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는 “한국 불자들은 『반야심경』을 입으로만 암송하지 말고 그 의미를 새기며 독송해야 한다”며 “반야심경의 내용을 알려면 『입중론』과 『중론』의 내용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 달라이 라마 “불교 사상·논리학에도 관심 가져야” -
불광미디어 http://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661
실상은 ‘공(空)’에 관한 이해는 중론에 그 토대가 있으며, ‘공(空)’은 철저하게 인간 언어에 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고대 근동의 창조에 관한 문헌들이 존재론적 이해가 아닌 기능론적 이해를 하는 것처럼, ‘공(空)’이라는 것 또한 자연계의 물리적 현상을 말하는 기술하는 방식이 아닌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토대에 관한 부분이 훨씬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한 결론을 내어버리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용수(龍樹, Nāgārjuna)로 대표되는 중관학파는 세월이 흐른 (기원후) 6, 7세기 경이 되면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와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로의 양분되는데, 이는 <중론>에 관한 해석의 문제에 비롯된 것이고, 그만큼 하나의 결론을 낸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많은 접근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중론을 어떻게 설명하는가의 문제에서 두 개의 관점이 생긴 것이다. 이것은 초기 불교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등장했다.
중관학파 뿐만 아니라 유가행파(瑜伽行派, Yogācāra) 또한 등장한다. ‘용수’가 아비다르마(阿毘達磨)에 비판적 입장이었다면, 유가행파의 무착(無着, Asaga)은 수용적 입장이라고 분리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비다르마, 유가행파와 같은 학파들의 관점에는 꽤나 일관된 ‘프레임’이 있다.
나는 일개 사진작가로 불교학자적 관점에서 이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진의 핵심은 개념의 영상화에 있다. 조형적 접근은 이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불교에 대해 공부하는 이유의 핵심은 바로 인간 사유의 가장 중요한 도구인 ‘언어’에 관한 고민에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비다르마와 유가행파의 일관된 프레임은 ‘붓다’의 가르침보다는 ‘인도의 논리학에 뿌리를 둔 접근 방법’이라는 결론으로 가게 된다: 나는 '유가행파'의 접근은 극단적으로 말해 (시대적으로 표현에 문제가 좀 있지만) 힌두교적 관점이라고 본다. 즉, <베다>와 <우파니샤드>를 만든 인도아리안들의 사고의 틀을 다시 수용한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실체적 분할과 '아뢰야식'과 같은 접근은 윤회의 긍정과 존재론적 이분법을 일으킨다.
나의 입장은 중관사상을 따른다. 내가 보기에는 ‘공(空)’을 설명하는 방식에 있어서 유가행파는 오히려 무한소급(無限遡及)의 프로세스에 빠진다. 물리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가분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현실인데, 만일 세상을 존재론적 입장으로 보게 되면 논리적 방법인 무한소급에 대한 긍정을 일으킬 오류가 수반된다. 즉, 사물을 무한분할 하다보면 결국 '방분'이 있는 '극미'를 무한반복적으로 분할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이야 말로 색(rupa)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프로세스를 도출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가분성의 한계가 존재한다고 보는 이 세상을 일종의 거대한 환상으로 취급할 위험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빠지기 시작하면 정말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세상은 꿈이 아니다. 나의 꿈이 꿈이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그 꿈을 꾸게하는 것이 세상이다. 인간은 자기중심적 관점에 빠져 반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내가 죽어도 돌아간다. 돌아가는 것은 세상이고 멈추는 것은 나라는 사건이다. 이것에 대한 부정이 결국 총체적 오류 즉, 세상에 대한 이해를 어긋나게 만드는 것이다.
"大聖說空法 爲離諸見故 若復見有空 諸佛所不化”.
현대적으로 이해해보면, 깨달은 이는 형이상학적 접근을 허망한 것으로 보았고 이를 가르쳤으나 만일 누군가 그 허망함 즉, 공 자체에 빠져 세상을 보게 되면 그것이야 말로 치유되지 않는 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공(空)’적 접근을 위해 현대의 불교학자들은 ‘언어적 다원성’이나 ‘형이상학’ 같은 서양 철학 용어를 활용한다. 나는 이것이 ‘공(空)’의 신비화를 막아주는 매우 적절한 장치라는 생각이 든다. 어렵기는 하지만 ‘공(空)’의 ‘이해’는 언어적으로 가능하며 이는 곧 명제적 게슈탈트(propositional gestalt) 즉, 구조적으로 확립된 언어 명제로 정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의 난해함과 균형을 잡기 어려운 측면 등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쓸데없이 많은 부분을 불가지(不可知) 영역에 남겨둔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께서 강조하신 것처럼 우리가 ‘논리학’적 관심을 가져보면 ‘공(空)’의 신비는 앎으로 다가와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게 된다고 확신한다. ‘용수’의 <중론>을 자세히 읽다보면 그가 상당히 많은 ‘비판적 접근’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바로 당시(기원후 2, 3세기 경)의 인도의 상황과 관련된다.
인도의 북부는 북방계 유목민 이주민들이 이미 기원전 1,500년 경부터 자리를 잡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학자들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붓다의 활동시기 그리고 거기에서 몇 백 년을 더 지나는 용수의 활동시기가 되면 이미 정착 후 천 년도 더 지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북방계 유목민들은 러시아의 카자흐스탄 접경지대 신타시타 문화로 추정되는 곳에서 출발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조상은 이륜전차의 개발자들이며,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문화 성립에 영향을 주고 받는 이들이다. 신타시타 문화 유적의 조사를 통해 <리그베다> 제식의 원시적 형태를 발견해내고 있다.
<리그베다>의 신들이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지역은 오늘날의 ‘시리아’ 쪽이다. 이들의 기나긴 이주 경로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오늘날 이들의 언어 즉, 인도-이란어 계통의 언어들을 연구해보고 그 음운 변화를 찾아보면 정말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 수 있다: https://bhangyoungmoon.tistory.com/16
“그렇다면 언어란 무엇인가? 언어는 어떠한 특정한 사태를 즉물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즉물적 지사(指事)는 말의 요소가 될 수 없다. 말의 요소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것”, “저것”이라는 시공의 즉물적 사태로부터 추상되어 그 카테고리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태를 보편적으로 지시하는 개념(concept)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김용옥
언어는 사고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즉, 화자가 사용하는 언어의 구조적 형태가 사고의 형태에 영향을 준다. 아니, 서로 주고 받는 것이 맞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 문명의 고등수학적 사고는 그리스어가 인도-유럽어족의 언어이며 때문에 주부/ 술부가 분명하게 나누어지는 항진명제적 형태를 띄는 것과 관계가 깊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이다. 존경하는 김용옥 교수의 문장을 인용한 것도 이러한 관점을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기에 그러한 것인데, 언어의 구조적으로 본다면 불교의 기본 또한 인도-유럽어족에 있다는 것을 짚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붓다’가 무엇을 혁명하고자 했는지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된다. 추정되는 붓다의 언어는 ‘마가다어’다. 그 또한 인도-유럽어족 화자였으며, 언어가 만들어 내는 세계 즉, 인간인식의 틀과 그 세계가 얼마나 인간에게 많은 해악이 되는지를 누구보다 깊게 이해한 인물이었다. 그는 세상을 존재론적으로 파악하고 개념을 통해 주어지는 불변의 심상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이해했다. 모든 것은 움직이나 나의 언어적 세계는 고정되려고 하는 것이다. ‘나’라는 별개의 존재가 상정되면 당연히 세상은 ‘환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나’는 복합적이고, 관계적인 네트워크 상의 일시적 현상이다. 이것은 네트워크 구성요소의 변화와 함께 같이 변화해 나간다. 즉, 태어나고, 성장하며, 늙고 또한 죽는다. 나는 붓다의 혁명 대상은 분명 인간이 구축한 개념적 세계라는 허망한 세계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또 반대로 보기 시작했다. 즉, 우리가 구축한 개념적 세계가 실체이며 우리가 현실이라 믿는 이 세계는 환상이라고 철썩같이 믿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말했고, 인도아리안들은 ‘아트만과 브라흐만’을 이야기 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현상세계(empirical world)가 허망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언어가 만든 환상을 실체로 받아들이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동아시아 문명에 비해 유럽과 인도 문명이 이러한 경향을 더 크게 보여주는 까닭은 분명 그들의 언어적 구조와 거기에서 발전해 나가는 그들의 사유에 있을 것이다.
‘용수’의 입장이 되어보자면, 나는 용수가 최소 2개 언어 화자라는 점에 먼저 집중할 것 같다. 그는 남인도 출신이다. 지금도 ‘첸나이’ 같은 도시에 가보면 여러 언어가 병기되어 있다. 드라비다어족의 타밀어를 주로 사용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그렇다. 인도는 1,600개의 언어가 현재도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22개 언어를 국가가 공인해서 사용하는데, 우리가 ‘인도’라는 국가를 생각할 때는 그들이 최근까지 500개가 넘는 토후국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일찍부터 중앙집권화에 성공한 한반도 문명은 단일국가에 매우 익숙하다. 그런 이유로 세상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 것인데, 전형적인 촌구석 기질이다. 인류 문명은 대부분이 2개 언어 생활이다. 수메르 이후 등장한 아카드도 수메르어를 대폭 수용해 문명을 유지했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 시대에는 수많은 언어들이 병기되었다. 우리 또한 조선시대에 중국의 언어를 함께 사용했으며, 영어에 불어가 어원이 많은 까닭도 영국인들이 행정에는 불어를 생활에는 영어를 사용했던 흔적에서 비롯된다.
용수는 수 백 페이지에 달하는 기나긴 산스크리트어 챈팅을 암송해야 하는 인도아리안 사제가 아니었다. 마가다어로 말해진 불교의 메시지는 팔리어로 전승되었다가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내려온 쿠샨 왕조 때 산스크리트어로 재전승의 과정을 겪는다. 용수가 활동했던 시대가 되면 팔리어 전승과 산스크리트어 전승이 함께 공존하던 시점일 것이다.
용수의 출신지역을 고려해 그가 드라비다어 화자라고 가정한다면, 그가 배운 불교의 메시지를 통해 그는 20세기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과 비슷한 입장이 될 수 있다. 즉, 그리스 철학에 대한 조금 더 객관적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설일체유부’와 같은 초기 불교 학파들의 ‘개념’에 있어서 ‘무상’함은 기본적으로 ‘순간성’으로 이해되었다. 이들은 이것을 상호작용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설일체유부처럼 시간변화 추이와 순간성 개념 같은 것들로 무상성을 설명하려는 것은 결국 본질과 현상을 양분하는 인도-유럽어 화자의 욕구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주부-술부 양분화가 가장 극명한 것은 분명 인도-유럽어족에서 보여지지만, 이것은 인간 언어가 가진 공통점이기도 하다. 최근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마이클 토마셀로(Michael Tomasello)는 그의 30여년 연구 집대성을 정리해 발표하였다.
인간 언어의 발생은 그 자체로 사회적 산물이다. 김용옥 교수는 ‘즉물적 지사(指事)’로는 언어의 요소가 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여기 재미있는 것이 있다. ‘지사’란 손으로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마이클 토마셀로의 설득력 있는 연구를 통해 ‘지사’가 언어 구축과 주부 술부 성립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대입해보면, 즉물적 지사야 말로 언어의 뿌리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누군가 어떤 사물을 손으로 가리켜 ‘설명’하려고 하고 싶다고 하자. 그러나 아직 언어라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이 행동 자체가 말하는 것은 나와 타자가 ‘다른 관점’을 가졌음을 이해한 단계다. 이것은 언어 발생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이는 진화생물학적으로 볼 때 초기 인류가 상황이나 사물을 타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즉, 관점의 이행이 가능해졌음을 말해준다. 관점의 교환을 통해서 하나의 동일한 세계를 다른 사회적 관점을 통해 동시적으로 경험할 수 있으며, 이는 곧 ‘나’라는 한정된 관점에서 ‘객관’을 분리하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상징 제스처 즉, 바디랭귀지는 물리적인 수단으로서의 행동 즉, 타자를 위협하거나 구애하는 본능적 행동이 아니다. 이것은 나의 행위가 상징하는 개념화의 단계로 들어가는 것인데, 즉, ‘행동’이라는 공간적, 물리적 수단을 그 행동으로부터 ‘격리’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이는 음성언어보다 지사(指事)가 더욱 근본적인 언어의 단계라는 것이며, 바디랭귀지는 55%, 목소리는 38%, 말의 내용은 7%만 작용한다는 메라비언의 법칙(The Law of Mehrabian)의 법칙이 왜 성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매우 중요한 역사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즉, 공유 가능한 ‘지사’는 언어의 초기 단계이며, 이는 배경지식과 새로운 정보를 조합하는 과정인데, 이를 통해 주체자와 설명대상, 어떠한 행위들을 분리해내야 한다. 즉, 주부와 술부가 나눠지는 것이다. 언어란 ‘타자성’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했으며, 타자성에 대한 이해를 통한 관점의 이동이 그 핵심이다.
즉, 이 가설은 언어는 ‘무리(집단)’와 ‘뇌발달’의 오랜 인터액션(interaction)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관점이다.
인간 사상의 발달에서도 이러한 프로세스는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만일 ‘용수’가 북인도 출신이었다면 중관사상의 발달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붓다’가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칸치푸람 출신인 ‘달마’ 또한 드라비다어족 생활권에서의 출발이 그가 소위 ‘선종’을 전파하는 기반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용수의 <중론> 속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언어적 접근에서 비롯된 오류에 대한 ‘논리적 비판’이다. 이것은 당시 인도 논리학에서 매우 유행하던 관점들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을 보면 헬레니즘이 겪었던 상황과 참 유사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든다.
당대 인도 논리학은 실재를 파악하는 방식, 범주에 의해 존재를 구분하고 분석하는 방식인 ‘기체(其體)’적 사유를 했고(가츠라 쇼류), 이러한 방법은 설일체유부도 사용했다. 다만 설일체유부는 법(dharma)이 속하는 기체가 실재한다고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약간의 체계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인 개념들과 대응 개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초기불교 승단’의 일관된 오류는 바로 인도-유럽어족의 사고 관념의 틀이 가져오는 아니, 인간 언어가 일으키는 문제로 다시 빠져들어갔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용수’의 중관논리는 이러한 부분을 일관되게 교정하려 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을 사람들이 쉽게 입에 암송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이 <반야심경>인 것이다.
나는 일개 사진작가로 언어에 대한 고민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입장에 있다. 왜냐하면, 사진이라는 매체 그리고 거기에서 가능한 예술 자체가 ‘개념적’이기 때문이다. 빌렘 플루서 Vilém Flusser 와 같은 학자는 사진을 가리켜 ‘개념이 이미지가 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회화와 달리 사진은 개념과 재인식이 매우 중요한 이해의 요소가 된다. 그러나 사진 이후, 특히 디지털과 다양한 기술의 보편화로 이 조차도 그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는 듯 하다.
이러한 상황을 맞아 언어에 대해 고민해보고, 인류의 다양한 유산들과 우리 문화의 배경이 되는 생각들에 대해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 않은가 싶다. 때문에 언어에 관한 고민 그리고 그것을 글로 정리해보는 과정은 몇 차례 더 진행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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