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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의불교(格義佛敎)를 돌아보다: 만일 노자 본인이었다면?

시간 여행

by Photographer Bhang 2022. 11. 1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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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노트 - <물의 감각> with 뮤직그룹 세움, 미디어아티스트 이민정

이 내용은 2022년 11월 22일 @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에서 열리는 <물의 감각> 공연 작품 제작을 위해 저와 뮤지션들, 미디어아티스트와의 대화 과정을 제가 지극히 개인적으로 다시 재조망하는 관점을 취하며 바라볼 때 떠올렸던 생각들을 적어본 것들입니다. 이것은 중국이 인도의 불교를 수용하던 초기 즉, 4세기 경 어째서 "격의"라는 결과물이 등장했는지를 통해 수용과 영향, 해석과 재해석의 문제를 고민하는 과정에 비춰보며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다른 장르간 교류를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은가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작품 자체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지 않지만 생각의 틀과 어떠한 관념적 왜곡이 발생하는 지점들을 짚어보는 과정을 통해 특별히 저 자신과 다녀가시는 분들이 앞으로 창작활동과 같은 생각의 재정립과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들어가며

2021년 여름, 나는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갤러리 ‘시소’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었다. 돌아보면 2013년 <The Soundscape> 이후 약 8년만에 갖는 나의 개인전이라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넣으려고 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는 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들을 통해 내 작품 세계를 다시 한 번 점검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더불어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은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기회였다.

 

2015년부터 뮤직그룹 세움 SE:UM 이라는 팀의 활동을 통해 교류를 하고 있는 가야금 연주자 이준 씨가 함께 활동하는 트럼페터 박종상 씨와 당시 전시장을 찾았다. 작품을 돌아보고 나에게 협업의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나는 당연히 흔쾌히 받아들였다. 팀의 활동을 오랜 기간 보아온 까닭도 있고, 나의 작품들이 다른 방법으로 표현되면 어떨까 싶은 호기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뮤직그룹 세움과 2022년 11월 22일 (화) 저녁 7시 30분부터 인천 중구에 위치한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에서 <물의 감각>이라는 제목으로 공연과 사진을 미디어아트를 통해 섞는다.

 

 

 

공의 감각(空의 感覺)

처음 내가 뮤직그룹 세움에 보낸 자료는 2021년 12월 중국 윈난성에서 전시를 가졌던 <순야타 空 suññatā>였다. 중국 전시를 할 때 <순야타 空 suññatā>라는 타이틀 전체를 적어보냈고, 이것이 반영되었는지 나의 작품 캡션에는 한글, 한문 그리고 로마나이즈 된 빠알리어 표기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문제는 이 주제 즉, <순야타 空 suññatā>가 창작 혹은 활동 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한 기획서를 만들기에 매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구체적인 것들’이 많이 필요한 서류 작업에서 <순야타 空 suññatā>는 그 개념설명과 그리고 그 개념이 정확히 <순야타 空 suññatā>를 가리킬 수 없다는 점, 또한 설명에 사용되는 표현들이 방편(方便 expedients)로 떨궈내야 한다는 점 등 제도적 장치 속에서 사용하기에는 문제가 많을 수 밖에 없었음을 고려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기획을 준비한 이들은 <감각의 순환>이라는 주제를 떠올렸고, 그것을 내 작품의 주된 소재인 ‘물’과 연결했다고 한다. 그렇게 <물의 감각>이라는 기획이 나왔고 그렇게 작품을 올리게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협업 과정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원동력인 동시에 문제인 이것을 두고 과거 인도로부터 전해진 불교가 중국에서 어떻게 ‘격의(格義)’로 나타났는지를 통해 재해석의 문제를 다뤄보고 싶어졌다. 인류역사에 그리 흔하지 않은 상당히 이질적인 두 생각을 융합하여 새로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낸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격의(格義): 버리고자 했던 것을 다시 줍다

붓다가 가졌던 굉장히 중요한 문제의식의 토대 하나는, 훗날 <금강경>이라는 경전으로 탄생하는 “개념이 사람을 둘러싸 괴롭게 한다”는 <맛지마니까야> 속 문장에 있다. 나는 이 문장의 빠알리어 텍스트를 포스터에 워터마크처럼 집어넣고자 했고, 이 문장은 <노자> 제 8장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上善若水”와 병치시켰다. 

 

“상선약수”와 <맛지마니까야>의 구절 병치 핵심에는 “空”의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이 있었다. 老子 8장에서 물[水]로 묘사되는 "위무위 爲無爲"의 형상은 곧 그것이 道에 가깝다는 것을 말해주고, 그렇기 때문에 다툼이 없어 허물이 없게 된다는 결론을 향해 간다. 그리고 "위무위 爲無爲"를 가능하게 하려면 본질, 본성과 같은 존재론적 관점과 유사해지는 "可道"의 사고방식은 "非常道"임을 알고 실상의 운동성을 이해하지 못한 닫힌 생각임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즉, 언어적 격리와 구분, 어떤 특정화와 개념화에 의해 대상을 정의하는 행위는 결국 '다툼'의 원인이 될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불교의 <空 suññatā>과 노자의 "물[水]"을 연결할 수 있는 접점이 생긴다. 法(dhamma, Dharma)은 모든 현상의 평등함이며, 발생하는 방법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갖는다. 그것들에 우선순위와 가치평가를 두는 것이 바로 중생(衆生)들의 삶이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음"이라는 연기(緣起)라는 法을 이해하고 있는 입장이라면 그러한 가치평가를 위해 다툼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것이 '涅槃'에 관한 가장 중요한 이해이며, 수많은 불교 초기경전들은 이것을 가리키고 있다. 

 

초기 경전보다 훨씬 후대에 성립하나, 독트린 논쟁에 빠져 개념화의 증대라는 잘못된 길로 빠져버린 불교의 길을 되찾아 가기 위한 운동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금강경>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多羅三三菩提, anuttara-samyak-sambodhi)의 가르침을 청하는 이가 '수보리(須菩提)'이며, 그를 가리키는 말이 바로 해공제일(解空第一) 즉, <空 suññatā>을 가장 깊이 깨우친 사람이다. 시대적으로 앞선 초기경전에서 붓다의 주된 제자들을 묘사할 때 이 '수보리'를 표현하는 다른 수식어는 무쟁삼매(無諍三昧)인데, <앙굿따라 니까야> 초반에 '수보리'로 음역하는 수부띠(Subhūti)를 "다툼이 없이 거하는 것에 있어 제일인 수부띠(araṇavihārīnaṃ yadidaṃ Subhūti - among those who dwell without conflict is Subhūti)로 언급하는 문장이 등장한다. 즉, 空에 대한 이해는 무쟁삼매(無諍三昧)로 나타난다. 

 

즉, 인도의 소위 일부 소승 전통과 위진현학 이후에 등장하는 4세기 중국의 철학의 흐름은 본래 붓다가 버리고자 했던 것 그리고 노자가 버리고자 했던 것을 다시 줍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수용과 영향, 재해석과 재창조 **

이처럼 어떠한 생각을 수용하고 해석할 때는 그러한 생각이 등장한 맥락을 가능한한 정확히 짚어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고전의 번역, 경전의 해석 등이 바로 이러한 맥락적 문제를 등한시하며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는 점을 간과하면 본래 그 내용이 만들어진 의도, 당대의 의미 등은 물론 내용 그 자체도 제대로 읽어내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경직성이 분명히 있는 기독교나 이슬람 같은 종교와는 달리 불교는 각자의 해석에 따른 분파가 엄청나게 많아졌다. 그리고 그 해석의 갈라짐의 중심에는 기독교처럼 해석과 실천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관념 그 자체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불교의 동아시아 전파

불교는 동아시아 문명에서 굉장히 큰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에서도 천 년이 넘는 세월을 자리했으며, 일본 열도에도 구석구석 스며있다. 대륙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수용자의 역할을 해야했던 중국 대륙을 중심으로 이 사건을 돌아보면 이것은 문명사에 전례없는 문화교류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 기원후 3세기 전후 -, 비슷한 '재해석'의 문제를 인도-유럽어권과 중국-티벳어권이 경험한다는 사실은 재미있다. 매우 다른 두 문화권은 분명 '다름'으로 설명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사고가 갖는 단계성이 함께 있으며, 그러한 단계성이 보여주는 각각의 '단계'가 갖는 비슷한 시기, 유사한 모습은 과연 '생각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다시금 갖게 만든다. 

 

헤브라이즘에 토대를 두는 그리스도교는 훗날 로마의 국교가 되는 근간에는 페르시아 - 알렉산드리아 - 로마로 이어지는 거의 천 년에 가까운 '인도-유럽어' 문명이 오늘날의 중동 지역을 지배했던 역사적 배경이 자리한다. 군사행동을 통한 정복과 제국의 성립, 제국의 통치 기구에 의한 시스템 도입은 당연히 그 언어와 문화를 동반한다. 동일한 어족의 사상적 기반은 수용하기 쉽다. 사고의 구조가 유사성을 띄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는 선악의 절대적인 이분법이 자리를 하고 있고, 헬레니즘의 존재론은 관념적 유무 개념이 있다.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은 자명한데, 어쩌면 이원론이나 일원론이냐 하는 문제로 아리안 유목민들은 한쪽은 페르시아로 한쪽은 인더스 강 유역으로 이주했는지도 모른다.

 

페르시아와 헬레니즘의 문화적 영향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수 백 년에 걸쳐 스며들었다. 종종 '히브리어'를 인용하는 '아람어'로 발신된 메시지를 '헬라어'로 기록한 복음서의 메시지는 이미 상당부분 유럽철학 즉, 헬레니즘의 색이 스며있다. 유럽 그리스도교는 매우 동떨어진 두 문명의 융합이라기보다 이미 유럽식 사고를 충분히 수용한 사람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의식적으로 또한 무의식적으로 만든 콘텐츠의 재해석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이를테면, 21세기 대한민국에는 미국문화와 영어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이 미국에 공급할 콘텐츠를 제작할 때 미국문화를 반영해 영어로 만드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2천 년 전 레반트 지역의 실질적인 통치자는 셈어 사용자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인도-유럽어'의 통치를 이미 5백 년 넘게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아시리아 이후로 고대 근동에서 널리 쓰이던 '아람어'가 셈어군에 속한다고 하지만 이미 인도-유럽식 사고방식은 구약성경 문체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이러한 영향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하늘의 하나님'과 같은 수식어는 부정할 수 없는 페르시아 문명의 영향이다.

 

이렇게 보면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에 공통 뿌리를 두고 있는 듯이 보이는 유럽의 그리스도교는 사실상 헤브라이즘이라는 토양에서 자라난 인도-유럽문명이라는 나무다. 이것이 불교의 동아시아 전파가 매우 결이 다른 사건임을 알 수 있는 한 가지 요인이다. 인도-유럽어 문명과 중국-티벳어 문명은 언어와 경전 문화가 전반적으로 다르다. 이 차이를 우선 고려해야 할 요소로 보아야 한다.

 

즉, 중국-티벳어권에서 불교를 수용하는 문제는 인도-유럽어권에서 그리스도교를 수용하는 문제와 상당히 다른 측면이 있다. 중국에서 불교를 수용하는 문제는 유럽에서 그리스도교를 수용하는 문제와 달리 '정치적 접촉면'이 거의 없이 일어난 일이다.

 

 

'노장'은 '노자'와 '장자'로 철저히 분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노장'을 하나도 묶는 관점은 사실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다. 학자 중에는 이것이 해방 후 한국사회에 유난히 깊게 남아있는 특이한 관점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김시천 교수의 연구를 그대로 옮겨와 이것을 설명하면, 그가 인용하는 Harold D. Roth의 연구에 근거해 '老莊'이라는 표현은 <회남자 淮南子>의 문장을 근거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는데, <회남자>에서는 노자를 42차례 직접 인용하고 있으나 <장자>는 단 한 차례만 등장한다는 것이다. <회남자> 집필 시점인 기원전 179~122년에는 <장자>는 아직 주류 콘텐츠가 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노장'은 위진 이후(post-Wei Chin) 학자들에 의해 주로 사용되는 관점이다. 노자와 장자를 같은 계열로 보는 것은 위진시대 인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경향이다. 그리고 위진현학의 <노자> 해석은 처음 <노자>의 문장들이 쓰여지던 시점과 상당히 차이가 있다.

 

위진현학 시대의 노자와 전국시대 이전 노자는 다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노자와 장자에 대한 이해는 주로 '위진현학', '펑유란'의 표현을 빌리면 '신도가 사상 Neo-Taoism'이다. 노자의 생몰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기원전 5백 년 경의 사람으로 추정해 볼 때, 기원후 226년에 태어난 '왕필'과의 시대적 차이는 자그마치 7백 년이다. 이는 두 사람 사이에 동일한 단어나 문장도 매우 다르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차이가 있음을 의미한다.

 

노자와 위진현학 사이에는 이미 전국시대의 '직하학', '황로학' 그리고 한나라 시대의 '경학'이라는 사상적 패러다임 혹은 담론의 중심점의 변화가 있다. 이런 맥락으로 추정해보면 이미 위진시대 현학자의 <노자> 해석은 본래의 의도와 상당한 거리감을 가지고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 한나라 말기 '황건적의 난'은 자신들이 '땅을 대표하는 세력'이라는 '오행설'을 당위성으로 내세운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제국 통치의 중점에 둘 학문으로는 사실 '도가'보다는 인간의 정체성과 본성을 향해가는 '유가'의 학문이 더 유용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러한 경향은 강해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다. 

 

 

노자는 우주론을 논하는 사상이 아니었다.

(나는 중국 학문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나의 素養 안에서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위진현학에서 그때까지의 '중국'을 구성하는 고민들이 그 모양을 잡는다면, '불교'라는 '인도'의 메시지가 중국에 들어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그때까지와는 매우 다른 사고방식을 낳게 된다. 사실 '격의'란 이 시점에 등장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왜냐하면, 그 사고방식은 노자와도 다르고, 계속해서 적어보는 직하, 황로, 경학, 현학과도 그 결이 매우 다르다. '격의'는 '노장'이라는 틀에 의한 불교 해석이 아니라 오히려 '인도-유럽식' 불교 해석에 가깝다. 즉, 중국적이지 않는 면이 크다. 되려 이것은 인도인이 해체하고자 했던 인도인 사고의 문제를 중국인이 인도인적 관점에서 수용한 셈이다.

 

때문에 '격의'를 이해하려면 여기서 불교의 출발과 인도-유럽식 사고라는 요소들을 중국인들이 어떻게 만들어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생긴다.

 

4세기의 사상적 변동은 불교의 유입이라는 사건을 통해 추친력을 받는다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역국가 화전(和田 Khotan) 지역의 문화 유입으로 <반야경>의 번역 시도가 중국 내에서 일어난다. 이것을 3세기 말의 사건으로 본다.

 

이러한 번역의 시도에서 중국인들이 사용한 언어가 오늘날 소위 '노장'이라 부르는 사고를 기술하는 언어 표현들이다. 이러한 시도는 약 반세기 후 '지둔(支遁, 314-366)'이라는 인물에 의해 정착된다. 지둔은 현학으로 분류할 수 있는 '곽상'과 매우 다른 관점으로 장자를 해석하기도 한다. '곽상'의 해석은 '道'라는 표현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노자와는 결이 매우 다르지만 중국적인 관점 즉, 絶對라는 관념이 자리하지 않은 사고를 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變化日新"이라는 표현은 '독화(獨化)'라는 말로 정리되는 "개별성"에 대한 그의 긍정을 '변화'라는 운동성과 더불어 생각해야 함을 말해준다. 왕필도 곽상도 '有無'를 논할 때는 노자와 매우 다른 관점을 이미 취한 것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인도-유럽식 절대 관념은 아니었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 안에서의 관념적 의미에서, 절대적 의미에서의 '有無'가 등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둔'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노자의 有無가 세상 속에 나타나는 어떠한 원리와 같은 '운동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위진현학의 有無는 인도-유럽식 관점에서 언어와 실재의 불일치 같은 문제나 관념의 문제라기 보다는 '道'에 대한 언어표현적 접근의 난해함을 논한 맥락에서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문자적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이해로 <장자> 천도편에 등장하는 '윤편'의 이야기 등을 통해서도, <하상공>의 주석을 통해서도 유사한 맥락을 확인할 수 있다. 왕필은 말 혹은 문자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은 상 image 을 통해 언어를, 언어를 통해 의미를 긍정하여 언어를 통해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둔'에 오게 되면 오늘날 우리에게 소위 철학적 담론으로 이해되는 '초자연', '진리'와 같은 것들이 나타난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인도-유럽식 절대 관념의 중국적 토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지둔은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의 오랜 전통적 사고인 '理'를 이해했고, 이것을 불교의 '法 dharma'와 동일시 한다. 

 

 

衆妙之門과 有無

有와 無는 관계성이며, 세계는 이러한 관계성의 운동성 위에 '일어난다.' 노자가 사용했을 법한 門의 맥락은 어떠한 근원(origin)을 의미한다고 읽기보다 어떠한 구분을 말하는 즉, 出入의 문제로 보는 것이 당대의 맥락에 더 어울린다. '근원적' 요인을 상정하는 것은 매우 후대에 일어났을 법한 접근이다. 서양에서도 3세기 이후에 소위 '신플라톤주의 Neoplatonism'이라는 것이 등장하여 플라톤의 철학을 일원론적으로 구축하는 시도가 일어나듯이, 노자의 철학도 3세기 현학에 와서 우주론이나 본성론의 옷을 입는다고 읽어야 하는 것이다.

 

직하 - 황로 - 한대 경학 - 위진현학 이후에나 등장하는 지둔의 '理' 관점에서 비롯되는 붓다의 '다르마 dharma, 法' 오독의 과정을 이렇게 풀어보면, 오히려 노자 당대의 관점, 노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다르마' 오독의 가능성이 훨씬 낮았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게 된다. 붓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설명하는 말로 '다르마 dharma'를 사용할 때 형이상학적인 어떠한 관념이 아닌 오히려 당대 인도철학이 가지고 있었던 소위 인도-유럽식 絶對에 대한 '중도적 입장'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중국학자 폴 드미에빌(Paul Demiéville)은 지둔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格義가 오히려 인도-유럽식 절대 관념에 가까워지는 해석을 가함과 동시에, 어쩌면 중국 사상사에서의 가장 오래된 논쟁인 可道의 논의의 불교적 형태가 頓悟/漸悟와 같은 논쟁을 촉발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인도의 경전전통에서 오히려 일반적인 <니까야>와 같은 초기경전들에 비해 대승초기 <반야경>의 간결하고 강렬한 특징이 중국인들의 경전전통과 '입맛'에 더 맞았음을 지적한다. 

 

여기에 더해,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이렇게 불교에 대한 소위 인도-유럽식 관념적 해석을 가했던 4세기 중국의 학자들은 산스크리트어를 몰랐다는 점을 지적하게 된다. 불교의 유입과 더불어 중국 내에서 인도-유럽식 관념들이 쏟아진 까닭은 당대까지 중국학문이 개념의 증대를 이루며 일어난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우주적 일자(一者)의 상정과 이 일자로부터 기원하는 3원리에 의한 세상을 그려낸 '신플라톤주의'가 본래 플라톤이 생각했던 일종의 '이원론'과 다른 생각을 내놓으며 퍼져나간 것은 3세기 경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당시 고대 그리스의 여러 학파들의 논쟁을 하나의 사상으로 통합하려는 시도였다. 이것은 도가와 유가의 통합을 시도한 위진현학의 시도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지리적으로 동떨어진 각 지역에서 이렇듯 유사한 흐름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혹자는 신비적인 해석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생각은 계단처럼 단계를 밟아 특이점에 도달한다는 현실을 염두하고 있다면 이러한 정황들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인간의 '창의성' 혹은 '창조성'에 대한 신비주의적인 오해가 무지한 해석을 낳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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