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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크라(चक्र)의 기원과 아리안 유목민 전차부대

생각의 기원

by Photographer Bhang 2021. 4. 1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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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크라(Sanskrit: चक्र, IAST: cakra)의 어원은 기원전 천 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니, 기원전 2천 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더 정확한 뿌리를 알 수 있다. 차크라는 오늘날 러시아 서남부 지역에서 시작된 말이다.

 


긴글 요약

차크라의 기원은 우랄 산맥 남부 ‘신타슈타 문화’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현재 러시아에 있는 아르카임 유적이 당시 문화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으며, 이것은 초기 인도-아리안 문화의 시발점으로 여겨진다. 리그베다의 제식과 유사한 제식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이 지역은 피노-우그리아어 사용자들과 적대 관계에 있었다. 피노-우그리아어 사용자들에게 ‘아리안’의 어원이 어원이 되는 말은 ‘노예’라는 의미와 연관된다. 잦은 전투가 전술의 발전을 불러왔고 고속 주행이 가능한 전차가 개발되었다. 고고학자 데이비드 앤서니는 당시 무기는 ‘투창’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바로 이 말이 끄는 고속 주행 이륜 전차의 바퀴에서 ‘차크라’라는 말이 나왔다.

 

이들 중 상당수가 남쪽으로 이주하는 원인으로 당시 ‘기후변화’를 가장 큰 이유로 보고 있다. 중앙아시아 BMAC 지역은 물론, 시리아 지역에 미타니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오늘날의 이란 지역에 정착해 지배세력으로 부상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지역에 자리한 이란의 언어가 특이하게 셈어족이 아닌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북방에서 이주해 온 유목민들의 자손들이었다. 그러나 이란에 정착되는 조로아스터교에는 그 이전 이 지역에서 발원한 문명인 아시리아나 바빌로니아 문화가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 일부는 이란과 오늘날의 파키스탄 지역을 지나 인도 아대륙까지 들어간다. 리그베다의 전승자들은 인도 북부에 국가’들’을 건국해나갔고 언어 또한 다양하게 분화했다. 인도 아대륙으로 들어간 이들은 이러한 문화와는 별개로 자신들의 문화를 이어간다. 이란 지역 문화의 수용으로, 왕의 위대성, 상업과 농업, 주화중심의 화폐제도까지 받아들여지지만, 인도-아리안 사제 계급의 이란지역 문화에 대한 적개심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수라’라는 표현이다.

 

고속주행 전차는 시대가 지나면서 점차 그 위력을 상실한다. 다양한 전술이 개발되고, 고속전차는 더 이상 전술 우위를 보장해주는 수단이 될 수 없게 된다. 인도 지역에서도 아쇼카 대왕 시대를 지날 때 즈음이면 이미 전차의 바퀴 ‘차크라’는 신화적으로 묘사된다. 힘과 압제의 수단은 전차의 위력이 전장에서 잊혀질 무렵이 되면 신비화 된다.

 

힘에 대한 고대 인도인들의 사고방식이 이후에 차크라의 신비화를 더 부추겼다. 이것은 ‘에너지’에 대한 몰이해와 함께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에너지는 질량이고, 질량은 에너지다. 중력과 가속력은 등가원리로 설명된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에너지에 관해 엔트로피를 통한 간결한 설명을 하기도 한다.

 

올바른 자세와 바른 행동, 적절한 운동과 깊은 호흡은 사람에게 활력을 준다. 

우주와 인간에 대한 신비주의적 망상에 빠져 엉뚱한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사람의 행동이다.

차크라는 인도-이란조어의 ✽čekro- 에서 온 말이며, 이 말은 ‘바퀴’를 의미한다.


 

차크라의 기원을 찾아서

고대 이집트, 히타이트, 메소포타미아 여러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고대 세계의 강대국이라면 반드시 소유한 병기가 있었다.

바로 전차(Ṛta(ऋत) - chariot)다.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우리는 남부 우랄 신타슈타 문화에서 아리안 전차가 기원했음을 알 수 있다. 고고학자 데이비드 앤서니는 고속주행 전차의 기원은 오늘날의 러시아 서남부에 위치한 지역의 기원전 2천년 경의 '신타슈타 문화'로 보고 있다.

 

결론부터 우선 적어두자면, 차크라는 바퀴를 말한다. 인도-이란조어의 ✽čekro- 에서 기원하는 이 표현은 당시 그들과 적대 관계에 있었던 피노-우그리아어 사용자들에게도 차용된다. 고속 주행을 가능하게 하는 전차와 바퀴는 훗날 이들이 근동 지역으로 이주해 국가를 세울 때 가장 큰 무기가 된다. 천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일어나는 사건 속에서는 기수와 전사의 역할도 세분화 되고, 무기도 투창에서 화살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발전한다. 더 소수가 인도아대륙으로 넘어가지만 그들은 인도 북부의 지배 세력으로 군림하게 되는데, 이 또한 바로 이 전차 제작 기술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서기전 2100 ~1800년경 우랄-토볼 초원에는 신타시타 유형의 벽을 둘러친 거주지가 20개 이상 세워졌다. 이들의 인상적인 요새화는 필수 자원이 있는 겨울 주거지로 사람과 가축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그곳을 지키기 충분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방어벽과 망루 또한 필요했다. 습격이 고질적이었음에 틀림없다. 격화된 싸움은 전술적 혁신을 촉진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가벼운 전차의 발명이었다.”
- <말, 바퀴, 언어> 데이비드 앤서니

 

아소카 파폴라는 신타시타(신타슈타) 문화의 사람들의 이주가 리그베다를 만든 사람들과 매우 관계가 깊다고 본다.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말이 끄는 마차가 처음 나타난” 이주민들의 문화를 이곳으로 특정한다. 데이비드 앤서니 또한 “신타시타 장례 희생을 자세히 살펴보니 <리그베다>의 장례 의식과 놀라 만큼 유사하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언급한다. 신타시타는 우랄 산맥 동남쪽에 집중되는 20개 이상의 요새화 한 거주지 중 하나인데, 즈다 노비치(G. B. Zdanovich)가 발굴한 아르카임 거주지는 침식으로 손상되지 않았으며, 이 거주지의 50~60개 구조물 중 27개가 모습을 드러냈다(데이비드 앤서니).

 

 

어원 연구를 통해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인도-이란 조어와 피노-우그리아어의 어원 비교를 통해 드러났다. 아리아인을 의미하는 단어는 선 사미어(Pre-Saami)에서 “남쪽 사람”을 의미하는 어근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는 우랄 남쪽에 아리아인들의 조상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인어, 페름어 지파에서는 같은 어근이 ‘노예’를 의미하는 단어의 어원이 된다. 이는 인도-이란 공통조어 사용자들 즉, 아리아인들의 조상들과 피노-우그리아어 사용자들 사이의 적대관계를 보여준다(데이비드 앤서니).

 

고고학자 데이비드 앤서니는 이곳에서 발굴되는 수많은 금속 생산 시설들과 요새화 한 마을의 구조들을 보며 많은 의문을 던진다. 또한 이 의문은 훗날 <리그베다>와 <아베스타>를 만든 사람들로 이어지는 것이다. 신타시타 문화의 흔적들은 리그베다는 물론 아베스타에서도 발견된다. 그리고 우리는 두 문헌이 사실상 같은 언어와 문화를 기반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신타시타 문화의 유적들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말을 희생 제식에 많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훗날 우파니샤드 등에 ‘마제(馬祭, 말 희생제)’와 같은 내용으로 이어지는 맥락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실 신타시타 문화는 인류가 만든 최초의 전차 문화라는 견해가 등장하고 있다. 대부분은 고대근동의 문화에서 기원했을 것으로 여겨졌던 이륜전차의 등장은 그 연대가 신타시타 문화에서 조금 더 이르고, 교류나 거리 등의 관계를 고려할 때 초원 즉, 신타시타 문화에서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지역 전차의 영향을 흡수했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것이다. 고고학자 데이비드 앤서니는 BC 2000년 이전인 신타시타, 포타포프카 유형 무덤 등에서 바퀴살 있는 바퀴가 찍은 자국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고속 주행을 위한 ‘수레’는 고대근동에서 BC 2700년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BC 1800년 이전에는 ‘전차’가 발견되지 않는다. 즉, 전쟁을 위한 전차는 흑해-카스피해 초원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져 전투에 사용되었다는 것이 데이비드 앤서니의 주장이다. 이렇게 전차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고대 근동으로 유입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기원전 1500년 경에는 시리아 북부 미타니 왕국의 전차전술에 관한 기록이 발견되고, 중국에서 전차전술이 발견되는 것은 약 천 년이 지난 주나라 시대로 보고 있다.

 

In the museum-reserve/ Arkaim/ Author: Андрюша Романов/ Wikipedia

 

아슈윈스(Aśvins)

‘이중신성’ 즉, ‘전차팀’인 아슈윈스는 관련된 제식에서 이들이 유럽과 연결되는 요소들이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이후 그리스 신화에서도 차용되는 용어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어 등에서 발견되는 “말을 타는 신의 아들들”과 연관된다(아소카 파폴라). 이러한 이중신성은 이중왕권과 같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소카 파폴라는 아리안 이주자들이 중앙아시아 BMAC 지역에서 마주해야 했던 다양한 정치적, 실리적 합의도출과 같은 과정이 아슈윈스와 같은 서사 성립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 있다.

 

아슈윈스는 리그베다에서도 묘사되는 신격화 된 ‘전차팀’을 말한다. 인드라와 같이 유명한 신의 이름은 페도로보 안드로보인(Fëdorovo Andronovan)들로부터 기원하는 문화에서 수용된 것으로 본다. 이들의 주신이 인드라였고, 이 이름은 우랄어 문화에서 하늘과 천둥의 신을 부르는 이름에서 기원한 것으로 여겨진다(아소카 파폴라).

 

아소카 파폴라는 ‘아그니호뜨라’ 즉, 인도-아리안들의 가장 일반적인 제식(yajnã)가 아슈윈스에게 공물을 바치는 의식의 초기 변형이라고 보고 있다. 이 제식은 일몰과 일출에 불과 태양을 향해 바치는 제식이다. 아베스타에서는 미트라(Mithra)와 아후라(Asura)에게 바치는 제식이 동일하게 여겨진다. 어원적으로 보면 아수라(Asura)는 우랄어에서 유입된 초기 인도-아리아어에 포함되는 ‘외래어’다. 이는 ‘지배자’를 의미했고, asera- 에서 온 것으로 본다.

 

이들 전차수들은 전쟁의 양상을 바꾸며 중앙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오늘날의 이란 지역은 물론 인도 북부까지 진입해 들어간다. 이들의 지배 영향은 아케메네스 제국의 주신이 바빌론에서 비롯된 마르둑에서 아후라 마즈다로 변하도록 만들었다. 인도-아리안들은 전쟁과 이주를 하던 시기 힘의 상징이었던 '인드라'를 찾았지만, 인도 아대륙 북부에 정착하는 시기가 되면 인드라가 아닌 브라흐마, 비슈누 그리고 시바에게 절대자의 권한을 돌린다. 이러한 신들에 대한 사고방식이 변한다는 것은 정치제도에 변화가 일어남을 의미한다.

 

베다의 흔적이 구체적으로 처음 발견되는 곳은 인도가 아니라 현재의 시리아 지역이다. 이곳에는 BC 1500경 미타니 왕국이 자리했던 곳으로 미타니는 유프라테스-티그리스 지역의 왕국 중 하나였다. 유목민 뿌리를 둔 이들은 이곳 외에도 고대 근동 지역에서 자신들의 국가를 세워나간다. BC 850년 경에는 스스로를 ‘파사’라고 부르는 이들이 바빌로니아 지역에 국가를 세웠고, 바빌로니아 문화를 점차 밀어내고 ‘아후라 마즈다’를 섬기는 문화가 정착된다. 사실 베다의 방식으로 접근하자면 다신교적 접근이 맞는 것이나 이러한 방식은 제국의 이해와는 좀 맞지 않는다. 바빌로니아의 주신이었던 ‘마르둑’의 기능들은 ‘아후라 마즈다’에게로 옮겨갔고, 아후라 마즈다를 상징하는 힘들은 조로아스터교의 순수한 창작이 아닌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문화의 수용과 재해석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게 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E. 풀러 토리 E. Fuller Torrey 의 도식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1) 농업혁명과 죽음에 대한 인식 강화, (2) 급속한 인구의 증가와 내세관 정립, (3) 도시 건설과 조상숭배, (4) 위계질서, 권력구조의 등장과 조상간 위계에 관한 계보관념 (5) 왕과 통치기구 등장과 신의 출현 (6) 왕에게 부여된 신권과 신이 세속적 법률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과정은 인도-아리안들의 정착과 이후의 상황들을 생각해보는데 매우 유용한 틀이 된다.

 

제프리 새뮤얼 Geoffrey Samuel 은 <마하바라타>, <라마야나>는 각각 ‘달’로 상징되는 왕국과 ‘태양’으로 상징되는 왕국에 연관된다고 보고 있다. ‘달’로 상징되는 쿠루-판찰라는 16대국 지역을 말한다. 제프리 새뮤얼은 <마하바라타>가 이곳의 문화와 연관된 대표성을 갖는 문헌으로 보고 있으며, 상징하는 천체는 '달'이라고 보는 것이다. 야즈냐와 같은 불의 제식은 일련의 실천 사상들로 대체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정착과 왕국의 시대가 되면서 상업과 농업이 정착되고, 주화를 사용하는 화폐제도가 도입된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인접한 아케메네스 제국의 문화 수용과도 연관이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다른 글에 설명해 둔 내용이 있다: https://bhangyoungmoon.tistory.com/16

 

아수라(阿修羅, Asura) - 구약성경, 에스라, 느헤미야, 불경(니까야), 인도, 한반도를 연결하는 희미

기원전 850년경, 유목민들이 세운 나라가 제국의 형태를 갖출 때 스스로를 부른 이름이 ‘파사’라는 이름이다(바사). 구약성경의 중간 지점을 보면 바로 이 ‘아리안’들의 역사

bhangyoungmoon.tistory.com

 

그는 또한 <라마야나>는 ‘태양’으로 상징되는 중앙 갠지스 지역과 관계된다고 보고 있으며 이것이 불교와 자이니즘에 큰 영향을 준다고 본다. 실질적인 야즈냐 제식 자체보다 어떠한 실천 윤리들이 발전한다는 점에서 양쪽은 동일하다. 중국에 ‘송’이 건국될 때 유교윤리와 자연질서를 연결짓는 철학적 노력을 했던 것처럼, 인도에 정착한 유목민들이 정착 국가를 만들 때는 그들이 가져온 사실상 ‘제식 메뉴얼’인 <베다>라는 경전의 내용을 실천 윤리와 우주적 질서를 연결해 활용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륜전차의 바퀴는 어떻게 신화가 되었나?

인도의 국가 휘장, 요가의 용어, 불교를 통해 전해진 전륜성왕(轉輪聖王 - chakravarti, चक्रवर्तिन्) 등 이 이륜전차 바퀴의 신화는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현재 인도의 국가 휘장은 24개의 살이 있는 전차바퀴로 이것을 아쇼카의 바퀴(Ashoka Chakra)라고 부른다.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고전문헌 <도덕경>에서도 “三十輻共一”과 같은 문장이 나오는데, 이는 30개의 살로 펼쳐지는 중국 고대의 전차바퀴를 묘사하는 말이다. 이처럼 고대인들에게 전차바퀴 제조 기술은 경이로운 것이었으며, 그렇게 만들어지는 전차가 가져온 전쟁에서의 우위는 그러한 경이감을 더해주었다.

 

‘왕국시대’ 즉, 국가의 시대란 매우 즉물적이고 현실적이던 상황에서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문제들을 다루어야 하는 상황으로 변하는 측면이 많아진다. 전륜성왕(轉輪聖王 - chakravarti, चक्रवर्तिन्)이라는 표현도 ‘아쇼카 대왕’과 함께 연결되는데, 1세기 경의 조각들에는 아쇼카 대왕으로 여겨지는 인물이 이 전차바퀴와 함께 묘사되는 모습이 등장한다. 즉, 아쇼카 대왕 시대를 전후로 ‘차크라’ 즉, 전차의 바퀴는 이미 신화화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전술의 발전과 함께 차크라는 점점 더 신화화 된다. 로마 군대가 서방세계를 평정할 수 있었던 힘은 이미 전차의 우위가 뒤집어진 시대다. 전차전은 전술의 일부는 되었지만 더 이상 압도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수단은 될 수 없었다. 기마술이 일반화되고, 전술은 다양해졌다. 아주 옛날에는 말을 따라 움직이면 다른 가축의 먹이가 되는 식물들을 함께 찾을 수 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국가의 규모가 커져감에 따라서 이러한 방식은 더 이상 의미도 효율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선정착민들에게 이륜전차의 바퀴 ‘차크라’는 정복자들의 힘의 상징이었으며, 지배자들의 상징이었다. 이것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인도아대륙에서도 마찬가지었다. 힘과 차크라를 연관지어 생각하게 된 것은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 볼 때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시대는 변했고, 전차술은 낡은 전술이 되었으며, 그렇게 아리안들의 이륜전차는 힘을 잃는다. 그러나 힘의 상징이었던 이륜전차의 위용은 남아 <마하바라타>와 같은 문헌은 물론, 다양한 유형으로 전해진다.

 

여전히 신화적 서사를 쓰던 시대, 차크라는 그렇게 신화의 옷을 입고 신비화된다.

 

 

에너지에 대한 오해

인도의 실재론은 “정합적인 인식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대응해서 무엇인가가 반드시 외계에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가츠라 쇼류, 고시마 기요타카)이다. 때문에 이들은 어떠한 활력이나 힘이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오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사실 인도-유럽어의 사고방식에서는 그리 드문 것이 아니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개념도 실상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과거 인도의 신비주의자들이 '우리의 세상은 신들의 꿈이 아닐까?'라고 상상한 것처럼, 오늘 인도의 신비주의자들은 현대과학이 설명하는 '에너지'라는 개념도 그들의 사고방식에 구겨 넣는 실수를 범했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에너지를 매우 단순하게 기술한다. 에너지는 창조되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가 아니라 낮은 엔트로피라고 말이다. 그는 "낮은 엔트로피가 없으면 에너지는 균일한 열로 약해지고, 세상은 열평형 상태에서 잠들 것이다. 과거와 미래의 구분도 사라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흔히 사물로 보는 것은 에너지로 환원해서 생각할 수 있다. 질량에 의해 공간이 휘어지면 중력이라는 힘의 형태로 인식된다. 가속도/ 중력은 등가원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에너지란 다른 차원, 다른 우주에서 흘러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 이 공간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에너지에 대한 정의와 특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자신들에게 편리하게 언어만 끌어다 쓰는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즉, 오늘날 인도 신비주의 신봉자들이 말하는 '차크라(Sanskrit: चक्र, IAST: cakra)'는

어원에 대한 무지와 에너지 개념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실상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다.

 

 

결론

 

올바른 자세와 바른 행동, 적절한 운동과 깊은 호흡은 사람에게 활력을 준다.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 

신비주의적 개념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즐기는 것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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