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프랑스의 현대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의 공감각적 경험을 작품과 작업에 도입했던 사례는, 감각경험을 통해 불교적 접근에서 재발견되는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접근과 공명하며 새로운 예술활동이라는 ‘모색(摸索, fumble)’을 가능하게 할 단서로 다가왔다. 이는 감각과 감각대상 사이에서의 공명을 ‘감각인식자(sentient)’라 한다면, 어떠한 일시적인 인지, 감각수용의 주체에 관한 통찰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이번 작업의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올리비에 메시앙이 색채의 조합을 그 스스로의 독특한 경험과 감각수용 그리고 정신적 경험으로 재해석하여 작품 세계를 만들어낸 것을 사례로, 나 또한 색채에 관한 경험과 음악에 관한 경험을 하나의 작품 속으로 통합할 수 있는 작업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1시간 6분의 음악이 포함된다. ‘전시’를 할 때 분위기나 작품에 대한 인상의 해석을 음악, 음향으로 표현하는 시도는 일반적이다. 내가 2022년 <물의 감각> 그리고 2024년 <고색창연> 작품을 함께 만들며 고민했던 지점도 이와 비슷하다. 세움 SEUM 의 음악과 더불어 미디어아트(이민정) 재해석 되었던 작품들 그리고 2024년 10월 전통음악집단 샛의 음악과 <고색창연>을 무대에 올린 이후 재미있게도, 2022년 협업 바로 이듬해 1월에도 갤러리 CISO의 초대전으로 개인전을, 이번 2024년 협업 이후에는 오는 2025년 1월에는 1019 Gallery&Lounge 초대전으로 개인전을 갖게 되었다는 것도 이러한 부분을 많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다른 장르'와의 협업 이후 머지 않아 개인전을 갖는 '사이클'이 생긴 것이다. 그러면서 뮤지션들과 함께 해본 표현과 내가 직접 해보는 재해석의 간극도 다시 바라보게 된다.
훌륭한 뮤지션들과의 협업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어떤 문제들은 결국 음악과 시각작품이 하나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보이는 것에 대한 인상을 들리는 것으로 바꾸는 것 혹은 들리는 것에 대한 인상을 보이는 것으로 바꾸는 것은 결국 음악가나 작가가 받는 인상(impression)의 표현이다. 나는 이것이 같은 작품 안으로 들어오려면 시각작품과 음악을 "같은 체계를 토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색채가 곧 어떠한 '음정', '보이싱 voicing', '음계'로 그대로 연결될 수 있는 일관된 체계로 변환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색채에 대한 경험 혹은 감각을 나의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고, 이를통해 다매체, 다감각적 예술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1019 초대전, 색의 음악화 작품: The Horizon in a distant view
The Horizon in a distant view - Film | BHANGYOUNGMOON.COM
In my work, the 'horizon' symbolizes a limit that is known but cannot be crossed. It symbolizes the wall of perception that is understood but cannot be crossed.
www.bhangyoungmoon.com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은 소리, 음악을 들을 때 이것을 색채로 느끼는 공감각자이다. 나는 그가 드뷔시의 오페라 <Pelléas et Mélisande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학생들에게 설명할 때 "푸른색과 녹색이 묻어나는 오렌지 색상"이라는 설명을 한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메시앙 자신도 음악을 토대로 그림을 그려내는 스위스 화가와의 만남에서 자신이 음악을 느끼는 방법이 독특함을 발견했다고 알려져있다. 그가 스스로의 작곡을 위해 개발한 "조옮김이 제한되는 선법(Mode of limited transposition)"은 그 바탕이 색채에 있다고 한다.
나는 이와 관련한 평론, 논문과 같은 연구자료들을 찾아 모았고, 이것을 AI를 이용해 분석했다. chatGPT는 이 자료들을 토대로 파이썬 코드를 하나 짜주었는데, 그 코드들을 실행해보니 이런 결과물들이 잔뜩 나왔다. 나는 그 중에서 내 작업에 사용된 색채들을 골라 메시앙 음계와 맞춰보았다. 그리고 메시앙의 오르간, 피아노 소품 그리고 드뷔시의 작품 일부를 가져다 변주 작업을 했다. 메시앙 음계 1번과 3번의 첫번째 그리고 두번째 이조를 이용해 작품의 변주를 만들었다. 중간중간 거의 그대로 나오는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하콘 어우스트보(Håkon Austbø)의 해석은 메시앙 1선법에 대한 색 해석은 근본적으로는 동일하지만 색해석에서 집중하는 지점과 특정한 색 해석에서 조금은 다른 측면이 있다. 어우스트보의 연구는 메시앙의 작곡에 관한 글들과 어우스트보 자신이 메시앙의 작품을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하는데, 어우스트보의 연구는 간혹 색의 명암이나 조합이 미묘하게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시각화나 색조합의 구조에 대한 메시앙의 묘사는 어우스트보의 연구보다 조금 더 시적인 면이 있다.
어우스트보와 메시앙의 방식에 '차이'가 있다기 보다 어우스트보의 방식은 조금 더 색상의 범주와 체계화, 구조화에 집중한다. 메시앙의 표현이 미묘한 변환 혹은 색조를 시적으로, 때로는 모호하게 묘사하는 것과 그 맥락에 다소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메시앙 자신의 설명이 유연하고 상징적인 측면이 있어 시각적 표현에서 유연성을 갖는 측면이 있다면, 어우스트보의 작업은 이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감상자들 혹은 실연자들(performers)에게 조금 더 선명한 가이드라인을 주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우스트보의 해석은 메시앙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의 핵심을 반영하고 있지만 동시에 범주화를 위해 모호한 부분들을 다소 조정하고, 각각의 색조합이 조금 더 일정하고 항구적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
세계 사운드스케이프 프로젝트와 R. 머레이 쉐퍼(R. Murray Schafer) (0) | 2025.04.03 |
---|---|
앰비언트 시너지: 로버트 프립(Robert Fripp) 그리고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의 <Evening Star> (0) | 2025.03.29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