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業, Karma कर्म)의 수용사 - 다면체탐구 - '카르마'
카르마 Karma कर्म 는 본래 제사 yajña यज्ञ 를 지내는
사제 brahmin राह्मण 의 행동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다면체 탐구 Exploring Polyherdon
_ Webpage: https://www.bhangyoungmoon.com/polyhedrons
다면체 탐구 Exploring Polyhedrons | 사진 | Bhang, Youngmoon | 3D 프린팅
이 연작 다면체 탐구 Exploring Polyhedrons 는 사진은 물론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모든 사물의 인과성의 바탕에 ‘인간의 언어’가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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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작 '다면체탐구 Exploring Polyhedron' - 카르마(業, Karma कर्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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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면체탐구 Exploring Polyhedron 는 3D프린터를 이용해 만든 6개의 피사체와 '진짜 달걀' 1개를 피사체로 작업한 7점의 사진으로 구성된 연작
- 2019 이화여대 리더십 개발원 ELIS 초정작
"카르마 Karma कर्म 는제사 yajña यज्ञ 를 지내는 사제 brahmin राह्मण 의 행동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오늘날 '카르마'라는 말도 처음 사용되었던 의미와 맥락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윤회, 아힘사와 같은 말들과 연관이 된다. 이 아티클의 취지는 그것이 나쁘다 혹은 그렇게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도덕적 압력 moral pressure 을 준다는 것은 공동체 유지에 긍정적 영향을 주며, 한마디로 더 바른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동인(動因, motive)이 되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말의 변천을 통해 원래 의미를 생각해보고, 그것이 사용되던 맥락을 더 깊게 이해하면,
- 첫째로, 우리는 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고,
- 둘째로, 어떤 상벌의 댓가 없이 더 자유로운 상태에서 도덕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더 큰 의미가 있다.
성숙한 인간의 윤리의식이란 어떠한 상과 벌의 댓가나 압력 아래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카르마 Karma कर्म
이 '카르마'는 기본적으로 '행위'를 의미하는 단어이지만, 구체적으로는 제사 yajña यज्ञ 를 지내는 사제 brahmin राह्मण 의 행동을 가리키던 말이다. 야즈냐라고 불리던 제식을 통해 삼라만상의 운행, 특별히 전환 transition 을 일으킨다고 믿었던 사람들의 믿음에서, 그 제식을 집도하는 사제의 행동을 가리키던 말에서 '카르마'라는 말이 왔다고 보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
이러한 제식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던 것이 '말'로 이루어진 공물(貢物, tribute, tributary payment)이다.
제식을 뒷받침하는 지식정보 그리고 그것을 운영하는 '말'의 중요성에 관한 그들의 생각을 고려해볼 때, 카르마(業, Karma कर्म)라는 말을 만들어낸 생각과 문화의 바탕에는 언어가 세상을 움직인다는 생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의 언어가 나의 현실을 짓는다
사진 연작 <다면체탐구 Exploring Polyhedron>는 현실의 인식과 이해의 방향 그리고 그러한 지식의 획득을 통해 세상을 실질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점에 집중하고 있다. 연작의 흐름은 우리 인간이 개념화나 추상화, 그러니까 언어와 같은 중간 매개자가 없이 세상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면, 마지막 작품인 '카르마'에서는 그러한 추상관념들과 연역적 사고가 세상을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는 점을 주장하게 되는 흐름이다.
사진 작업에 담겨진 나의 '언어와 그 생각의 뿌리에 대한 집착'에 관하여
나는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이러한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하나는 인간이 덮어놓고 신비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나 융의 주장처럼, 강박관념이나 집단의 심리가 종교나 신을 만들었다고 주장을 하건, 공진화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인류가 처한 공통적인 상황들이 불러온 평행진화의 과정이 신이나 종교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건, 중요한 것은 우리가 덮어놓고 신비적 주장에 빠지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는 점에 중점을 둔다. 예술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갖는, 나름의 아이코노클라즘, 즉 성상파괴 운동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인간이 어떠한 상벌을 전제로 하는 미신적인 사고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을 때 정말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현재 나의 행동이 내세를 결정한다던가, 죽어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던가 하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현재 이 시점에서 내가 온전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더 순수한 열망? 댓가성이나 신과의 거래가 아닌 더 순수한 동기가 가치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3장에서 비슷한 메시지가 있다. 죽어서 천국에 들어간다는 그런 접근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빛 안에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처럼, 상벌을 떠나 더 나은 윤리를 추구하는 것 즉, 밝음을 원하게 되는 것이 곧 상이며, 어둠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 곧 벌인 것이다. 사후 세계의 상벌이란, 어찌보면 이러한 것들을 이해시키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 일종의 연습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론
우리가 우리의 생각의 틀을 형성하는 것들의 근원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좀 더 자유로워 질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한단계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논의들
카르마의 수용사
카르마(業, Karma कर्म)를 만든 이들의 언어는 어디에서 왔을까?
'카르마'라는 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여전히 다양한 주장이 존재하지만 이 단어를 만든 언어는 흑해-카스피해 초원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일명 '쿠르간 가설'이 매우 유력하다. 마리야 김부타스 Marija Gimbutas 와 같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주장된 이 가설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20세기 후반부터 강한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구들은 생태, 환경, 가축, 작물들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사회와 경제 그리고 주변 언어들과의 관련성 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오늘날에는 정착 농경이 일반적이라 '작물'이라고 하면 땅을 개간하고, 큰폭의 경관조성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과거의 '작물'이라고 하면 특정한 지역에서 야생으로 자라나는 작물들을 거둬들이는 과정이 중심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농사의 방식보다 중요한 것이 작물이 자라는 환경이었다.
인도아리안들의 이주
이주의 원인은 다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적인 예로는 기후의 변화가 있다.
그들이 살던 초원지대의 날씨가 점점 추워진 것은 물론, 추워지는 날씨에 따라 수면 아래 잠겨있던 땅들이 드러나는 등 커다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이들이 다양한 시기와 경로를 거치며 이주를 하는 동안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언어 또한 분화했을 것이다. 언어는 짧은 세월 동안에도 굉장히 많이 변한다. 현재 시점에서의 언어만으로 장구한 역사의 흐름을 보려 한다면 분명 오류에 빠진다.
켈트어 사용에서 현대미국영어가 발생하는 시기까지를 약 천 년 가량 걸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쿠르간, 얌나야 문화를 기원전 4천년 경으로 보고 있다면, 베다가 성립하는 기원전 1,500년에는 2,5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며 인도-유럽어족 안에서도 수많은 언어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다양한 이주 경로와 언어의 변화들은 수많은 문화를 낳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뿌리가 되는 사고방식이나 언어가 매우 유사한 측면이 많다.
현재 시리아 지역 인근에는 '미타니'라는 왕국이 있었다. 이 왕국에서 발견되는 기록과 베다에서 전해지는 신들의 이름이 같은 경우가 많이 있다. 또한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마즈다 (اهورا مزدا Ahura Mazdā)'와 같은 신의 이름을 자신들의 신과 대적하는 세력들로 전승시켰지만, 조로아스터교 만큼이나 '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베다의 관점 등 많은 흔적들이 나타난다. 후기 이주하는 인도아리안들은 미타니와 오늘날의 이란 지역을 거치면서 제식을 더 정교화 했던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야즈냐의 제식, 인도아리안들의 불의 신 ‘아그니’와 조로아스터교가 불을 중시하는 것은 나름의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이들이 이주하며 거쳤던 지역들 중에는 이런 불의 제식을 중시하는 지역들이 많았던 이유도 있다.
채집수렵에서 정착생활로의 변화는 '신'과 '지배논리'를 탄생시킨다
인류의 정착과 농경생활이 시작된 시점과 소위 말하는 선사시대 신비로운 유적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거의 비슷하다. 괴베클리테페(1만 1,500년전), 할란 체미(1만 2,000년전) 같은 잘 알려진 유적들은 이러한 시대의 초창기에 해당할 것이다. 동물의 가축화와 함께 생겨난 족장중심 문화는 남성중심의 가족제도를 강화하는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가축은 쉽게 빼앗을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재산이다. 학자들은 '사냥'이라는 행위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크게 구분했을 것으로 보고 있지 않다. 오히려 훨씬 훗날, 인간 대 인간의 분쟁 상황이 남성중심 사회를 가속화 했을 것이다. 소와 양은 손이 많이 가는 가축이다. 개와 말을 길들인 이후에야 의미있는 가축의 규모와 그 관리에 대한 관행들이 생겨났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가축은 상당히 많은 지역에서 식용을 비롯해 다양한 목적을 위해 길러지는데 오늘날 기후변화의 상당히 큰 주범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소를 길들였던 지역들에서도 소를 식용으로 이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매우 자주 발견된다. 유적에서 발굴되는 유골들을 통해 소를 길렀던 지역들도 대부분은 생선을 통해 육식을 했다는 점이 밝혀집니다. 이러한 점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사실은 '소'는 먹기 위해 길렀다기 보다는 상징적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다른 지역이지만, 고대 근동에서 황소는 사자보다 강한 힘을 상징하기도 했다.
지구상에 인구가 적어 아주 넓은 분포로 퍼져 있는 사회, 이주가 잦고 야생식물을 채집하던 사회에서는 각기 다른 인간 공동체가 충돌할 일은 크지 않았다. 우바이드기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도 '도시'라는 개념은 미약했다. 인도유럽어에서도 오래될수록 '도시'를 의미하는 단어는 발견되지 않는다. 사회가 거대해지면서 '도시'나 '국가'와 같은 생각이 뿌리를 내리기에 훨씬 앞서 사람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가족과 신앙이다. 조상에 대한 기억을 전달하는 과정이 훗날 '신'을 만든 과정이었다는 가설은 매우 설득력이 강한 연구다.
신성(神聖)은 세속(世俗)적 가치를 위한 것이다
- 농경과 정착사회 그리고 신들의 탄생
집단이 커지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지고신, 절대신, 하늘신과 같은 강력하고 전능한 신의 존재가 그려진다. 추상관념의 정교화가 일어난 것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집단의 규모와도 아주 깊은 관계가 있다. 또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러한 신화적 세계관이 정치와 지배논리였음을 이해할 수 있다. 초창기 신들은 조상에 대한 자전적 기억 autobiographical memory 을 통한 이야기의 증대에서 발생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본다. 인간 공동체의 거대화, 도시국가 규모의 사회 형성과 더불어 추상관념 또한 정교해지고, 지배 논리에 수반되는 신에 관한 이야기도 정교화된다.
조상과 나의 혈연관계를 주장한다는 것은 원래 토지의 소유권 주장을 하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과거 이주생활을 할 때는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관념이 생기고 부장품을 매장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이주 생활에서는 그냥 영혼만 저승으로 보내준다고 생각해도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현재까지도 문제가 되는 인도의 지독한 남아선호 사상은 사실상 유목민들의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부족간 가축 쟁탈전과 분쟁은 인간 대 인간 전투에서 승리의 가능성을 높이도록 집단 내 남성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인도 아리안들의 조상제사 전통 또한 이러한 문제들과 결부된다.
조상이 묻힌 땅을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토지 소유권 주장과 신화 만들기의 기본이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진한 신화적 채색이 입혀지고, 고대 국가들의 왕족이나 영웅들에 대한 신화들이 특히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연결되는 문화들이 그러한 신화들을 수용하고 영향을 주고 받으며,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낸 사례는 너무나 많다. 사르곤 대왕 탄생기와 모세의 탄생기, 노아의 홍수와 지우수드라, 우트나피쉬팀 이야기는 거의 같다. 사실 고대의 이야기들은 원본을 특정하기 어렵다. 대부분은 발현된 지역 정도만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야기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세부적인 사항들이 더해지고, 그 시대에 맞게 조금씩 변해간다. 그리고 그런 전승들로부터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에 소위 말하는 방점을 찍게 되는 것이다.
<길가메시> 이야기를 구성하는 토판들도 '길가메시'의 친구 '엔키두'에 대한 묘사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농경과 정착이 안정된 시점이 되면 '엔키두'의 야만성이 부각되는 기술들이 많아진다. 사회와 정치가 필요한 인간상을 위해 이야기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다.
식물의 작물화와 경관조성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지배조직을 더 강화할 필요가 생긴다. 강력한 신과 기능적으로 나뉘는 ‘신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시기와 맞물린다. 구약성경의 초반 모세오경에서도 지파별로 인구조사와 땅에 대한 기록을 세부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국가와 제도가 세부적인 부분을 다 관여할 수 없었던 시대의 가장 강력한 당위성은 자신의 출신성분과 조상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국가란 소수가 다수를 착취해 이득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집단이 추구하는 신성(神聖)은 대개 집단의 이득에서 비롯된 아주 세속(世俗)적인 것들이다.
정치는 종교다(종교는 정치다)
오늘날에도 그 대상이 신에서 어떤 추상관념으로 바뀌었을 뿐, 정치는 여전히 종교다. 이런 신화적 덧칠을 벗겨내는 아이코노클라즘 iconoclasm 그리고 더 자유로운 생각이 가능한 우리가 되어가자는 것. 이것이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가는 이유가 되어준다.
카르마라는 말을 만든 인도아리안들도 비슷한 과정을 경험한 것 같다.
브라흐만과 같은 말도 실상 처음에는 언어의 현현 같은 것을 의미했다. 말하자면, ‘브라흐만’의 원래 의미라는게 재즈의 임프로비제이션 혹은 그 과정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영적이고 추상적으로 표현되는 이들 언어 표현들은 대개가 아주 tangible 하고, 즉물적으로 사용되던 언어들이다. 차크라는 전차의 바퀴를 부르는 말이었고, 카르마는 제식을 하는 사제들의 행동을 가리키던 말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아이코노클라즘 Iconoclasm
오래된 언어들의 단순한 표현들과 즉물적인 단어들이 일부는 신비화되고, 일부는 도덕적 압력 moral pressure 으로 작용해 사람들에 대한 지배논리가 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본래의 의미를 변형하여 후대에서 사용한 윤회, 아힘사, 카르마는 자세히보면 사회에 필요한 도덕관념과 연결된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뿌리를 자세히 보면 유목민들의 사고방식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습니다. '불살생'이란 자신의 양심에 맡겨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아힘사의 논리적 맹점은 바로 유목민들의 보복논리를 우주적 질서로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추상관념들, 연역적 사고, 언어의 정교화 등은 우리 인류문명을 만들어 온 아주 중요한 것들이다. 또한 누구라도 이런 것들을 독점하고, 그것을 이용해 타인을 지배하고자 했을 때에는 여지없이 부작용이 있었고, 그 논리적 구조 안에 많은 모순 생겨났다.
신비화의 덧칠을 벗겨내 본래의 청정한 색을 찾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어떤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것.
이러한 작업과 작품 활동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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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작 <다면체탐구 Exploring Polyhedron>는 코카서스 북부에서 인도유럽조어 Proto-Indo European Language 가 발달했다는 가설을 중심으로 베다와 헬레니즘 그리고 중동의 문화들을 통해 현실과 현실인식, 사물의 인과성과 실체 등을 고민하며 구성한 작품입니다. 특별히 연작의 마지막 사진인 '카르마(業, Karma कर्म)'는 앎을 통한 현실지배력과 자유로움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작품입니다. 이를 위하여 언어들의 신화적, 종교적 배경사를 따져보았습니다.
- 20세기 초, 루돌프 불트만 Rudolf Karl Bultmann 의 탈신화 Entmythologisierung 를 중심으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당대 언어와 현재의 언어의 간극을 이해하고 현재 상황에 맞는 반응체계를 이끌어내고자 했던 노력에 그 뿌리가 있을 것입니다. 2019년 7월 이화여자대학교 ELIS STC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다면체탐구 Exploring Polyhedron'라는 7점의 사진연작을 공개하였습니다. 3D 프린팅과 디지털 사진이라는 작업 과정이 프로그램과의 접점이었는데, 저는 인과성, 현실인식 등과 같은 것들에 대한 고민을 다루며, '인간과 현실'이라는 주제 또한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작업입니다.
다면체 탐구 Exploring Polyherdon
_ Webpage: https://www.bhangyoungmoon.com/polyhedrons
다면체 탐구 Exploring Polyhedrons | 사진 | Bhang, Youngmoon | 3D 프린팅
이 연작 다면체 탐구 Exploring Polyhedrons 는 사진은 물론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모든 사물의 인과성의 바탕에 ‘인간의 언어’가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www.bhangyoungm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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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작 '다면체탐구 Exploring Polyhedron' - 카르마(業, Karma कर्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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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면체탐구 Exploring Polyhedron 는 3D프린터를 이용해 만든 6개의 피사체와 '진짜 달걀' 1개를 피사체로 작업한 7점의 사진으로 구성된 연작
- 2019 이화여대 리더십 개발원 ELIS 초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