기총의 역사와 활동을 이해하는 데 적확한 설명을 제공한다. 개신교는 억압과 고난 속에서도 전투적 신앙과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해 왔다. 이 정신은 현대 탈북민들이 개신교 공동체에서 경험하는 유사한 정서와 공명을 이루며, 한국 개신교의 중요한 역사적 자산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어느 순간부터 극단주의에 지나치게 빠진 오류를 향해가는 모습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