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원

패러다임 쉬프트와 더불어 창세기 읽기 - 고대근동 신화들 속 창세기

Photographer Bhang 2025. 2. 9. 00:49

창세기와 고대 근동의 신화적 전통: 신화를 빌려와 신학적 혁신을 만들다

창세기 1장과 2장은 단일한 기원 서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신학적 목적과 문체를 반영하는 별개의 전승으로 보인다. 이를 John Barton과 John H. Walton의 연구를 기반으로 분해해보면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드러난다.


창세기 1장: 제사장(P) 전승의 창조 서사

  • 문체: 엄격한 구조, 숫자적 패턴, 반복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 형식: 제사장 전승(Priestly Tradition)에 속하며, 질서정연한 우주관을 반영.
  • 신학적 초점: 창조는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이며, 신이 존재의 틀을 설정함.
  • 신의 명칭: 엘로힘(Elohim)으로, 초월적이며 권위 있는 창조자로 등장.
  • 시간 구조: 7일 창조 패턴(하루마다 창조 행위가 구분됨).
  • 인간의 창조: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창조되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짐(창 1:26-27).
  • 창조의 방식: 신의 말씀으로 창조됨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 우주론적 관점: 신은 혼돈을 정리하며, 창조의 질서를 확립함.

창세기 1장의 이러한 특징은 바빌론 포로기 이후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편집한 것이라는 학설과 연결된다. John Barton은 창세기 1장이 단순한 기원 이야기가 아니라, 창조의 과정 자체를 신성한 의례로 보는 제사장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와 유사한 개념은 바빌론 창조 서사인 에누마 엘리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신이 질서를 세우는 것이 곧 창조라는 개념이 강조된다. “When… then” 구문을 사용하는 반복구조 또한 고대근동의 다른 문헌들과 유사한 방법이다.

창세기 1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히브리어 원문의 문법적 분석에 따르면, 창세기 1:1은 개별적인 사건 선언이라기보다는 ‘배경을 설명하는 절’로 해석될 수도 있다.

 

창세기 2장: 야훼(J) 전승의 창조 서사

  • 문체: 서사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이야기 구조.
  • 형식: 야훼 전승(Yahwist Tradition)으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
  • 신학적 초점: 창조의 과정보다는 인간과 신의 관계 및 인간의 역할 강조.
  • 신의 명칭: 야훼 엘로힘(Yahweh Elohim)으로, 인간과 가까운 존재.
  • 시간 구조: 특정한 날짜 개념 없이 창조 과정이 연속적으로 설명됨.
  • 인간의 창조: 아담이 먼저 창조되고, 이후 하와가 창조됨(창 2:7, 21-22).
  • 창조의 방식: 신이 직접 흙으로 인간을 빚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음.
  • 우주론적 관점: 인간이 중심이며, 정원을 가꾸고 동물들을 다스리는 역할을 부여받음.

창세기 2장은 보다 고대적이며, 구전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영웅담(Heroic Narrative Tradition)의 형식을 띤다. 이는 신명기 역사서(Deuteronomistic History)와 연결되며, 신이 인간과 직접 상호작용하는 형태로 서술된다. 


<地平線 Horizon A> 106 x 74 cm, 2018 (c) 방영문

 

<에누마 엘리시 (Enuma Elish)> - 바빌로니아 창조 신화

<에누마 엘리시 (Enuma Elish)>혼돈(chaos)에서 질서(order)가 형성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창세기에서도 유사한 형식이 발견되는데, 이를테면 에누마 엘리시의 첫 문장은 “When on high the heavens had not been named, firm ground below had not been called by name…” 같은 “When… then” 구조를 사용하여 창조 과정을 전개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에누마 엘리시 (Enuma Elish)>의 창조의 주체는 마르둑(Marduk)이며, 그는 혼돈의 신 티아맛(Tiamat)과 싸운 후 승리하여 세상을 창조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흔한 무지성적 비판은 구약성서 창세기가 바빌로니아 창조 신화인 에누마 엘리시를 ‘베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현실을 말하자면, 지식의 근본적인 한계와 방법의 한계를 고려하면 현대문명의 수학과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적 우주론도 그 본질은 창조설화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매체가 아닌 메시지를 보는 것이다. 과학적 우주론은 우주의 근본법칙으로부터 인격을 배제하고 더욱 불인(不仁)한 천지(天地)의 근본질서를 선택한 것이고, 에누마 엘리시는 마르둑의 승리를 바탕으로 하는 패권의 강조에 있다. 창세기는 신의 전쟁이 창조의 원동력이라는 관점을 배제한다. 창세기는 무력 충돌 없이 신의 말씀이 창조를 이끄는 방식이지만, 에누마 엘리시는 신들의 갈등이 핵심 요소로 자리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창세기를 읽으며 ‘태초에’라는 선언에서 시작하는 우주의 질서를 떠올린다. 그러나 창세기는 기원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신화를 차용하되 신화를 해체하고, 다신론적 세계관을 거부하며, 유일신 신앙을 선포하는 신학적 혁신의 산물이다. 창세기는 단순히 고대 신화의 변형이 아니다. 그것은 당시의 신화적 틀을 빌려와 완전히 새로운 신학적 메시지를 창출하는 작업이었다. 신들의 전쟁 없이 이루어지는 창조, 태양과 달을 신격화하지 않는 창조 서사는 당시 근동 문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선언이다.

 

신화의 틀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다

고대 근동 문명에서 ‘창조’는 단순한 우주 기원의 설명이 아니다. 이는 정치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도구였고, 신들의 권위를 확립하는 신학적 구조였다. 

바빌로니아의 <에누마 엘리시 (Enuma Elish)>는 마르둑이 티아맛을 죽이고 그 시체를 반으로 갈라 하늘과 땅을 만드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이 신화의 중심에는 폭력과 신적 갈등이 있으며, 궁극적으로 마르둑이 다른 신들을 지배하는 구조가 정당화된다. 고대 근동에서 창조 서사는 곧 권력 서사인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는 이러한 신화적 틀을 빌려오면서도,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한다. 창세기 1장에는 갈등도, 전쟁도 없다. 폭력이 아닌 신적 질서 확립이 창조의 핵심이다. 혼돈에서 질서로, 무질서에서 기능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John H. Walton이 지적하듯, 창세기 1장의 창조는 존재론적 창조(creation ex nihilo: "creation out of nothing")라기보다는 기능적 창조(functional creation)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물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존재들에게 질서와 목적을 부여하는 것이다.

 

창세기의 탈신화화

고대 근동에서 태양과 달, 별들은 단순한 천체가 아니라 신적 존재였다. 메소포타미아의 샤마쉬(태양신), 난나(달신), 이집트의 라와 같은 신들은 국가 신학의 핵심을 이루었다. 그러나 창세기는 이 신격화된 천체들을 철저히 해체한다.

창세기 1:16은 태양과 달을 ‘큰 광명’과 ‘작은 광명’이라 부른다. 이름조차 부여하지 않았다. 당시 고대 근동 문화에서는 충격적인 선언이었을 것이다. 21세기 민주사회 법정에 서는 대통령의 호칭을 두고도 이래저래 말이 많은데, 수 천 년전 고대 근동 문명에서 제국의 신들을 ‘무명씨들’로 호칭하는 창세기는 강대국들이 숭배하던 천체들을 단순한 피조물로 격하시키며, 오직 하나님만이 창조주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유대 공동체가 강대국들의 신화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신학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전략적 선언이기도 했다. 문헌을 통해 현재 한국 교회가 얼마나 비성경적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도 않다.

 

왕권 신학을 넘어,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

창세기는 인간 창조를 다룰 때 기존 신화와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아트라하시스(Atra-Hasis)>에서는 인간이 신들을 위한 노동자로 창조된다. 신들의 노역을 덜어주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졌으며, 그들의 역할은 희생 제물을 바치고 신들을 섬기는 데 있다. 

창세기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따라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유일신 신학의 가장 혁신적인 부분 중 하나로, 신적 형상이 특정 왕에게만 부여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부여되었음을 의미한다. 현대국가가 국가 구성원 전체의 자유와 권리를 각출하여 국가에 위탁하여 운영하기에 정권은 특정 정당과 권력에 의해 독점되는 것이 아니라 법률과 합의를 토대로 운영되어야 한다. 수 천 년전, 성서는 이미 제국의 왕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신의 대리자라는 선언을 내놓는다. 문헌을 통해 현재 한국 교회가 얼마나 비성경적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도 않다.

창세기 1, 2장의 선언은 근동 사회의 정치적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고대 세계에서 왕만이 신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간주되었고, 피지배 계층은 신과의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창세기는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선언하며, 창조 질서 안에서 평등한 가치를 부여한다. 이는 창세기가 단순한 기원 서사가 아니라, 신학적, 사회적 혁신을 담고 있는 문헌임을 보여준다.

 

우주론과 신화

Sabine Hossenfelder의 <Existential Physics>에서 논의하듯, 현대 과학에서조차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들은 신화적 서사의 형태를 띤다. 초기 우주에 대한 가설들은 본질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추정이며, 수학적 모델을 기반으로 한 현대판 창조 설화라고 볼 수 있다.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과학적 시도는 언제나 초기 조건에 의존하지만, 과학적 방법론 자체가 초기 조건을 초월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결국, 물리학자들조차도 "초기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 궁극적인 이론"을 개발하지 않는 한, 우주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 항상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이는 창세기와 같은 종교적 창조 서사와 과학적 우주론이 모두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영역을 해석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일정 부분 공통된 한계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세기는 단순한 우주론적 설명을 넘어, 신앙 공동체에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우주의 근본법칙으로부터 인격을 배제하고 더욱 불인(不仁)한 천지(天地)의 근본질서를 선택한 과학적 우주론과 근본적인 차이를 갖는다.

 

신화의 차용, 신화를 해체

창세기는 신화를 통해 신화를 탈신화화하는 문헌이다. 현대 과학조차도 우주의 기원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는 상황에서, 창세기가 제시하는 창조 서사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질서를 부여하고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신학적·철학적 선언으로 이해될 수 있다.

<地平線 Horizon B> 106 x 74 cm, 2018 (c) 방영문

 

이 블로그 내에서 참조:

 

고대 바빌론의 창조 신화 <에누마 엘리시>

성벽을 쌓고 그 안에 사람들을 모아 특정한 정치제도를 통해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 목적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그 나름대로 상당히 강력한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함무라비의 '법전'(The Code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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