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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 쉬프트 paradigm shift 는 기존사고의 죽음을 통해 완성된다

생각의 자리

by Photographer Bhang 2024. 12. 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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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3일의 글, 나의 페이스북에서 갈무리

 

2024년 10월 13일 커피를 내리며 페이스북에 적었던 노트를 조금 정리해본다:

미국에 '폴저스 Folgers'라는 커피가 있다. 우리 어머니 세대에서는 상당히 좋은 커피라는 인식이 있는데, 사실 아침에 포트로 대충 내려 우유를 부어 마시는 흔한 싸구려 커피다. 고급이라는 인식은 단순히 '미제 Made in US'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나름대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기회가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 유행하던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헬조선"이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오가며 매번 느끼는 것이었지만 나는 계속 의문이 들었다. 우리나라 만큼 살기 편한 곳이 드문데 무엇이 문제일까? 마천루가 솟은 아부다비, 두바이의 최첨단 인프라스트럭쳐 속에서도 어마어마한 물가와 종종 '맞지 않는 세부 주소'를 경험할 때면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자주 실감했다. 보편적인 시설들이 상당한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거의 없다. 2020년 미국에서 3개 주를 오가며 이 확신은 확실히 강해졌다.

나는 우리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가장 큰 계기는 '탄핵(彈劾, impeachment)'이라고 본다. 정부가 아닌 시민 주도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더라도 매우 중요한 패러다임이다. 리더가 강조되는 리더쉽은 이제 더 가져갈 수 있는 사고방식이 아니다. 특히 일반의사결정의 핵심에 있는 정치의 경우 '언제든' '인물'을 '갈아끼운다'는 것이 기본 값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자유'라는 말을 기본 개념도 이해 못하고 쓰는 정치환자들이 난무하는 까닭은 바로 성리학-세계대전과 식민지배-현대국가라는 급변하는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의 산물이다. 성리학 국가의 4대 국왕 세종은 억불(抑佛) 세상의 왕임에도 찬불가인 <월인천강지곡>을 지어야 했다. 지금도 이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이해하고 적응할 수 없다. 지금까지 알던 것에 세상을 끼워맞추고 안도감에 세상을 부정할 뿐이다. 그러한 모순적 사고 기반은 이제 '반미보수세력'과 같은 자기부정적 세력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이 패러다임 격변의 시대를 가고 있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적응할 수 있을까? 한반도에 살면 불안감이 기본 값이다. 역사 기록이 시작된 이후로 900번이 넘는 전쟁과 급변하는 계절로 매달, 매년이 걱정으로 물든 유구한 전통을 가진 땅이다. 그러다보니 '확신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무언가 예정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별일 아니어도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주일 아침 할 이야기는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제도 종교의 쇠락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내세에 대한 확신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패러다임 쉬프트 paradigm shift 는 기존사고의 죽음을 통해 완성된다.

(인식된 변칙현상들로서)"그 두드러진 특징은 기존 패러다임에 동화되기를 강경히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 형태의 현상만이 새로운 이론들을 만든다. ... 새로운 이론이 자연에 관한 믿음에 파괴적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나타나는 경우를 목도하기는 매우 어렵다."
-- Thomas S. Kuhn <과학혁명의 구조> 중에서

 

나는 평소 이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를 '현대인'으로 생각하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곱게 말하면 근대 혹은 중세인, 좀 거칠게 부르자면 '야만인'이다. 현대를 규정하는 사고의 틀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축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을 가리켜 '현대인'으로 부른다면 여름밤 모기도 비행기라고 할 수 있다. 과학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생각이 자리를 잡기 위해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논거' 같은 이성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존 패러다임을 신봉하는 자들과 그들이 가진 생각의 장례식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들의 상당부분을 '자주' 폐기해야 하는 시대를 맞는 것이 인류의 문명 전반의 상황 같다는 것이다. 이 불안감은 집단에게 스트레스를 줄 것이고, 히스테릭한 반응이 곳곳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 불안감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의 신속한 해결책이 나온다. 나는 이게 우리 발전의 원동력이 아닐까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이것도 너무 심하면 꺾일 수 있지 않을까?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 수 밖에 없고, 모든 것이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특정한 명제로 기술할 수 있는 것은 진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可道=非常道). 오래 전부터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고, 이제 우리는 그것들을 발견해 즐거워 할 수 있는 시대를 맞는게 아닌가... 우리는 다시 궁시렁궁시렁 하면서 매일 아침 출근하듯 짜증내며 격변에 적응할지도 모르겠다.

자다 일어나 커피 한 잔 내리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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