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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사운드스케이프 프로젝트와 R. 머레이 쉐퍼(R. Murray Schafer)

음악이야기

by Photographer Bhang 2025. 4. 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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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작곡가, 음악 교육자, 그리고 음향 생태학자 R. 머레이 쉐퍼(R. Murray Schafer, 1933-2021)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라는 용어를 대중화하고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이끌었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청각적 환경 전체, 즉 '우리의 음향 환경'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운드스케이프를 정의했는데, 이는 단순히 소리의 물리적 속성을 넘어, 인간이 맥락 속에서 소리 환경을 어떻게 인지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의 연구는 음악학, 음향 생태학, 도시 계획,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우리가 주변 소리에 대해 더 주의 깊게 듣고, 분석하며, 그 가치를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라는 표현은 머레이 쉐퍼에 의해 널리 퍼진 개념이다. 그러나 용어의 창안 순서로 보면, 도시 기획자로 알려진 마이클 사우스워스(Michael Southworth)가 쉐퍼보다 먼저 '사운드스케이프'라는 용어를 사용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주로 도시 환경의 소리 특징을 기술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 용어를 활용했는데, 쉐퍼 자신도 사우스워스로부터 이 용어를 차용했음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목 R. 머레이 쉐퍼 (음향 생태학)
핵심 정의 인간이 살아가는 실제 음향 환경 전반
초점 청각 생태학, 사회·환경적 인식
기조음 (Keynote Sounds) 무의식적 배경 소리 (자연, 도시 소음)
음향 신호 (Sound Signals) 명확한 경고·의사소통 소리 (사이렌 등)
음향 표지 (Soundmarks) 지역 정체성의 고유 음향 (교회 종소리 등)
Hi-Fi / Lo-Fi 신호 대 잡음비에 따른 음향 명료도 구분
시간성 인식 현재의 소리를 생태적으로 포착
공간성 인식 음원의 위치, 거리감, 원근감
예술관 사회·생태적 청각 감수성 함양
청취자 역할 소리를 인식하고 환경과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존재

 

쉐퍼와 함께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Simon Fraser University)에서 월드 사운드스케이프 프로젝트(World Soundscape Project)의 핵심 멤버로 활동한 작곡가 배리 트루액스(Barry Truax)는 사운드스케이프 개념을 바탕으로 한 전자음악 및 일렉트로-어쿠스틱 음악 작곡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특히 '사운드스케이프 작곡(soundscape composition)'이라는 장르를 발전시킨 인물로 기억된다. 그의 작품은 실제 환경음을 사용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특정 장소나 기억,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도록 유도한다. 또한 힐데가르트 베스터캄프 (Hildegard Westerkamp) 역시 월드 사운드스케이프 프로젝트의 초기 멤버로, 쉐퍼와 트루액스의 동료였다. 그녀는 필드 레코딩(field recording)을 자신의 작곡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환경 소리를 통해 듣는 이의 청각적 인식을 확장하고 환경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들을 선보였으며. 모든 작품이 사운드스케이프 작곡의 레퍼런스로 인정받는다.

이처럼 환경의 소리 즉, 어떠한 장소-공간, 순간에서 얻을 수 있는 소리들을 어떠한 지향점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쉐퍼를 중심으로 했던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의 개념이다. 이들의 '사운드스케이프'는 특정 환경(도시, 자연 등)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의 총합, 즉 '소리 풍경'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이는 이미 존재하는 실제 환경의 청각적 특성을 지칭하며, 사회적, 문화적, 생태학적 맥락 안에서 소리를 이해하려는 접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발견되는(found)' 소리, 실제 세계의 소리에 기반하며, 환경과의 관계, 청취자의 인식에 중점을 두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이 자신의 Frippertronics로 만들어내는 레이어들을 "the soundscapes"라고 지칭한 것은 R. Murray Schafer나 그와 연관된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사운드스케이프' 개념과는 상이한 경우다.

사실 내가 최근 사운드스케이프라는 용어를 다시 떠올린 계기는 로버트 프립의 프리퍼트로닉스(Frippertronics)에 의한 사운드스케이프("the soundscapes") 때문이었다. 내 작업을 위한 표현에 사용할 기술들을 살펴보던 중 로버트 프립의 프리퍼트로닉스와 관련해 그가 사운드스케이프("the soundscapes")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상이한 쉐퍼나 프립의 관점을 비교해보면 재미있지 않을가?

프립의 기법은 두 개의 릴투릴 테이프 레코더를 사용하여 기타 소리를 실시간으로 반복시키고 중첩시켜 두껍고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음향 텍스처를 만드는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그 결과물을 "the soundscapes"라고 표현할 때는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made)', '구축된(constructed)' 음악적 풍경을 의미한다.

두 경우 모두 '스케이프'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소리가 단순한 시간적 흐름을 넘어 공간감이나 환경적 느낌을 갖도록 하는 데 관심이 있다. 듣는 이에게 몰입감을 주고, 특정 분위기나 상태를 조성한다. 쉐퍼의 접근은 생태학, 사회학, 청각 인식 개선 등 보다 넓은 학문적, 사회적 맥락을 가지는 반면, 프립의 사용은 주로 음악적 표현과 미학적 탐구의 결과물을 지칭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프립의 작업에서도 우연적인 측면이나 어떠한 소리들의 발견이 매우 중요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우연적 발견이냐 기술적 시도냐 혹은 사진적이냐 회화적이냐 하는 구분보다, 쉐퍼의 사운드스케이프는 특정 장소의 소리 정체성과 연결되는 구체성을 지닐 수 있지만, 프립의 Frippertronics 사운드스케이프는 보다 추상적이고 내면적인 경험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로버트 프립이 "the soundscapes"라고 표현한 것은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이 지닌 몰입감 있고, 층층이 쌓이며, 마치 풍경처럼 펼쳐지는 질감을 묘사하기 위한 용어 사용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쉐퍼가 제시한 '사운드스케이프' 개념, 즉 실제 환경의 소리 전체를 의미하는 것과는 그 지향점과 소리의 근원에서 차이가 있지만, '소리로 만들어진 환경'이라는 넓은 의미에서는 유사한 감각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관찰과 구체성, 추상과 내면적 해석이라는 구분이 더 근본적인 구분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프립은 쉐퍼와 다른 방식으로 '소리 풍경'을 탐구하고 창조한 예술가로 이해할 수 있다.

 

R. 머레이 쉐퍼(R. Murray Schafer)의 사운드스케이프 관련 개념들

기조음 (Keynote Sounds)

기조음은 특정 환경의 특징을 이루는 배경 소리로서, 흔히 무의식적으로 인지되는 소리들이다. 이는 음악의 조성과 같이, 사운드스케이프의 기본적인 분위기를 설정한다는 방식으로 접근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 환경, 이를테면 바람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 곤충 소리, 동물 소리 등 지리적, 기후적 특성에 의해 발생하는 소리, 해안 지역의 바다 소리, 시골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등이 기조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도시 환경의 소리들 교통 소음, 냉장고 소리, 에어컨 소리 등 현대 사회의 일상적인 소리. 특히 도시에서는 교통 소음이 지배적인 기조음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하게는 소리 환경 자체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역시나 현대 예술을 이해하는데 혹은 설계하거나 접근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것 하나는 '재인식'이라는 프로세스에 있음을 이러한 작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음향 신호 (Sound Signals)

음향 신호는 기조음보다 더 뚜렷하게 들리는 전경 속의 소리들로, 종종 의사소통 기능을 수행한다. 사이렌, 경적, 벨 소리 등 위험이나 주의를 알리는 경고음, 경찰차나 구급차의 사이렌, 자동차 경적 등을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의사소통의 방법을 위해 기차나 배의 기적, 전화벨 소리 등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리를 활용할 수 있다.

 

음향 표지 (Soundmarks)

음향 표지는 지역을 중심으로 생각할 때 '특정 지역', 혹은 '해당 지역'의 고유하고 문화적으로 중요한 소리가 되는데, 지역 사회의 정체성을 정의하며 보존할 가치가 있는 음향적 랜드마크로 간주된다. 단어의 형태를 통해 알 수 있듯, 랜드마크(landmark)라는 표현의 변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 상징을 특정하자면 아무래도 그 지역, 도시의 독특한 소리, 전통 악기 소리, 지역 축제 소리 등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인식하고 찾아내는 것이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자의 역량과 직결된다는 점은 말 할 것도 없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쉐퍼는 음향 환경을 신호 대 잡음비에 따라 Hi-Fi와 Lo-Fi로 구분했다는 점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Hi-Fi 사운드스케이프 주변 소음 수준이 낮아 개별 소리가 명확하게 들리고 원근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하는데, 특별히 차로의 사용 빈도가 높지 않은 교외, 농촌 지역, 밤 시간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Lo-Fi 사운드스케이프 과도한 소음으로 인해 개별 소리가 가려지고 원근감을 잃게 되는 환경을 떠올릴 수 있는데, 오늘날의 대도시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소리 환경을 개념화하여 그 구분을 두어보면 그 나름대로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다양해진다.

세계 사운드스케이프 프로젝트 (World Soundscape Project)

쉐퍼는 1960년대 후반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에서 세계 사운드스케이프 프로젝트(WSP)를 설립하여 음향 생태학 연구를 주도했다. WSP는 밴쿠버를 시작으로 전 세계의 다양한 음향 환경을 기록하고 연구했으며, 소음 공해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건강하고 쾌적한 음향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음향 디자인(Acoustic Design)' 개념을 제시했다. WSP의 목표는 음향 환경의 사회적, 심리적, 미적 질을 개선하기 위한 원칙과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었다고 한다.WSP는 밴쿠버 사운드스케이프 연구를 시작으로 유럽 5개 마을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심층적으로 조사하는 등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이러한 연구 결과는 여러 출판물과 음향 기록물로 남아 있다. 

R. 머레이 쉐퍼의 사운드스케이프 이론우리가 주변의 소리를 단순히 소음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문화, 그리고 인간의 경험을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도록 했다. 음향 생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했으며, 음악, 건축, 도시 계획 등 다양한 분야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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