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Ted Chiang, 姜峯楠)은 잘 알려진 SF 작가로, 영화 <Arrival>의 원작 소설 <Story of your life>의 저자이기도 하다. 2021년 3월 30일, 경기도 모처에서 5시간 가량 긴 이야기를 나누고 인천으로 돌아왔다. 나는 평소 주변 도시에서 일정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라뱃길을 들러 잠시 산책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공항철도 계양역 인근 아라뱃길 수변은 서울, 김포, 고양 같은 주변 도시들에서 인천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에 들르기 좋은 동선이다. 긴 시간 운전하는 것보다는 그렇게 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는 생각 탓이다.
테드 창의 소설 <Tower of Babylon>은 'Vintage Books'의 2016년 편집판 단편모음집 처음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그는 29년 동안 중단편 소설 17개를 쓴 것이 발표된 작품의 전부이지만 이 작품들 대부분이 관련 분야 수상을 하는 등 그 가치를 여러 방면으로 인정받고 있다. 나는 존 H. 월튼 John H. Walton 의 창세기 1장을 연구한 책을 읽고 난 후에 테드 창의 <Tower of Babylon>을 읽은 상황이기 때문에 묘사되는 이미지들이 더 인상 깊게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소설 속에는 이러한 고대근동 사람들의 우주관을 반영한 이야기를 SF적으로 풀어가는 내용이 다뤄진다. 바로 '궁창 穹蒼'이다. 이는 히브리어 '라키아'의 번역어로 구약성경 전체를 통틀어 17회 등장한다. 창세기에는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테드 창의 소설은 이러한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이미저리에 충실한 구성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1990년에 발표되었고, 네뷸러 상을 수상한 정말 짧은 단편이다. 공간 묘사와 관련해 인간의 경험과 인식이 우주를 경험하는데 얼마나 부족하지를 절대신 야훼(Yahweh)에 대한 지속적인 언급과 주인공의 이름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이야기를 통해 암시해준다.
동아시아에도 천원지방(天圓地方)의 개념이 있다. 고대 문헌들에서는 이러한 묘사들이 여러번 등장한다. 고대근동 문물 또한 비슷한 묘사들이 많은 것이다. 하늘이 둥근 돔(dome) 같은 형태를 갖는다고 여긴 것은 유라시아 문명 전체에서 등장하는 공통적인 이미지가 아닌가 싶다. 다만 고대근동이나 인도유럽어 화자들은 꽤나 다층적인 우주의 구조를 상상했다.
하늘에 대한 세계관 반영을 통해 구약성경을 구성하는 문서들의 연대를 추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창세기의 내러티브가 하늘을 비인격적 피조물로 격하시키는, 제국의 지고신을 피조물로 다루는 전략을 선택한다. 고대근동 사람들이 복층으로 된 하늘을 상상했고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다층구조적 하늘 즉, 궁창보다 높은 신비로운 어딘가를 하나님의 처소로 상상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시편 26, 50, 89편에도 등장한다(John H. Walton).
반면 '하늘의 하나님'과 같이 '하늘의' 같은 수식어가 등장하는 것은 대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시기와 연관된다. 바빌론 유수 시기와 관계된 문서는 하늘을 하나님의 공간으로 소위 '밀어내기 전략'을 선택한다. 조금 삐딱하게 보자면 이스라엘 시골뜨기들이 제국문물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구약성경이 조로아스터교의 아류라는 접근은 엉터리라고 본다. 사실 비슷한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불의 이미지 같은 것들이나 다신교가 주류를 이루는 메소포타미아와 가나안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조로아스터교가 구약성경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배경에는 인도-이란어 관련 지식이 부족하고, 고대근동 문물에 대한 무지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인도의 베다와 이란의 아베스타에 관한 배경지식은 내가 2020년에 <Contemplative Contemplation>이라는 사진 연작을 구상하던 시점에 매우 구체적으로 참조했는데, 작품의 배경사를 동영상으로 제작해 두었다: youtu.be/lxe1VDhrWH8
베딕(Vedic)과 이란조어(Proto-Iranian) 문화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을 통해 더 많은 사례들을 취합하게 되면 구약성경과 아베스타의 비교는 별로 할 것이 없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공포 소설에 고양이가 등장하면 애드거 앨런 포 Edgar Allan Poe 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는 있지만 그의 아류라고 치부하는 것은 그만큼 무지한 것 뿐이다.
구약성경의 이야기들은 이집트와 수메르 내러티브 그리고 가나안 문물의 영향이 훨씬 크게 보인다. 제국 문물이라고하면 이집트의 <헤르모폴리스>, 아카드의 <에누마 엘리쉬>의 영향을 받은 경향이 되려 훨씬 크지만 이 또한 창세기 밖으로 나가면 그다지 크지 않다.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주고받는 시점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제국문물 수용시점에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인 접근이지 싶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하늘은 최고신을 묘사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여졌다. 수메르 문명 이후로 하늘신은 신들의 아버지로, 지고신으로 수용되는데 이후의 신화들은 대부분 하늘이라는 공간을 두고 주력 신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수메르에서는 '안 AN'이라는 이름으로 하늘신을 불렀다. 기원전 3000년 경의 파라 문서에서 처음 그 이름이 발견되며, 기원전 2200년경 최고신으로 언급된다. 우르 제 3왕조의 찬송시에서는 매우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연구되었다. 아카드 시대가 되면 '아누 ANU'로 발음되고 쐐기문자 상징도 조금 변화를 갖는다. 같은 심벌 symbol 을 다르게 발음하면 '神'을 가리키는 일반명사가 된다(주원준).
문화적 영향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당시 가나안 문물을 살펴보면 구약성경 속에는 가나안 지역 신화의 영향이 셀 수 없이 많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북방을 자폰(zaphon, צפון)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이러한 문화적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오늘날 정설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과 대면하고 계명을 받은 곳은 시내산이다. 시나이 반도 남쪽에 위치한 이 산은 백두산과 비슷한 높이이며 최근 이슈가 된 수에즈 운하가 닿아있는 반도다. 예루살렘을 기준으로 본다면 500km 가량 '남쪽 דרום(darόm)'에 있다. 오늘날 차량을 이용해 이동하면 6~7 시간 정도 걸린다.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터가 높고 아름다운' 야훼의 신성한 산을 묘사한다면 산의 위치는 '남쪽 דרום(darόm)'의 시내산을 언급하는 것이 지리적으로나 맥락적으로나 일치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날의 ‘시온산’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북방의 산’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충족시키는 산은 없다. 굳이 하나 억지스럽게 집어 넣자면 예루살렘 자체가 될 수는 있겠다. 성전이 위치한 예루살렘을 왜 굳이 “저 북방”이라고 골랐을까?
시편에는 '북방'의 산을 언급하며 찬송을 부르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이 바알 신화의 영향이다. 이러한 바알 신앙에 대한 경계와 부정이 바로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의 기록을 통해서 그렇게도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정책이 문그러한 신화들을 손봐서 자신들의 문헌 속에 집어 넣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어느 시대나 정치가 문제다.
어원적으로 보면 이 '자폰'이라는 말은 우가릿 신화에 등장하는 지고신 엘에 이어 '바알 Baal'의 신전을 가리키던 말이다(주원준). 우가릿 신화 속 풍우신 바알은 한손에는 몽둥이 같은 것을 한손에는 번개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구름과 바람 그리고 비와 천둥번개는 바알의 움직임과 관련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자폰'은 우가릿 신화 속 지고신 '엘 El'의 신전이었으며 그의 계보를 잇는 '바알 Baal'이 좌정하는 곳이다. 또한 바알의 상징동물은 '황소'로 오늘날 영어단어 bull의 어원으로 보기도 한다. 구약성경의 '엘 샤다이 אל שׁדי' 같은 표현은 오역되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오랜 기간 사용되었는데, 본래 의미를 따지면 '산의 하나님'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 또한 우주적 산에 살았다는 우가릿 지고신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은 표현이다(Michael D. Coogan & Mark S. Smith).
테드 창의 소설에서는 야훼 Yahweh 의 홍수 심판 이후 사람들이 타워 tower 를 만드는 이야기로 그려진다. 바빌론 사람들이 야훼의 홍수 심판으로 잔뜩 쫄아있던 모습이니 SF소설 속 내러티브적 도구들을 시대적 팩트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주인공은 4개월여를 올라야 도달하는 타워 끝에서 궁창(vault)을 만난다. 이 이야기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테드 창의 소설들은 시간과 공간에 관한 이야기들을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 구조 속에 아름답게 녹여낸다. 대학에서 물리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배경이 정교한 작업을 가능하게 하지 않나 싶다.
나에게 그의 소설은 매우 즐거운 인상을 남겨주었다. 한 시간 정도 수변 공간과 그 일대를 걸어 다니는 동안 높고 긴 물건(?)들만 보면 이야기의 이미지들이 떠오르며 재미있는 상상에 빠지곤 했다. 물과 홍수의 이미지들은 수변 공간 주변에서 즐기기에 충분한 상상들을 북돋워주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자주 시각화와 사진작업에 전환점이 되어 줄 때가 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 龍之介)의 라쇼몽(羅生門) 초반 생생하게 묘사되는 인물의 행동처럼 구체적인 묘사가 그러하다면, 테드 창의 소설처럼 상상 속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여 그러한 경우도 있다.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1년 이상의 시간, 간혹 이런 즐거운 상상과 주변 사물들을 바라보며 걷는 시간은 그 안에서 얻는 탈출구 혹은 소소한 기쁨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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