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고 믿던 사람들은 그 나름의 서사를 갖춘 음모론을 만나 광야에서 신의 음성을 듣는 것 같은 엑스터시(Ecstasy)를 체험한다.
미국의 과학 저술가이며, 과학사 전문가인 마이클 셔머(Michael Brant Shermer)의 "음모론(conspiracy)은 무수한 사회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을 제공한다"는 설명을 통해 ‘음모론’을 발생시키는 심리적, 사회적 기제들을 들어 이것이 어떻게 사람들의 생각을 마비시키는지 설명한다. 음모론은 기본적으로는 커뮤니티 그리고 지금처럼 인터넷을 통한 연결이 발달되어 있는 시대와 사회에서는 소셜미디어를 알고리즘을 통해 유사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연결시켜 확증편향을 강화한다. ‘집단적 사고’라는 점에서 최악의 경우 심각한 사회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집단행동’을 발생시키기에 음모론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생물이다. 이는 재귀적 사고나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화를 촉진해 종(種, species)의 전반적인 생존 확률을 끌어올리는 능력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반대로 감정적 호소나 편향적 설득에 심취한 사회활동으로 분출되어 폭력적 활동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눈앞에 닥친 위협 뿐만 아니라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들을 그 나름대로 상정한 시뮬레이션에 특화된 생물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나 역사시대 이래 930번이 넘는 전쟁과 계절 변화 폭이 크기에 사회적, 자연적 대비를 쉬지 않고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한반도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불안감’이 심리 저변에 깔려 있다. 이는 사회 불안요소로 작용하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한 히스테릭한 반발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것이 일본의 집단성향과 우리가 가진 성향의 큰 차이를 만든다.
많은 사회들이 음모론에 심취한다. 이는 단순화된 서사를 추구하는 경향 그리고 권위있는 인물의 주장을 바탕으로 쉬운 믿음을 얻고, 그것을 강화하여 심적 안정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인간이라는 생물의 생존본능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두려움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에 호소하는 전형적인 음모론 확산 메커니즘에 자연환경적, 역사적 요인들로 인해 한국인들은 더 강하게 반응하기 쉽다는 것이다.
음모론은 심리적, 사회적 기제를 통해 형성되고 확산된다.
개인이 자신의 신념에 맞는 정보를 더 신뢰하고, 그렇지 않은 정보를 배제하려는 경향을 동기 부여 추론(Motivated reasoning)이라 한다. 중국과 북한 스파이가 국내에서 대규모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주장은, 특정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기존 불안을 강화하여 쉽게 수용된다. 어느 사회나 스파이는 있다. 그러나 사람은 이념이나 충성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회개선과 개인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중요한 이유다.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스파이를 근절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사회가 북한처럼 되기를 원하는 대한민국 사람은 어딘가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순된 정보나 신념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자신의 믿음을 합리화하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는 여전히 발생한다. 쉽게 말해, 세상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자기합리화적 생각들을 통해 해소하려는 경향이다. 이를테면, 선거 결과가 자신의 기대와 다를 때 이를 "조작"이라는 설명으로 단순화하여 그 불편함을 해소하려 한다. 몸만 어른이 된 미성숙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때로 음모론은 모든 사건이 의도적이고 특정 목적을 위해 일어난다고 믿는 사고방식과도 관계된다. 목적론적 사고(Teleological thinking)와 관계가 있다. 특히 한국 개신교를 중심으로 퍼져있는 북한 난민 정체성과 이로부터 강화되는 신권정치(神權政治, Theocracy)에 대한 광신은 자신들의 극단적인 성향을 신앙의 표출이라고 믿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정치적 ‘우익’ 혹은 ‘보수’는 그 근간에 자국중심과 민족주의가 깔려 있다. 기묘하게도 한국 ‘우파’의 정체성 안에는 ‘민족주의’가 매우 약하다. 오히려 이들은 한미일 공조나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보이지 않는 이스라엘을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로 내세운다. 민족주의가 약하고 타국의 존재감을 논거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나는 이것을 일종의 ‘난민정서’로 본다. ‘난민정서’란 이들 중 상당수가 북한에서 이주해와 그들을 수용한 지역들에서 전쟁 후 되돌아가 못한 사람들이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지나치게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발견된다. 지역 정체성이 약한 난민들은 안정에 집착한다. 안정에 대한 집착은 곧 자산과 사회적 위치 확보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오늘까지도 많은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세습과 재산분쟁이 심각한 이유 중 하나 일 것이다: https://bhangyoungmoon.tistory.com/entry/%ED%95%9C%EA%B5%AD-%EA%B8%B0%EB%8F%85%EA%B5%90%EA%B0%9C%EC%8B%A0%EA%B5%90%EC%9D%98-%EB%BF%8C%EB%A6%AC%EA%B9%8A%EC%9D%80-%ED%83%88%EB%B6%81%EB%AF%BC-%EC%A0%95%EC%84%9C-%E2%80%93-%EC%84%9C%EB%B6%81%EC%B2%AD%EB%85%84%ED%9A%8C%EC%99%80-%ED%95%9C%EA%B8%B0%EC%B4%9D%EC%9D%98-%EC%97%AD%EC%82%AC%EC%A0%81-%EB%A7%A5%EB%9D%BD
한국 기독교(개신교)의 뿌리깊은 탈북민 정서 – 서북청년회와 한기총의 역사적 맥락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하나둘씩 붓길이 스쳐지나가는 동안에 나는 매우 중대한 사실을 하나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날 내가 싸인을 해준 아주머니는 열명이었는데 이들 모두가 불교신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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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이들이 ‘이스라엘’을 논거에 포함시키는 까닭은 6, 70년대 이스라엘의 민간외교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회복의 의미를 전략적으로 유포했다. 이는 미국의 목회자들과 부흥사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미국내 ‘바이블 벨트’에 강하게 뿌리내렸다. 현실적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은 동맹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는 마치 하나처럼 행동한다. 이것이 신념을 토대로 구축하는 민간외교전략의 성과이며 모범사례다. 이에 영향을 받은 한국 교회들도 이스라엘 외교전략 프레임에 빠져있다. 이렇게 초자연적이거나 영적인 설명을 통해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초월적 사고(Transcendent thinking)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개인이 자신의 삶이나 사회적 사건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통제 소재(Locus of control) 문제가 음모론의 논거를 이루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북한이나 중국이 한국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 사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전능해지는 북한의 능력, 중국의 무한한 능력이 나타난다. 그런 북한과 중국은 어째서 아직도 세계를 정복하지 못했을까?
이렇게 사람들은 근거없는 불안에 몰입하는 정신질환적 상황으로 가기 시작한다. 혼란스러운 현실에 대한 단순하고 명확한 설명으로 안정감을 얻기 위해 불안 감소(Anxiety reduction) 행위를 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음모론은 불확실성을 확실하게 제거하고 간단 명료한 서사를 부여한다. 이는 불안감을 느끼던 사람들이 신봉자로 개종하게 되는 순간을 만들기도 한다.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이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강화하여 기존 신념을 강화하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수집하고 해석려는 행복을 반복시킨다는 것을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이것은 특정 커뮤니티에서 음모론과 관련된 정보만 반복적으로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문제를 만든다. 이러한 문제는 사건의 원인을 특정한 방향으로만 해석하려는 귀인 편향(Attribution bias), 그리고 발생한 사건들을 바라보며 “이미 징후가 있었다” 혹은 “내가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후판단 편향(Hindsight bias)으로 이어진다. 정치적 극단점에 있는 사람들이 전세계적으로, 특히나 성장배경에 유사한 측면이 있는 대한민국과 미국의 베이비부머들을 중심으로 ‘유사한 모습’이 보이는 까닭은 그들의 사고를 결정한 심리적, 사회적 기제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집단이 옳고 도덕적이라고 믿는 우리편 편향(In-group bias)을 만들고 복잡한 문제의 과도한 단순화(Oversimplification of complex problems)를 통해 자신이 이 세계의 진실을 확인했다는 맹신으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사회 현상은 그 이유가 복잡하다. 그 원인이 다원적이다. 그러나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한 음모나 특정 집단의 책임으로 환원하면 복잡한 사회현상을 이해하기 힘든 부족한 지성으로도 충분히 사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이것은 무작위적 사건에서 패턴을 도출하는 패턴성(Patternicity)으로 나타나고 초월적 사고와도 연관되는 행위자성(Intentionality)을 발견한다.
많은 사람들이 음모론에 심취하는 까닭은 그것이 단순한 잘못된 정보가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 기술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마이클 셔머가 지적한 다양한 인지적, 심리적 기제를 이해하고 이를 분석의 틀로 삼는다면, 음모론을 체계적으로 반박하고 이를 줄여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방치할 경우 사회적 분열과 불신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몸소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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