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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는 허구인가? 시간은 흐르지 않는가?

생각의 자리

by Photographer Bhang 2023. 3. 1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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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란 언어를 바탕으로 하는 인식이다. 유사명제로부터 현대적 의미에서 통용되는 언어에 이르기까지 언어의 근간은 '분리'라는 기본적인 구조는 언제나 유지된다. 언어활동의핵심은 물리적 대상으로부터 의미 - 개념 분리해내는 행동이다.

, 과거 현재 미래의 인식은 우리 인식이 갖는, 언어에 바탕을   특징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소위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혹은 시간은 없다” 혹은 “과거 현재 미래는 환상이다”라고 하는 이해의 실체는 우리 인식이 언어에 바탕을 둔다는 점을 자각하는 것에 있다. 또한 이것은 존재론적 대상 거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숟가락은 없다"라고 말할 때와 마찬가지로 대상의 물질적 실체 여부와 관계 없이 우리의 인식문제와 관계된 것들을 지적하는 것일 뿐이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 Carlo Rovelli 의 설명처럼 에너지나 시간의 흐름이라는 현상을 만드는 것은 낮은 엔트로피라고 해도 우리의 일상 경험은 분명 시간이 흐르고, 우리의 인식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시제를 바탕으로 유효하게 작동한다. "시제"가 언어를 바탕으로 하는 인식에 '불과한 것'이라 할지라도 현재 인류의 실존에서 과연 그러한 것들로부터 전적인 자유를 성취할 수 있을까?

그러한 욕망 자체가 일종의 망상이다.

언어활동: 인간인식의 주된 프로세스

인식 프로세스의 가장 기본적인 골격이라   있는 언어활동은 '분리'를 기본으로 한다. 음성언어의 경우 소리로부터 의미를 분리하는 과정을, 기호와 문자의 경우 시각적 대상으로부터 의미를 분리하는 과정을 통해  활동이 가능해진다. 

언어 이전단계에서도 이러한 프로세스는 중요하다. 손으로 사물을 묘사할 때도,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킬 때도, 상대방에게 나와 협력할 행동을 알려줄 때도 모두 마찬가지다.

인간 언어활동의 핵심은 사유가 아니라 소통이다. 소통활동의 오랜 누적을 통해 개념의 증대가 이루어진 인간언어가 혼자만의 사유를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또한 인간은 영유아기독자적으로 생존하고 인간적 특징들을 자연습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언어는  가운데 인간의 소통활동 , 사회적 구조를 바탕으로 양육자와의 상호관계없이는 가질  없는 특징이다.

언어는 (1) 물리적 사태와 개념의 분리를 기본으로 하며 (2) 그것은 사회활동이다. 

따라서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우리가 달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1) 손가락으로 취하는 행동이 손가락이 아닌 목적하는 바가 있는 다른 무언가를 가리킨다는  의도를 파악하기에 가능한 것이며 (2) 이것은 상대의 의도를 이해하려는 사회활동을 근간으로 한다. 

대부분의 생물이 달을 가리킬  가리키는 손으로부터 의도 혹은 의미를 분리해 생각하지못한다.

 

언어가 인간인식의 토대가 된다면,  토대가 물리적 사태와 개념의 분리 그리고 목적과의도 파악이라는 상호작용을 기본으로 한다는 사실은 우리 인간의 거의 모든 소위 '정신적활동'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과거 - 현재 - 미래의 구분이란 사실로부터 개념을 분리하는 이러한 언어기반의 인식 과정에서 비롯된다. 

숟가락이 없다“라는 선언과 마찬가지로 시간은 없다“라고 말하는  또한 이러한 인식 문제에 대한 함축적 환기[喚起, awakening] 표현이다. 정말로 무엇인가가 있다 혹은없다 식의 유무(有無) 이분법, 존재론적 관점의 표현이라고 알고 있다면 이후 상당한 오해를 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설명들을 존재론적 접근으로 오해하고 풀어가는 아티클들이생각보다 매우 많다는 것이다.

시제적 경험은 우리 인식에서 아주 일반적으로 일어나며 이것은 우리에게 굉장히 유용하다. 애초에 시간”이라는  자체가 변화를 인지하는 우리 인식의 틀이다. 되려, “시간은없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식의 표현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갖는 경험을 지나치게 무시하거나 혹은 자신의 생각을 알리기 위해 소위 어그로를 끄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시제적 구분은 우리를 이루는 다양한 기능, 우리의 인식들, 지적활동들의 바탕이 된다. 어떤 것이라도 과몰입하지 않으면  나름대로 유용성을 취할  있는 것이다. 우리의인식이 언어에 기반을 두는 경향이 있기에 실상으로부터 관념적인 요소들을 분리하고, 그렇기에 실상과 우리 이해가 괴리를 갖는 것은 사실 당연하다.

우리의 직관과 물리적 현상에 괴리가 있다는 사실은 아마도 지동설[地動說] the Copernican theory‘ 이후로 계속되어 , 과학적 지식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이는 우리의 인식이 기본적으로 우리의 신경연결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옛날 인류의 조상들이 전언어단계의 유사언어, 유사명제를 구사할 무렵,  언어의 출현이 우리의생물적 여건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직관적 인식이란 생존과 관련된 기능을 극대화하는 것이었지 우주의 신비를 푸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동설의 발견 이전 인식과 표현들이 실생활에서 무용하지 않으며 여전히 우리는’해가 뜨고 달이 뜨는‘ 세계를 살아간다. ’일출‘이라는 현상을 오늘날 천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정확히 서술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태양의 주위로지구가 공전하고 또한 자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더불어 그러한 지식이 우리의 여건을당장에 바꾸는 것과는 관계가 없음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국적 상황을 읽어내는 통찰이있는 사람도 대부분은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인간은 투척에 필요한  영역을 비롯한 신체기능을 필기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사냥과 공격을 위한 몸의 기능이 문자 기록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용환경변화와  변화에서 비롯되는 누적의 진전이 우리의 직관과 실상의 괴리를 점차 줄여가는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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