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프린팅 작업과 참나 True-Self 에 대한 상상
2018년에서 2019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구상해 2019년 이화여대 리더십 개발원 초청으로 STC 행사와 함께 전시했던 (다면체 탐구)는 꽤나 힌두교적 상상으로 접근했던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어떠한 사태 혹은 어떠한 존재를 상정하는 것, 참나 True-Self 에 대한 이미지. 사실 2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지만 그 사이 생각은 상당히 변했다.
(1) 이는 흙덩어리 하나를 통해서 흙으로 된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같다.
(2) 변형은 언어에 의해서 야기되는 이름이다.
(3) 바로 흙이란 것이 실재다.
- 찬도그야 우파니샤드
사진연작 '다면체 탐구 Exploring Polyhedron'는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기술 가운데 하나인 3D 프린팅과 디지털 사진을 통해 이러한 실재(the truth)와 변형(difference)에 관해 고민한다. '변형' 또한 우리가 경험하는 엄연한 현상계 속의 사실이며, 실재는 변형을 통해 자신의 다채로운 모습을 관철시킨다.
사진연작 <다면체 탐구 Exploring Polyhedron>
https://www.bhangyoungmoon.com/polyhedrons
다면체 탐구 Exploring Polyhedrons | 사진 | Bhang, Youngmoon | 3D 프린팅
이 연작 다면체 탐구 Exploring Polyhedrons 는 사진은 물론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모든 사물의 인과성의 바탕에 ‘인간의 언어’가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www.bhangyoungmoon.com
나 스스로를 돌아볼 때 나는 변화와 생성의 관점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작업에 한참 몰입을 하고 난 뒤에 느낀 것은 나 자신 역시 세상을 매우 존재론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수렴하는 무한합, 가분성의 한계를 상정해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이 이 세계를 존재론적으로 이해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근본적인 어떠한 것들과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분화하는 것, 이를테면 우주는 시뮬레이션일 수도 있다던지 혹은 그 옛날 한 철학자가 우리는 모두 악마에게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졌던 것처럼, 이 세상을 개념적 분할에 근거해 바라보는 것은 사실 어떠한 고등한 지적작용이라기 보다는 우리 '영장류의 생리적 특성'에 가깝다.
이것은 나의 최근 구상들이다. 2021년에는 이것을 주제로 작품을 구상할 것 같다.
3D 프린터: 상상력에 불을 지피다
총 7점으로 구성된 나의 사진 연작 에 사용된 피사체 중 6개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조형한 것들이다.
정육면체를 예로 들어보자. 이 사진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정육면체 Hexahedron, Cube 를 조형하고 그것을 촬영했다. 이 정육면체를 3D 프린터로 만들기 위해 작성된 STL 파일은 1,884 바이트다. 이것은 컴퓨터의 운영체제 상에서 1,884개의 글자와 유효한 공백으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1,884개의 글자로 된 문자열을 3D 프린팅 전용 프로그램에 불러들이면 정육면체의 모양이 시각적으로 표현된다. 그래픽으로 정육면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작업에 사용된 3D 프린터는 우리가 가장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적층방식이다. FDM 방식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3D 프린터가 PLA 필라멘트를 녹여 촘촘히 쌓아서 조형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렇게 약 6~8시간 정도 움직이도록 두면 하나의 정육면체를 완성할 수 있다.
나는 3D 프린팅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서 몇 가지 책을 구해 읽던 중 '크리스 앤더슨'의 저서에서 “디지털 생산도구에 지시를 내리는 코드나 3차원 디자인 파일이 곧 상품”이라고 했던 설명에 주목했다. 이것은 개념이 곧 사물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보를 기록하고 또한 지우는 방법에 있어서, 하드디스크라면 자력 magnetic force 을 이용해 플래터 표면에 자성입자를 다시 배열한다. 플래시 메모리라면 플로팅 게이트에 채워진 전자(전하량)를 이용한다.
완성된 정육면체는
- 3D 프린팅 가능한 STL 파일이고,
- 이것은 운영체제 상에서 볼 때 1,884개의 문자이며
- 전류의 on/off 즉, 0과 1이라는 신호이고
- 이 신호는 전자를 통해 만들어진다
플래터 표면이나 플로팅 게이트의 전자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PLA 소재를 구성하는 원자 속의 전자를 구성하는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디지털 정보나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사물이나 그 기본 바탕에는 ‘전자 electron’가 있다. 디지털 정보나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사물 모두 전자기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사실 다를 것이다. 강들이 흘러가 바다가 되고, 바다는 다시 대기 중으로 올라가 비가 되어 내리는 것이 다 같은 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가분성의 한계에 있는 무엇이 존재의 근원이다
이렇게 나는 은근슬쩍 '전자가 모든 사물의 근원이다'라는 바보 같은 생각에 빠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현대 물리학에 대한 교양 서적들을 펼 때 처음 데모크리토스 Democritus, BC.460 ~ BC.380 를 만나 그 생각에 대한 개관을 읽게 되는데, 결국 2,400년 전과 현재의 생각을 관통하는 어떠한 개념은 존재할지 모르나 이것이 같은 생각은 결코 될 수 없다. 전문가들을 비롯해 아마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가분성의 한계에 있는 어떠한 '입자(?)' 혹은 '입자적 사태(?)'를 존재의 근원으로 보는 것은 오늘날 밝혀진 수많은 결론들을 과도하게 단순화 시키는 것임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것이다.
입자성, 비결정성, 관계성. 이것이 물리학이 보여준 것들이다. 분명 사물의 근원이 되는 '무엇인가'를 우리가 '관찰할 때' 그것이 '입자'로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입자는 상호작용 안에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며 미시적 차원에는 결정성의 부재 즉, 확률적 접근만 가능하다는 것이 자연의 특징이다.
그러니 "이것이 저것을 이룬다"라는 선형적인 인과 인식은 우리가 인식하고 살고 있는 거시계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는 될 수 있어도 뭔가 더 깊은 이해를 해보겠다고 시도하게 되면 분명 부족한 견해가 되는 것이다.
뇌가 해석한 전기신호를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라고 정의한다면, 경험되는 현실은 원리적으로 가상현실과 다를 것이 없다. 세상과 소통하는 인터페이스가 우리 자신의 신체인가 혹은 신체가 아닌 외부 요소인가에 따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기준이 다를 뿐이다. 인간은 경험하는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언어, 기호 혹은 상징과 같은 방편(方便 expedient)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한 사진적 표현이 5점의 플라톤 다면체(Platonic Solids)를 중심으로 사진 연작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과 가상현실은 원리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디지털 정보와 현실의 사물 은 모두 ‘전자 電子 electron’를 기반으로 하기에 본질적으로 같다. 따라서 이런 것들은 그 경계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으며, 애초에 그 경계 자체도 모호한 것이다. 이 사진 연작은 디지털 사진, 3D 프린터로 만든 대상물들을 통해 현실, 사물 그리고 지식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런 바보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전시를 마치고 난 다음이었다.
이후 생각의 수정도 이화여대 작업 중에 떠올렸으니 나름 스스로를 좀 기특하게 여겨보자면, 고생해서 만들어 낸 작품이라고 해서 그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것을 받아들여 수정하려는 의지가 좀 있다는 것이리라.
수정된 구상은 이후 <응시>라는 연작으로 이어진다:
https://www.bhangyoungmoon.com/the-contemplative-contemplation-01
The Contemplative Contemplation 1 | bhangyoungmoon
Visible range or light spans 380 to 780 nm. This range is the most powerful range of the spectrum of the Sun’s solar radiation. The feature of the Sun’s solar radiation defines the life on earth and it defines what can we see.
www.bhangyoungmoon.com
나는 참나 true-self 라는 '존재론적 상정'을 전제로 한다면 결코 진리에 이를 수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앞으로 어떤 생각들을 떠올릴 수 있을까를 상상해보면 길지 않은 삶이 매우 흥미진진한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기대와 걱정을 함께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