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이야기에서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시스템이 자리를 잡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자주 간과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 대부분이 단일한 기원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원이 되는 요인은 복합적이고 상호적이다.
로마가 서방 세계의 패권을 장악할 무렵에는 이미 수많은 문명들의 명멸이 있었던 시기다. 이는 두 가지 문제로 인하여 간과되었던 사실이다. 하나는 서유럽 문명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문화 유산의 계승과 그들이 계몽하는 세계에 대한 환상이다. 다른 하나는 기원전 6세기 이전의 세계에 대한 무지다. 후자의 경우 18세기 말 그 불씨가 생겨나 현재까지 상당한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20년전 미국의 SF 시리즈인 스타게이트 Stargate SG-1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란티안 Lantean’의 존재는 바로 이러한 두 가지 문제점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을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전형적인 서구 문명 중심 사고방식과 기원전 6세기 이전 세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설정이다.
스타게이트 SG-1 시리즈는 고도로 발달했던 은하 고대인들의 문명이 스타게이트라는 인프라스트럭처를 건설했다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 이들 고대인들의 종족 이름은 ‘란티안’이다. 이들의 문화는 고대 로마 문명의 근간이 되는 것처럼 설정되어 있다. 언어 자체도 라틴어의 형태와 유사한 점이 많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고대 로마 제국이 정말 ‘하늘에서 떨어진’ 선진문물이었다는 그들의 환상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고대 로마의 달력이 8일 시스템에서 7일 시스템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주일 7일 시스템은 로마가 세계화 시켰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으나 그것이 로마인들이 만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수메르인들에게 7은 기묘한 숫자였고,
기원전 26세기경부터는 7의 신비화가 반영된 문헌들이 발견된다.
7은 고대 수메르 시대에서부터 상징적인 숫자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매우 신비로운 숫자였다. 고대 수메르는 60진법을 사용했던 문명이다. 60은 12개의 숫자를 인수로 갖는다. 60을 소인수 분해하여 약수를 나열하면 1, 2, 3, 4, 5, 6까지 연속되다가 10, 12, 15, 20, 30, 60으로 뛰어넘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숫자들은 고대근동의 수비문학에서 상당히 자주 등장하는 숫자들이다. 30배 60배 같은 표현, 7일을 주기로 하는 시스템, 12를 완전수로 보는 것, 10을 정리된 숫자로 보는 것 등등이 그렇다. 수메르인들에게 7은 기묘한 숫자였고, 기원전 26세기경부터는 7의 신비화가 반영된 문헌들이 발견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이후 아카드, 아시리아, 바빌론 등으로 스며들었다. 수메르인들에 의해 이미 7일 시스템에 대한 기초가 세워져 있었고, 초창기에는 아눈나키의 가장 큰 7신의 이름으로 날의 이름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각각 하늘, 땅, 산, 바람, 달, 금성, 태양을 상징하는 신들이다. 메소포타미아의 북서 지역과 달리 남부 지역은 태양보다 달이 더 큰 존재로 이해되었다.
그리스/로마 소위 ‘그레꼬로만’이라 불리우는 전통과 관련해 서양인들은 상당히 컴플렉스를 드러낸다. 그리스/ 로마 문명의 후발성과 그들이 얼마나 많은 이전 문화들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이야기하면 한중간, 한일간 역사 견해 충돌 못지않은 그들의 흥분(!)을 경험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역사학자 헨킨 David Henkin 교수가 자문한 한 호주 매체의 아티클을 보아도 이것은 꽤 명백히 드러난다. 로마 달력이 바빌론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얼버무리며 부정하지만 로마는 그전에는 8일 시스템을 썼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눈나키 7신의 이름은 아카드, 아시리아, 바빌론 등을 통해 메소포타미아 지역 전반에 스며든다. 기원전 20세기 경 성립한 ‘고바빌론’은 일년을 7일 주기의 일주일로 나누어 쓰는 시스템을 사용했다. 이스라엘 구약성경의 7일 시스템을 생각하기 이전에 알아야 하는 것은 ‘바빌론’이라는 이름이 붙는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국가는 아무르인에 의해 세워진 고 바빌론과 칼데아인들이 세운 신 바빌론이 있다는 사실이다. 고 바빌론이 기원전 20세기 경 형성되어 기원전 18세기 저 유명한 ‘함무라비’가 집권한 시대를 이야기한다면, 신 바빌론은 그보다 1200년 정도 뒤인 기원전 626년에 성립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는 바로 이 신 바빌론의 왕이다.
이것이 구약성경의 7일 시스템을 보기 이전에 중요한 역사적 상황인 이유는 이것이다. 구약성경의 7일 시스템 구조는 바빌론이 그들의 주신 ‘마르둑’의 신권을 주장하기 위한 신학적 방법론과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제기되어 서방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 프레드리히 델리취 Friedrich Delitzsch 의 저 유명한 ‘비벨-바벨 논쟁’이다.
마르둑의 이름은 너무나 유명한 문서들 속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하나는 저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 The Hammurabi Code 에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신바빌론으로부터 해방시킨 페르시아의 키루스(바사 왕 고레스) 헌장 The Cyrus Cylinder 에서 등장한다.
마르둑의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 마르둑이 중요한 까닭은 고대 근동 세계 문명사의 아주 긴 시간 주신으로 군림하였기 때문이다. 이 이름이 생소한 까닭은 일단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헌에서 이 이름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바알’과 같은 신이 자주 언급되는 것과 달리 ‘마르둑’의 이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다.
단 한 번, 예레미야서에서 등장할 뿐이다.
너희는 나라들 가운데에 전파하라 공포하라 깃발을 세우라 숨김이 없이 공포하여 이르라 바벨론이 함락되고 벨이 수치를 당하며 ‘므로닥’이 부스러지며 그 신상들은 수치를 당하며 우상들은 부스러진다 하라 - 예레미야 50:2
시대적 상황으로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알’을 언급하며 공격하는 것과 달리 ‘마르둑’의 이름을 언급하며 공격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일이 언급하며 적대시 하는 ‘바알’의 경우와 달리 ‘마르둑’은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그 이야기를 모티프로 변경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만큼 ‘마르둑’은 당시 큰 왕권의 상징이었다. 예레미야 50장 2절에 등장하는 '벨'과 '므로닥'의 병치는 바빌론의 주신 '마르둑(므로닥)'이 이어받은 호칭과의 병치다. 일반적으로 히브리어 '벨'은 아카드어와 수메르어에서 유입된 표현으로 '군주(lord)'를 의미한다. 이 '벨'(벨룸)이라는 호칭은 마르둑이 수메르 시대부터 바람과 땅의 신으로 섬겨졌던 '엔릴'로 부터 이어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이 '벨'은 바빌론계 신들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전통에 의해 만들어진 레반트 지역의 신이 '바알'이라고 보는 견해는 많다. 바빌론계 신을 통칭하는 이름에서 '바알'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다. 마르둑 이름의 어원이 "태양의 황소"라는 어원 즉, "우투(수메르 태양신)의 아들"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바알'의 상징 또한 황소다.
이처럼 마르둑은 고 바빌론 시대부터 주신으로 군림한 신 답계 주변국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역사적 사실에 비하여 이스라엘의 <구악성경>에서 그 빈도가 너무 낮거나 우회적으로 표현되기에 쐐기문자 해독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마르둑의 이름은 너무나 유명한 문서들 속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점에서도 그 영향력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하나는 저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 The Hammurabi Code 에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신바빌론으로부터 해방시킨 페르시아의 키루스(바사 왕 고레스) 헌장 The Cyrus Cylinder 에서 등장한다. 두 문서 모두 구약성경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하나는 법전에 등장하는 표현을 그대 수용할 정도였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의 시대적 배경사가 되기 때문이다.
<에누마 엘리쉬>는 바빌론의 경전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주신 ‘마르둑’ 왕권을 주장하기 위한 새로운 신학이었던 것인데,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마르둑은 아눈나키 7신과 같이 소위 오랜 정통 계보에 있는 신이 아니었다. 고 바빌론이 성립하는 기원전 20세기에는 이미 수많은 신들이 도시국가의 수호자로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이전 신들의 이름을 지워버리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국가가 들어서고 그들의 지배권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는 신들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에누마 엘리쉬>를 통해 바빌론의 신 마르둑은 왕권을 상징하는 신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부분은 <에누마 엘리쉬>가 창조신화를 포함하는 마르둑의 왕권 신학을 위한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마르둑이 만드는 것은 없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맥락적 사실이다. 맥락을 보면 마르눅은 메소타미아인들에게 아주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하늘의 신 '안'(아누)로부터 왕권을 부여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에누마 엘리쉬>보다 시대적으로 훨씬 앞서는 수메르의 문서에서는 바람과 땅의 신인 ‘엔릴’이 언급된다.
헬레니즘 이전 시대의 사람들 특히, 셈어를 사용하는 문화에서 나타나는 것과 본질적인 것을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은 찾아보기 힘들다. 창조는 물질적 구축이 아니라 기능과 질서 즉, 신의 권능이 나타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했다. ‘존 월튼’은 물질적 존재론이 삶의 의미에 대해 어떤 이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오히려 기능적으로 바라보는 존재론이 이 땅에 살아있는 인간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휘튼 대학의 구약학 교수 존 H. 월튼 John H. Walton 은 고대 근동세계의 신들의 역할과 창조를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물리적, 존재론적 논의가 아니라 인과관계와 목적성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과관계는 신들에 의해 발생하고 이는 물리적인 자연계의 근간으로 이해되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적 특징과 관계 없이 신들의 목적성이 더 중요하게 되는 당시 고대 근동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들은 고대 중국이 ‘천명 天命’이라는 사고방식을 두고 점차 인간이 그것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하고 발전시킨 것과도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사람들은 그러한 당위성을 ‘신’의 섭리로 설명하고 이해했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7일을 주기로 하는 일주일 시스템은 매우 인공적인 것으로 이는 천문현상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점을 통해 이는 매우 인위적인 시간 분할이며 전적으로 문명의 산물임을 설명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7일 체계는 아무래도 구약성경의 영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이러한 설명을 이어가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관념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다양한 문화들에 대한 수용이었음을 언급한다. 특히 바빌론이 1년을 나누는 방법으로 7일 일주일 체계를 사용했다는 점과 이것을 이스라엘의 방식으로 수용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성경은 기존의 7일 시스템을 역이용한 경우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아눈나키 7신인 안, 엔릴, 엔키, 닌후르삭, 난나, 우투, 인안나(이시타르)의 이름에서 기원한 일주일 시스템은 아카드, 아시리아, 바빌론 등을 거쳐 이미 정착된 것으로 본다. 여기에서 신들의 이름을 모두 지우고 날에 숫자만 남겨 우상숭배를 근절했다고 볼 수 있다.
바빌론의 경우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과 태양 그리고 달을 이용해 일주일에 이름을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방식이 로마로 수용되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많이 알려진 관점이다. 왜냐하면 꽤 오랜 시간 동안 로마는 8일을 주기로 사용했고 7일 시스템 정착 이후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일요일이 처음으로 오는 달력의 사용이 시작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인도-이란어 사용자들인 페르시아인들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물론 광범위하게 그들의 지배권을 갖게 되는 시기가 되면 날짜에 관한 국제 교류가 실질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을 것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역시 페르시아 문물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페르시아는 당시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다양한 민족들이 자기 문화를 유지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것이 신 바빌론의 정책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키루스 2세(바사 왕 고레스)의 정책은 일종의 관용책이었다.
인도-이란어 사용자들은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지역인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초원 지대에서 퍼져나간 인도-유럽어 화자 그룹의 일부다. 이들이 오늘날의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접경지대인 아르카임 등에 남긴 유적을 보면 투창을 이용한 전차 사용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고학자 데이비드 앤서니 David Anthony 는 이 ‘신타시타 문화’가 인류 역사상 가장 초기 전투를 위해 전차를 만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오늘날의 이란 지역에 정착했고 일부는 인도 북부에 정착했다.
키루스 2세가 키루스 헌장을 반포할 때에도 ‘마르둑’의 이름이 등장한다. 신 바빌론은 이제 막 무너졌다. 페르시아는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수용했다고 전해진다. 뿌리를 보면 북방 이주민들이지만 이들은 이미 메포소타미아 지역의 광범위한 문물을 오랜 세월에 걸쳐 흡수했다. 이러한 족적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이 시리아 지역에서 더 오래 전에 사용되었다는 점 등을 통해 알 수 있기도 하다. 훗날 페르시아의 제국화와 더불어 이들도 새로운 신학을 성립시킨다. 잘 알려진 ‘아후라 마즈다’를 주신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헬레니즘의 유입으로 소위 고대 근동 세계의 문물이 오늘날과 연관성을 갖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기원이라는 것은 문화적으로 사회화를 거치지 않고 어떠한 사회적 시스템으로 정착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오랜 세월 많은 정보와 문화를 축적한 오늘날에는 단 번에 단일한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이 가능하지만 과거로 갈수록 그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문화교류의 기틀과 유럽으로부터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문화교류가 가능했던 것은 인도-유럽어 화자들의 문화가 폭넓게 자리한 시대적 상황이 바탕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고대 페르시아와 고대 그리스의 언어는 어족이 같고 조상 언어가 같기 때문이다.
숫자 7에 대한 신비주의적 접근의 역사는 이미 5천년이 넘는다.
로마가 잘 만져서 보급했다면 몰라도 로마가 그것을 만들었다는 주장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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