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연구가 패트릭 맥나마라 Patrick McNamara 는 신과 그에 수반된 종교의 존재가 현생 호모사피엔스를 우리가 호미닌 선조들과 구분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 — "거미의 거미줄, 비버의 댐, 새의 울름처럼 현생 인류 특유의 전형적" 요소 — 라고 주장했다." <뇌의 진화, 신의 출현> E. 풀러 토리
2021년에 들어서며 몇 권의 책을 새로 시작해 읽었다. 그 중에 하나로 <절멸의 인류사>라는 책은 아주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었다. 진화인류학을 요점 정리처럼 아주 잘 정리한 이 책은가끔 일본 학자들의 책을 읽으며 느끼게 되는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접근과 빠른 결론 도출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동시에 단점으로도 작동한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논의 중이거나, 다양하게 제시된 가설 중 하나를 결론처럼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절멸의 인류사>의 저술 방향을 보면 개체적 특징에 몰입을 하는 경향이 보인다. 뇌의 크기나 육식 가설의 고정 등이 그렇다. 뇌는 크기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방식이 지능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은 정설이 되어가고 있다. 뇌의 크기만을 놓고 본다면 지구상에는 인간보다 뇌가 큰 종은 얼마든지 있다. 간단한 예로 '고래'는 어떤가?
한 가지 예로 아인슈타인의 사후 그의 뇌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졌을 때, 아인슈타인의 뇌는 1,230그램으로 성인 평균 뇌의 무게보다 훨씬 가벼웠음이 밝혀졌다. 다만 마루엽 분할이 일반적인 뇌에 비해 다소 불분명했는데 이는 마루엽이 전반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붙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수학적 사고나 공간적 지각 능력을 증대시켜주는 요소로 보고 있다. 즉, 뇌는 크기, 용적 같은 것도 중요하지만 또한 중요한 것은 구조와 연결성이다.
또 한 가지로는 창조적 능력이나 지능을 개체의 능력으로 한정하는 관점이다. 이것은 지금도 매우 흔한 관점이어서 우리는 흔히 '천재'라는 표현을 남발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창조적 능력과 지능은 개체의 능력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능력이기도 하다. 즉, 공동과 집단을 지향하며 정보의 누적을 통해 더 고등한 지적 능력을 성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천재'라 불리우는 인물들은 대개 다른 영역의 문제들과 해답들을 연결해 제 3의 결과를 도출해내는 능력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과는 커다란 차이의 집중력과 시간투자를 했던 사람들이다. 모차르트가 자신의 작품이 초연되는 공연장의 공간을 고려해 작곡을 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부 그의 전기에서 등장하는 천재성에 대한 묘사는 대부분이 조작인 것으로 밝혀졌다.
집단의 구조와 생존의 방식은 인류의 역사와 연관되기 시작하면 유난할 정도로 뇌와 지능으로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러한 측면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요소들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자연환경이나 다른 신체적 여건이 그렇다. 이를테면, <절멸의 인류사> 속에도 네안데르탈랜시스와 호모 사피엔스 간의 도구 차이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것 하나가 바로 '원거리 무기'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상할 정도로(?) 발달한 던지기 기술이 있었다. 이러한 신체적 기능을 통해 우리는 야구와 같은 구기 종목을 발전시키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대형유인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연구를 보면 침팬지도 작업기억과 같은 지적 능력에서 인간보다 훨씬 나은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타자의 생각에 대한 표상, 투척 기술과 같은 부분은 여전히 격차가 크다.
내가 <절멸의 인류사>를 읽어보게 된 까닭은 구상 중인 작품의 배경지식과 맥락에 매우 중요한 참고가 될 듯 싶었기 때문이다.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책은 연표처럼 무엇인가를 정리하기 좋기 때문에 유용하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책을 구입해 읽어보시면 좋을 듯하다. 이 책은 약 5만년 전, 그러니까 다른 인류종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현생 인류의 조상들만 남게 된 시점을 끝으로 맺는다. 이 책을 읽은 것이 동기가 되어 나의 작품 구상을 위한 배경지식들도 한 번 노트로 정리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적기 시작한다.
<절멸의 인류사>를 덮다
정신의학 박사이자 스탠리 메디컬 리서치 연구소 Stanley Medical Research Institute 의 연구 부소장인 풀러 토리(Edwin Fuller Torrey)는 인간의 두뇌 발달과 관련해 그의 책에서 매우 다양한 이론들을 소개한다.
우리 뇌와 우리가 가진 지능은 거대해진 뇌의 특정 영역들과 이 영역들간의 연결 밀도에 비롯된다.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로부터 오스트랄로피테쿠스까지는 직립 보행 이외에는 인류와의 공통점이 많지 않다. 석기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나 도구의 사용은 오늘날의 연구에 따르면 대형 유인원들에게는 일반적인 능력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Australopithecus)은 약 400만년 전에 등장했고, 파란트로푸스속(Paranthropus)은 약 270만년 전에 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사람족(Hominini)에 속하는 사람아족(Hominina)으로 분류하며 약 233만년 전에 등장한 호모 하빌리스가 호모속(사람속)으로 분류된다.
비교적 최근 연구에서는 호모 하빌리스로 보았던 화석 중 일부가 호모 루돌펜시스(Homo rudolfensis)라는 별도의 종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승인되어 별도의 종으로 분류한다. 다만 풀러 토리의 저술에서는 호모 루돌펜시스에 대한 언급은 없기에 나는 이 노트를 호모 하빌리스를 기준으로 정리했다.
호모 하빌리스의 두개골 연구를 통해 “뇌 물질 증가”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마엽에서 뚜렷한 발달이 눈에 띄는데 이는 호미닌의 진화가 새로운 차원의 조직화를 달성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호모 하빌리스의 연구에서 등장하는 것들 가운데에는 바위를 깨뜨리는 석기의 사용 이외에도 목적의 돌을 구하기 위해 몇 킬로미터를 이동하고, 석기를 가지고 새로운 장소로 이동했다는 점이 있다. 이는 이전에 존재했던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는 보기힘든 특징이다. 이러한 호모 하빌리스의 행동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들이 계획과 예측을 기반으로 행동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 파란트로푸스속에 속하는 이들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육식의 증가다.
호모 하빌리스 때부터 육식을 했던 것으로 보는데 이 때문에 뇌 발달과 육식을 연결하는 가설이 많이 등장한다. 이 때문에 육식과 뇌 발달의 관계가 자주 등장하는데, 인류의 진화와 두뇌의 발달에서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론은 옥스퍼드 대학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 Robin Dunbar 가 주장한 사회적 뇌 가설로 알려져 있다. 이는 큰 사회 집단을 이루는 종이 복잡한 사회를 관리하기 위한 기능을 발달시키면서 뇌의 발달을 가속시켰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지만, 이 이론이 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조심스럽게 중간 결론을 내려보자면 뇌의 발달은 단일한 원인보다는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적절할 것이다. 육식과 불을 이용한 단백질 공급과 소화흡수 속도의 증가가 뇌의 발달로이어진 결정적 시기 가설을 성립시킨다면, 사회적 뇌 가설은 이렇게 변화를 맞은 뇌가 현재에 이르는발달을 해오는 과정을 설명해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불멍'과 같은 행동이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는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불가에 앉아 의사소통을 하고, 사냥한 고기와 채집한 식물을 불에 구워먹는 행동은 오늘날의 인류를 만든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단일 원인의 상정은 그야 말로 지나친 단순화 혹은 일반화의 오류다.
결정적으로 현생 인류가 생존하는데 가장 중요했던 요인은 '사회성'이라는 것이 최근의 결론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나는 언어가 우리 의사소통 기술에 들어오고 우리의 지능과 함께 발전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인간의 소통 능력에 관해 배울 수록, 우리가 어린 시절 흔히 품어왔던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세상 즉, 요정이나 동물들의 감각적 의사소통은 언어에 비해 그 질이 매우 떨어진다는 점에 대해 확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시인은 위대하다" 혹은 "기록은 중요하다"로 이해해도 좋다.
인간의 언어 소통이란 공기를 흔들며 전달되는 파동의 패턴을 수용해 거기에서 의미를 해석하는 매우 고등한 능력이다. 이외에도 시각적 혹은 청각적 기호체계 등으로 전달이 가능한데, 이것은 인류 언어의 발전사 전반에 비한다면 매우 최근의 일일 것이다. 마인드컨트롤, 텔레파시, 감각적 공감에 대한 과도한 몰두는 '치트키 cheat key'를 찾는 게이머들의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 언어에는 구조적 결함이 크지만, 지구상에는 기나긴 역사를 통틀어 이처럼 강력한 소통 수단이 등장하지 않았다.
인간의 사회와 관계란 인간이라는 생물이 가장 최근에 얻어 발전시킨 능력(기술 혹은 측면)임을 생각해 볼 때, 지구상 포유류 체중의 36%를 차지하는 인간이라는 종의 사회 규모가 큰 것은 필연일 것이다. 이것은 다양한 상징 체계와 감각적 요소들을 총동원해 상대의 생각과 자신의 기억을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즉, 생존 능력 중 가장 최근에 획득한 강력한 기술로 지난 4만년에서 길게 보는 이들은 10만년 정도 전에 본격적으로 발현되었다.
'인간관계'는 현생 인류를 만든 가장 핵심적인 능력이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는 일종의 생존기술이다. 때문에 일부 개체에게는 이것이 매우 어려울 수 있다. 초원의 왕 사자의 무리도(인간의 도덕이라는 편향에 비추어 볼 때)비겁하게 새끼나 뒤쳐지는 개체를 사냥한다. 생존기술은 획득여부와 관계 없이 어려움이 따른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인간관계는 어려운 것이며, 언어 소통은 여전히 쉽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사소한 표현의 문제로 감정의 응어리를 품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서로 다투게 된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 능력 즉, 언어의 사용은 거대한 집단을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수단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커다란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했을까?
바로 '신'이다.
스타게이트 SG-1 이야기: 외계인은 인류 문명에 개입했는가? (tistory.com)
풀러 토리(Edwin Fuller Torrey)는 그의 책에서 인류가 변화해 오면서 경험한 뇌의 변화와 그렇게 인류가 만들어 낸 거대한 사회가 어떠한 결과물들을 내놓는지 아주 흥미롭게 적고 있다. 단절의 역사와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과 존재들의 당위성을 설명해주는 '신(神, gods)'을 만든 것이다. 이것이 점차 발전하면 선형적 인과관에서 발생하는 무한소급의 문제를 제일원인을 상정하여 멈추게 되는것이다.
이는 인류 문명의 역사가 오래된 지역일수록 흔하게 등장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다양한 문명과 여기에서 영향을 받은 레반트 지역 히브리인들의 종교를 비롯하여 흑해-카스피해 초원에서 발달한 것으로 보이는 유목민들의 신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정착 생활 문명 유형 지역에서는 지역사회 혹은 도시국가화와 맞물리며 비교적 정리되고 강력한 주신의 개념이 정착된 반면, 유목민들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신들의 혼재를 경험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문명 발달이 비교적 늦게 이루어진 동아시아에서는 이러한 신들에 대한 사회적 수용이 그다지 구체적이지 않다. 오히려 문자적 기록의문제와 언어가 갖는 문제에 대한 이해와 사회 운영과 관련된 구체적인 문화가 발전했다. 만사에 신비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합리적이고 실리적인 접근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어떤 학자들에 의하면 이것은 황하 인근의 치수(治水)를 위해 발전한 실리추구형 문화로 보기도 한다. 장유유서(長幼有序)의 문화또한 급변하는 강의 물길을 잡기 위해 연장자의 경험을 우선시 하는 환경여건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사람의 육체가 죽은 후에도 영혼이 존재해 계속해서 산다는 생각이 자리하기 시작한 것은 약 4만년 전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생각의 발전은 우리의 뇌가 더욱 심화된 자기성찰과 시간의 추상화를 가능하게 하면서 강화된다. 호모 사피엔스의 발달하는 지능은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온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불안감을 일으켰다. 죽음에 대한 다양한 우회적 표현들이 인류의 다양한 언어들 속에 존재하는 까닭은 죽음에 대한 의미론적, 개념적 부정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과 자기 존재에 관한 기록 그리고 확장은 동굴벽화와 같은 기록의 형태로 등장한다. 이는 약 2만 년에 걸쳐 전세계적으로 현생 인류가 살고 있는 거의모든 곳에서 일어났다. 카스피해-흑해 인근 무른 현무암 지대에도 약 2만 년 전부터 기원전4천 년 경에 이르는 만 년 이상의 세월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암각화가 새겨진다. 지능의 발달과 그로 인한 자아인식 그리고 타인의 생각에 대한 인식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추상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생물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획득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을 발전시켜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죽음에 대한 부정을 가져왔다. 이것은 나에게 도래할 필연적 미래에 대한 부정이기도 했다. 풀러 토리는 인간이 자면서 꿈을 꾸는 것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과정을 통해 내세에 대한 믿음을 확립했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토지나 재산의 권리를 주장하는 당위성이 되는 조상과의 관계와 맞물려 조상숭배라는 형태로 발전한다.
조상 간의 위계, 현실 세계에 존재하기 시작한 위계는 신의 출현과 다양한 기능과 능력의 신들을 탄생시켰다. 친사회적 행동을 위한 당위성과 수많은 현상과 원인에 대한 기술 방법으로 선택된 신과 그에 대한 다양한 서사들은 종교라는 형식으로 그리고 이것은 사회라는 모습으로 발전해 나갔다.
토리 풀러는 사회의 규모가 커지는 원인 즉, 인구 증가의 원인을 농업혁명으로 보고 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농업혁명으로 인한 인구의 증가라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의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 James Scott 교수의 입장처럼 공동체 규모가 커짐에 따라 정치 조직이 강화되고 이를 통해 인구의 증가를 의도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인구의 증가는 농업혁명의 결과물이 아니라 죽는 것보다 많이 낳는 것을 통해 이루어졌다. 많은 문명들이 이러한 시도에 대한 도덕적 근거를 만들었다. 한 남성이 많은 여성을 통해 아이를 낳는 것을 권장한 사회들이 가장 흔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성벽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키기 위한 기능과 동시에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다시 정치 조직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실례로 정착과 농업을 통해 인구가 증가한 것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이것은 출생의 강제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가축과 마찬가지로 제한된 공간 안에서 더 잦은 성교를 통해 더 많은 번식을이룬 것이다. 실상은 옛날에는 수렵/채집 생활이 농경 생활보다 수확이 좋고 생존률이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농업혁명을 비롯한 각종 혁명을 통해 인류가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게 된 것은 정말 아주 최근의 일이다.
인구 규모의 확대를 일찍부터 이루었던 대표적인 지역은 이집트의 나일강 삼각주 지대다. 나일강 지대의 비옥한 토양은 기원전 9천년 경에 환경적으로 확립된 것으로 보고있다. 강의 범람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홍수와 같은 개념이 아니다. 강물이 땅을 경작해주고, 비옥한 토질을 만들며 하늘이 아닌 강으로부터 '비가 내리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이러한 이집트의 자연환경은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이집트 문명이 일찍부터 발달했던 까닭은 이러한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식량확보의 용이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일강의 남쪽 지역은 캐터랙트 cataracts 가 많은 얕은 급류지대가 대부분이다. 이 지역들은 당시기술로 만든 배를 이용해서 도하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급류지역이다. 사람들은 유역 인근으로 정착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지역간 이루어지는 다양한 교류는 문화적 유사성을 만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원전 9천년 경부터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면 기원전 4천년 경에 유역 전체가 하나의 사회로 보이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이집트는 역사적으로 다른 지역을 공격해 정복하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남쪽은 지형적으로 방어가 쉬웠으며, 동쪽은 심각한 위협이 없었다. 서쪽은 거대한 사막지대로 문명의 규모가 커질 수 없는 지역이었다. 이집트인들은 이러한 천혜의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남아도는 시간을 사후세계에 투자한 셈이다. 지역별로 사후세계의 심상과 죽음에 대한 태도는 문명이 처한 자연환경이 그대로 반영된다. 이는 비슷한 시기 발달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사후 세계관이 얼마나 다른지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된다. 피라미드와 같은 건축물, 수많은 벽화들 그리고 <이집트 사자의 서>와 같은 기록 등은 먹고 살만 했던 이집트인들의 낭만적인 사후 세계를 잘 보여준다.
자연환경, 정착생활, 거대해지는 문화규모, 정치조직 규모의 거대화, 도시국가화, 거대 국가화 등으로의 연결은 지고신 관념을 등장시킨다. 비교적 최근까지 유목민으로 생활했던 인도 아리안들의 지고신은 굉장히 추상적인 반면, 일찍부터 정착생활을 했던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매우 구체적이다. 눈 - 아툼 - 라와 같은 이집트나 안 - 아누 - 엔릴로 이어지는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아카드의 신들과 같이 태초의 상태, 창조신, 지고신은 매우 구체적이다. 다신교 체계는 유사한듯이 보이나 인도의 신들이 순수하게 기능적인 반면,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혹은 그리스의 신들은 매우 정치적이다. 인도아리안들의 신들이 이주에서 비롯된 다양한 변화를 반영한다면, 이집트와 같은 곳은 정착생활에서 비롯된 문명과 제도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추상관념의 의인화와 같은 것이다.
이렇듯, 국가제도와 강력한 신의 등장은 깊은 연관관계가 있다. 오늘날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이 광적으로 국가와 신의 뜻을 연관짓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관계가 깊을 것이다. 이루어야 할 정의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세력의 지배논리를 정당화 하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현대인들에게 정치란 종교와 다르지 않다. 정치는 종교에서 비롯되었으며, 종교는 정치를 해왔다.
종교적 관점은 여전히 매우 강력하며 우리가 세상을 단순화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고 우리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해준다는 점에서 우리 인간이 가진 지능의 특징과 잘 맞아 떨어져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오늘날까지도 인간의 정치는 종교적 특징을 강하게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적 방향성, 세력 등에 관한 문제는 곧바로 자신의 가치관과 도덕관념, 가족관과 인생관에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거대 규모의 정치는 이것에 호소하는 방식이었으며, 신은 곧 인간의 추상관념과 도덕관념을 통해서 일어난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 가치관에 '옳다'고 인정되는 어떠한 결론을 따르고, 반대되는 결론에 반대하는 것은 자신이 믿는 신의 뜻과 일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 같이 무지한, 사진하는 사람이 여러가지 의미로 전환기에 있는 우리 현재의 모습에서 이러한 고민을 한 번 쯤 해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가 곧 시대정신이 반영된 예술 표현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나는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가를 말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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